토지정의

월터 브루그만과 노만 C. 하벨의 토지 신학과 지공(地公) 사상

강산21 2006. 11. 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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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터 브루그만과 노만 C. 하벨의 토지 신학과 지공(地公) 사상(박창수)


월터 브루그만과 노만 C. 하벨의 토지 신학과 지공(地公) 사상


박창수(성토모 사무국장)


월터 브루그만의 지공(地公) 사상


월터 브루그만은 토지 신학에 대한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성경이 말하는 땅』(정진원 역, CLC, 2005, 원제: The Land : Place as Gift, Promise, and Challenge in Biblical Faith 수정판)의 집필 배경 중 하나로 “자신의 땅, 권력, 부는 아무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현대의 초강대국’(미국: 인용자)이 나타난 상황”(25쪽)을 언급하면서, “현재의 ‘세계화’ 과정에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은, 통제 불능이 된 이와 같은 땅의 관리 방법은 비록 ‘땅 끝까지’(to the uttermost parts of the earth) 그 힘을 확장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다"(29쪽)며 미국의 반성서적 제국주의 경향을 비판하였다.


브루그만에 의하면, 성경을 땅이란 논제에서 분리하여 해석하고, 소위 영적인 것에 초점을 둔 것은 큰 잘못이다. “영적인 기독교는 땅의 문제에 대면하기를 거부함으로써 현존하는 불평등성을 인정하는 결과를 만들게 된 것이다.”(350쪽).

브루그만에 의하면, 땅은 어떤 사람에게도 양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언약의 징표와 기능이 되는 것이므로 땅은 정확하게 보수될 것이며, 이를 위해 하나님은 빈자와 연대하여 빈자에게서 땅을 빼앗는 자들을 대적하실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땅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에 대항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가난한 사람들과 연합하신다는 것이 가장 특색 있고, 가장 본질적인 것이다.”(175쪽).

브루그만에 의하면, 교회는 땅 없는 자들과 연대함으로써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해야 하고 땅의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종교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측면을 무시하는 현재의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 “지금 세계의 근원적인 불안은 빼앗긴 자들이 요구하는 땅의 몫에 대한 외침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정녕 성경에서의 가난한 자들의 외침인 것이다(참조, 출2:23-25, 왕상12:4). 땅을 가진 자들에 대항하여 일어난 가난한 자들과 여호와의 연대를 선지자들은 강하게 선언한다. 이 시대에 있어서 빼앗긴 자들의 외침은 위협적이고, 거친 것으로 들리지만, 성경은 이 거친 소리가 땅을 가진 자들에 대항하고 있는 빼앗긴 자들과 하나님 자신의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349-350쪽).


브루그만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땅을 원하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시기 위하여 땅을 빼앗고자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성경이 확인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350쪽). “빼앗긴 자들의 말은 공격적이고, 그들의 약속은 부적절한 것이라고 보는 가진 자들의 교회에 우리는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빼앗긴 자들과의 연대를 다시 수용할 수 있는가가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문제이다.”(351쪽).

노만 C. 하벨의 지공(地公) 사상


노만 C. 하벨은 ‘호주 원주민의 토지 요구’라는 상황을 배경으로 그의 책, 『땅의 신학 - 땅에 관한 여섯 가지 이념』(정진원 역, 한국신학연구소, 2001, 원제: The Land Is Mine : Six Biblical Land Ideologies)을 기술하였다. “사회 정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저자의 생각이 이러한 문서 복합 연구에 영향을 주었음을 인정한다.”(28쪽). 하벨의 언급처럼 토지 신학은 그 집필자가 처한 시대적 요구를 절대 개입하지 않는 진공 상태에서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집필자는 자신의 문화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성경의 문화 세계로 들어갈 수도 없으며, 현재의 문화적 구속에서 자유롭게 될 수도 없다.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성경 속의 생활 세계를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활 세계를 해석자의 세계에 관계시키는 潤岵dialogical) 것이다. 대화적인 성경 이해라는 측면에서 필자가 현대의 토지사유제가 초래하는 해악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벨이 성서 이념을 추론하기 위해 선택한 여섯 가지 성경 본문들은 모두 그 근저에 한 가지 근본원칙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토지신유(土地神有) 원칙이다. 하벨은 자신의 책에서 각 이념들을 설명하면서 토지는 하나님의 것임을 명시적으로 혹은 암시적으로 표현하였고 또한 자기 책의 영문 원제를 바로 “The Land Is Mine” 곧 토지는 하나님의 것(레25:23)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토지신유는 하벨의 성서이념 중의 하나는 될지언정 근본 원칙은 되지 못하고, 또한 토지신유와 경쟁적인 다른 이념이 존재한다는 일부 논자의 하벨 해석은, 다름 아닌 하벨에 의해 거부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오류는 토지신유를 하벨의 여섯 가지 이념 중 신토이념으로 피상적으로 등치시켜 오해한 때문이 아닐까 추측 홱


하벨이 선택한 여섯 가지 본문에는 모두 근본원칙인 토지신유로부터 파생되는 평균지권(平均地權) - 만민의 평등한 토지권 - 원칙이 담겨 있다. 하벨은 이스라엘 각 가족 상호간의 평균지권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하였다. ‘신토이념’을 추론한 신명기, ‘가토이념’을 추론한 여호수아서, ‘예토이념’을 추론한 예레미야서, ‘농토이념’을 추론한 레위기 25-27장은 물론이고, 상술한 대로 하벨이 ‘왕토이념’을 추론한 열왕기상 3-10장도 하벨의 주장과 달리 이스라엘 각 가족 상호간의 평균지권이 있고, ‘이주이념’을 추론한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에서는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평균지권이 있다.

