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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우리 가족의 영원한 대장

강산21 2001. 5. 21. 23:19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아내는우리 가족의 영원한 대장 


암 체험수기

"정말 기쁩니다. 아이들도 무척 좋아하구요. 스스로 극한의 고통을 견디며 쓴 일기가상을 받아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알면, 집사람도 기뻐할 겁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아내의 투병일기로1등상을 받게 된 염건(44 /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씨는 "누구보다 '집사람'이 기뻐할 선물"이라고 말했다. 염씨는 6개월 전 근육암으로세상과 이별한 아내 이상임씨가 98년 9월부터 2000년 5월까지 2년 간에 걸쳐 치열하게 써왔던 암 투병일기를 디지틀조선일보와 휴메딕이공동주최한 '암수기 체험공모전'에 냈고, 1등으로 당선됐다. 공모를 위해 아내의 일기를 부분부분 발췌하면서 수도없이 울었다는 염씨는 이번 공모가아내의 삶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도 했다.

'치열했던 암투병일기'라는 제목을 달고 뒤늦게 공개된 이 일기는43세의 한 여성이 암과 싸우는 과정에서 죽고싶을 만큼 몸과 마음이 괴로웠던 고통의 순간들, 그럴수록 치솟는 삶에 대한 의지, 그리고 이웃과가족에 대한 사랑을 솔직하게 담아 절절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심사위원인 동덕여대 국문학과 홍성암 교수는 심사평에서 "투병중에서도 자식들과 남편 그리고 이웃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래서 인지 눈물 없이는 읽기 어렵다" 고 밝혔다. 이씨의 일기중 특히딸 지현이와의 교환일기는 엄마에 대한 지현이의 사랑과 속상함,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껴야 했던 괴로움, 그리고 그러면서도 강한 엄마를 닮아씩씩하게 견뎌내겠다는 의연함을 그대로 보여줘 읽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인터넷 가족 홈페이지가 가족들의 구심점
사실 지현이나 가족은 누구도 엄마이자 아내인 고 이상임씨가 가족 곁을 영원히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씨는 사이버공간에서 여전히지현이네 가족의 버팀목인 '대장'으로 남아 있다. 남편 염씨가 직접 만든 가족 홈페이지(fish.yeom.com/family.html)에들어가보면 가족 소개란에 4명의 별명이 차례로 나온다. 마당쇠, 대장, 체리엔젤, 돌쇠....... 마당쇠를 누르면 염씨의 사진이 여러 장나오고 근황과 약력도 나온다. '그럼 대장은 누구?' 하고 가볍게 누르니 염씨의 아내이자 지현 종윤이의 엄마인 이상임씨가 웃고 있다.

이 홈페이지의 기도게시판은 이씨가 늘 가족과 함께 있음을 일깨워주는 코너다. 염씨는 기도게시판에 아내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연스럽게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

"아이들한테 말로 하기 힘든 얘기도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아서 올려 놓으니 아이들이 엄마가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걸 계기로 서로 마음을 털어 놓고 대화 할 수 있게 해주니 아내는 여전히 우리 가족의 구심점인셈이죠." 염씨는 이곳에 '지현엄마 추모코너'를 만들어 투병일기 전문도 올려놨다. 그는 "사이버 세계에 아내의 글이 남겨져 있어 여전히 아내가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시간아 흘러라 나는 견딘다
염씨는 스물일곱살에 고등학교 가정 선생님이었던 한살 아래 이씨를 만나 18년을 살아왔다. 염씨가 아직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아내가 암선고를 받기 10년 전인 1988년 암의 전조를 보고도철저하게 대비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때 이씨는 팔에 혹이 생겨 대학병원을 찾아 검사를 했으나, 양성종양으로 판명이 돼 단기간의 치료를받고는 그냥 잊고 지냈다. 당시에 조기치료를 했으면, 최악은 피할 수 있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다.

1998년 9월. 팔에 혹이다시 생겨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암세포가 폐까지 전이된 말기암 상태였다. 바로 입원하고 그 때부터 항암제와 수술을 번갈아 하는 괴로운 날들이시작됐다. 연골육종은 대부분 10세~15세에서 나타나는 소아암의 일종이어서 40세의 여성이 걸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한다. 옆 침대에서 같은연골육종을 앓고 있었던 10살 짜리 남자아이는 아내의 투병생활 중 아내보다 늦게 입원 해 빨리 저 세상으로 갔다. 염건씨는 "아내가 가장낙심했던 순간"이었다며 "아내는 그러면서도 꼭 주님이 살려줄 것이라고 믿고 의지를 꺾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흘러가 팔다리를 물론 폐와 심장 척추를 거쳐 뇌까지 파고드는 암세포들. 그 죽음의 덩어리를 도려내기 위해 4차례에 걸쳐 온몸 여덟군데에 수술을받았다. 횟수가 거듭되면서 이씨는 죽으면 죽었지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수술은 못받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는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않았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짧게 나마 투병일기를 계속 썼다. 딸 지현이와의 교환일기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반드시 이 시간을견뎌낼 것"이라며 오히려 딸을 격려하기도 했다.

"집사람은 무척 강하고 끈기 있는 사람입니다. 병원에 있지 말고 빨리 가애들을 돌보라고 말하고, 나중에 일기 쓴 거 보니까 사실 그 때 무척 아팠던데…. 병원에서 수술 받고 나도 아프다는 소리 안하고 화장실 가는것도 혼자 하려고 하고 남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습니다."

항암치료와 수술 덕분으로 99년 9월부터 2000년5월까지는 암세포가 잦아들었고 가족 모두에게 삶의 빛의 보였던 것도 잠시. 5월 중반 정도 되자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검사를하니 이미 암세포는 맹렬하게 몸 전체로 퍼져 있었다고 한다. 척추에 종양이 생겨 신경을 눌러 누워있지 못하고 앉아서 잠을 자야 했고 뇌 속에도종양이 퍼져 의식이 가물가물해지고 더는 일기를 한 줄도 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9월 그녀는 그렇게 갔다.

친지와이웃의 격려, 암환자에게는 살 힘이 돼
염건씨는 아내가 쓴 투병일기가 암과 싸우고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한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원한다. 아내의 일기를 발췌해 홈페이지에 올리고 공모전에 참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 스스로가 친구들과 이웃의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아내의 친구들과 이웃들이 좋은 음식들을 챙겨줬고 그의 대학동료들은 치료비를 보탰다.

"암환자와 그 가족에게는 주위의 격려가절실히 필요합니다. 특히 마음으로 의지가 되어 주는 게 중요합니다. 암에 걸렸다고 환자를 소외시킨다면 삶에 대한 의지도 사라질 수 밖에 없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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