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일기장 아직 성인이 되기도 전 자취를 하면서 직장을 다니던 때 였으니까 벌써 20년도 훨씬 더지난 이야기다. 매일 야근을 하여도 동생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빠듯한 임금이었지만 월급 날이면 조금은 들뜬 기분이 되곤하였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월급을 타던 날, 보고싶던 책 몇 권을 사 들고 자취방으로 들어서는 내게 마침 며칠 와계시던 어머니가 힘들게 번 돈으로 고기라도 사 먹지 무슨 책이냐고 하시는 것이다. 어머닌 아마도 당신 딸이 안스러워 조심스레 하신말씀이었을 것이란 걸 뒤 늦게야 깨달았지만 그 때는 얼마나 화가 나던지... 그만 어머니께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밥만먹고 살면 그게 금수지 사람이냐고...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차려놓은 밥상을 내게 내밀었지만 나는 왠지모를 눈물로 어머니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야 말았다. 다음 날인가... 퇴근을 하고 들어서는데 어머니가 황급히 무언가를 뒤로 감추시는것이었다. 짐짓 모르는 척 곁눈질로 보니까 전 날 내가 사 온 책 중에 [샘터]라는 조그만 월간지 표지가 보였다. 아, 어머니가책을 보고 계셨구나... 어머니도 책을 보시다니... 그때서야 나는 어머니가 처녀적, 야학을 가르치던 내 아버지로부터 글을배우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빙그레 웃음이 났다. 아버지가 군대 계실 때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글이 삐뚤삐뚤하고 맞춤법도엉망이라서 누가 볼 세라 몰래 혼자 읽곤 하셨다지만 야학생 중에 어머니가 제일 똑똑하고 야무진 학생이었다고 아버지는 몇 번이고우리에게 누누이 말씀하시곤 했었다. 최근에 언젠가 친정에 들렀을 때 발견한 어머니 수첩에는 아니, 어머니의 가계부이며일기장엔 깨알같은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0월 0일--아측에 범이(막내 이름이다) 책 산다고 오쳐넌... 또 책산다고삼쳐넌... 아무캐더 이노미 거지말 치거 돈타가느거 가따. 0월 0일--저기 꺼먼 메꼬모자 쓴 아자씨 엽집 아주마 마넌 꾸어 가따... 0월 0일--사라온 새워리 허무하다. 내 인생을 채그로 쓰면 아마 열건을 쓰도 다 못할거이다. 눈물이 난다... -수피아 님글-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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