 


 

땅에 관한 성서의 이념들은 통일성이 없다는

노만 C. 하벨의 주장에 대한 비판


하벨에 의하면, 땅은 성서이념의 기본 요소이다. “성서에서 땅은 관심의 초점이 되는 고유한 물질적 주제이며, 이 땅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는 성서 문서를 만들어 낸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땅에 대한 권리는 성서의 내재적 청중에 관련되어 있는 이념의 기본적인 요소이다.”(24-25쪽).


하벨은 성서 본문들의 이념의 통일성을 부정한다. “땅에 관한 성서의 논점을 아주 단순하고 분명한 것으로 인용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선택 가능한 많은 경쟁적인 논점이 있을 수 있다.”(8쪽). “본서에서 세밀하게 분석된 특정한 이념을 일반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본 연구는 성서에 나타난 땅의 개념은 결코 단일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183쪽).

그러나 하벨이 성서 이념의 통일성을 부정하며 제시하는 논거를 고찰하면 하벨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벨은 열왕기상 3-10장의 이념을 추론하며 땅에 대한 왕의 배타적 권리를 인정하는 왕토 이념이 다른 이념들과 충돌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열왕기상 3-10장 본문은 땅에 대한 왕의 배타적 권리를 긍정하지 않는다.


하벨은 기브온 산당의 솔로몬의 꿈에 나타난 하나님이 지혜를 구한 솔로몬에게 지혜와 함께 주신 부에 토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속단하였다. 그러나 부에 토지를 포함시키는 것은 현대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그대로 성경 해석에 적용한 것이다. 성경 기자는 어디에서도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부에 토지를 포함시키지 않는다. 구약 시대의 대표적인 부자인 욥의 경우, 고난 전과 후 모두, 그가 소유한 부의 목록에는 토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욥1:3; 42:12).


더구나 솔로몬이 하나님께 그 아비 다윗에 인생에 대해 “공의”(왕상3:6)를 언급한 점, 지혜를 구한 이유가 바로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왕상3:9)하는 데 있었다는 점, 그리고 스바 여왕이 “여호와께서 당신을 세워 왕을 삼아 공과 의를 행하게 하셨도다”(왕상10:9)라고 말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 열왕기상 기자가, 솔로몬이 공의를 무시하고 예컨대 나봇의 포도원을 탐낸 아합처럼, 율법에 의해 금지된 토지 영구 매매(레25:23)에 의한 왕의 토지 확대 시도를 긍정했다고 결코 볼 수 없다.


또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왕상4:25)는 표현은, 솔로몬 왕에 의해 토지를 빼앗긴 이스라엘 사람들을 상정할 수 없게 한다. 이 문학적 표현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자기 기업인 토지에 심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한마디로 자기 기업인 토지에서 안연히 사는 ‘희년 사회’를 의미한다.


즉 열왕기상 3-10장 본문에는 하벨이 추론한  왕토이념은 없고, 대신 여호수아서를 통해 하벨이 표현한 가토이념과 일맥상통하는 가족의 평균지권을 옹호하는 이념이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 두 성경 본문의 이념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두 본문 간에는 이념의 통일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솔로몬이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전통적인 지계(地界)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행정구역을 획정한 후 조세를 징수한 기록(왕상4:7-19), 그리고 주변열국을 다스리며 조공을 받은 기록(왕상4:21)은 왕의 토지 소유권의 확대가 아닌, 토지 수익권의 확대를 나타낸다.


하벨이 왕토이념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은 솔로몬이 두로 왕 히람에게 갈릴리 땅의 성읍 이십을 준 기록인데, 이 일은 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설을 마치고 난 후, 즉 40년 솔로몬 통치의 후반기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이 언급을 통해 열왕기상 기자가 왕토이념을 긍정하고 있다고 속단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열왕기 기자는 솔로몬 통치의 후반기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하벨이 본문으로 상정한 열왕기상 3-10장을 뒤이은 열왕기상 11장에서는 솔로몬의 통치 말기에, 솔로몬이 많은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여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같이 좇지 아니하고”(왕상10:6) 이방의 신들을 숭배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열왕기상 12장에서는 솔로몬 사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왕이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무거운 멍에”(왕상12:4)를 언급하는데, 이 고역과 무거운 멍에(세금)는 솔로몬 통치 전 기간이 아닌 후반기의 상황으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솔로몬 통치 전반기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였으며”(왕상4:20), 역시 통치 전반기인 성전 봉헌식에 대한 기록에서도 “제 팔일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왕상8:66)기 때문이다. 만약 고역과 무거운 멍에가 부과되고 있었다면 백성들이 즐거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솔로몬의 통치 전반기에는 이방인을 노예로 역군을 삼았고, 이스라엘 자손은 노예로 삼지 않았다(왕상9:21-22).


요컨대 열왕기상 3-10장은 땅에 대한 왕의 배타적 권리를 인정하는 왕토 이념을 긍정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성경 본문이 다른 성경 본문들의 이념들과 통일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하벨의 주장은 오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