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사진사
내겐 형 대학교 졸업식 때 억지로 끌려가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다. 91년 1월 30일자로 찍혀 있는걸 보니 내가 스물 셋 되던 해였던 것 같다. 그 시절은 내 인생의 최고의 반항기였다. 반항아답게(?) 아무렇게나 헝클어진머리하며 얼굴은 있는 대로 찡그리고 양손은 주머니 속에 푹 찔러 넣은 채,졸업사진을 찍거나 말거나 아무 관심 없다는 듯 뭔가못마땅한 표정을 드러낸 채 찍은 사진...
지금 보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진에서 나느 한가지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분명 형의 졸업식임에도 불구하고,사진의 핀트가 형을 벗어나 있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형의 왼쪽에 서 있던내 여동생이 왼전히 구석으로 몰릴정도로 형의 오른쪽 에 서 있던 나에게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사진을 찍은 사진사는아마도 그날이 형의 졸업식임을 까맣게 잊었던가,아니면 형이 아닌 내 졸업식으로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사각모를 쓴형이그날의 주인공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인데 그런 형을 저만치 밀어둔 채 좀처럼 굳은 인상을 펼 줄 모르는 나를 중심에 놓고셔터를 누른 그 사진사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탓할 수 만은 없으니 그 사진사는 다름아닌 나의 아버지셨다.
사회에 적응하지못한 채 우울한 방황을 하고 있던 나를 항상 어린애처럼 걱정하시던 아버지는 은영중에 나에게로 초점을 맞추고 계셨던 것 같다.
어쩌면 다니던 대학도 미처 졸업 못한 내가 가여운 생각에 일부러 내 졸업식인 양 사진을 찍으셨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진을찍으면서도 언제나처럼 근심스럽게 나를 바라보고 계셨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어느덧 그날의 사진사는 허연 머리에 돋보기 안경을쓰고 볕바른 창가에 앉아 오래된 신문을 뒤척거리고 계신다. 뇌수술이라는 죽음의 고비에서 몇 차례나 살아 돌아오셔서는 말이다.
'아버지,저 결코 일부러 아버지 속 썩이려 했던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아버진 그때나 지금이나 제 걱정뿐이실거예요. 저도 나중에 저 같은 아들 낳아 속 썩어보면 아마도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나겠죠? 저도 아버지 같은 사진사가 되어봐야 그 심정헤아리겟죠?'
생각하나(이동혁)님의 통신글에서 발췌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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