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비뚤어져 가던 나에게 필요했던 건 '관심'
유가영 기자 dreambee@dreamwiz.com
나른한 오후, 나는 조퇴를 할까 생각 중이다. 몸이 아픈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 앉아 있기가 짜증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우리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인지 선생들은 생각 없이 틀어놓은 라디오처럼 잘도 떠들어대고 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조퇴할 궁리를했지만 한두 번이 아니라서 안 써먹은 거짓말을 골라내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번의 거짓말에도 잘 속아넘어 가는 걸 보면 아마도 담임은날 포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일지도... 갑자기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했다. 나를무시하다니...
마음을 고쳐먹었다. 무시당하며 살긴 싫었기 때문이다. 문제아 주제에 무시당한다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이 우스울지도모르지만... 책상에 머리를 묻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소리가 나고 아이들이 조용해진 걸 보니 영어 선생님이 들어온 모양이다. 평소나에게 잘해주던 선생님이었기에 쉽게 생각해서인지 고개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만약 눈에 거슬린다면 몇 마디하겠지..." 잠시 후 영락없이 난 불려 나갔다. 몇몇 까다로운 선생님들이 가끔씩 불러내어 하는 잔소리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의례적인 행동으로교탁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섰다. 귀에 거슬리는 말들에 가끔씩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몇 분 째 계속되는 선생님의 잔소리를 묵묵히 잘도받아 내고 있었다.
그 얘기들은 대충 교무실에서 나도는 내 이야기들이었다. 공부를 안 하려면 조용히 학교나 다니든지 할일이지... 예의도 없고 건방지고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닌다고, 차라리 학교를 다니지 말든지 골치 아픈 아이라는, 이젠 귀에 못이 박혀버린뻔한 이야기들...
쓸데없는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담임조차 포기해 버린 나에게 무엇 때문에 구태여 목소리까지 높여가며 장황하게이야기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잔소리가 많이 길어진다고 생각했다. 한순간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우는가 싶더니 선생님의 손이내 뺨을 치고 지나갔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조퇴를 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몇 분간, 나는 말 그대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선생님은 수업도 끝내지 않으신 채 교실을 나가 버리셨고,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몰려드는 아이들의 물음에 대꾸조차도 하지않았다.
어이가 없었다. 매를 맞았던 적은 많았지만 아이들 앞에서 이렇게 수치스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나는자리에 앉아 선생님을 욕하기 시작했다. 제자와 스승의 관계에서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말들을 나는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아무 죄책감도없이...
생각해보면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란 곳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얌전치 못한 성격 탓인지 난 항상 지적과 나무람의대상이었으며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다. 그랬었기에 나를 좋아하는 선생님은 없었다. 물론 사제간의 정이란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가끔씩 우리 엄마를불러내어 내 문제를 이야기해 엄마를 울게 만드는 날이면 나는 정말이지 학교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말 잘 듣는 아이가되려고 노력을 안 해본 것도 아니었다. 안 되면 성적이라도 올리려고 노력을 했었지만 그 동안 내가 심어버린 선생님들의 고정관념은 내 노력을물거품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그렇게 흘려 보낸 6년의 세월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반항심과 불만뿐이었다.
새로울 것이라고 기대했던중학교도 나를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일까. 학기 초부터 난 겉돌기 시작했다. 늘 제 멋대로인 나를 선생님들은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다. 아니차라리 학교가 날 포기했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나도 그것이 내게는 더 편한 일이라고 단념하며 살았었다.
그날청소시간. 선생님께선 나를 부르셨다. 선생님은 학교 뒤뜰 공터에 서 계셨다. 그곳에서 난 다시는 보지 못할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다. 울고계셨다. 미안하다며... 널 너무 아꼈기 때문이라며... 선생님은 날 안은 채 몇 번이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셨다.
죄책감이들었다. 난생 처음... 어떤 말에도 어떤 매에도 느끼지 못했던 죄책감을, 난 선생님의 눈물 속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 동안 메말랐던눈물이 안타까울 정도로 울고 싶었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하고 싶었지만 평소 잘도 떠들던 입이 그 시간만은 떨어지지않았다.
나 같은 걸... 이제 다 틀려 버린 줄만 알았던 고장난 장난감 같은 나를... 그분은 아직도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다.그토록 원하던 관심이란 걸 나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중학교 내내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해드리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올라와버렸다.
선생님의 눈물은 나를 변화시켰다. 이제 와서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그 분은 내 안에 스승의 상을 그려 주신 소중한분이었다. 이제까지 느끼지 못할 뻔했던 스승의 은혜를 마음깊이 느끼도록 내 마음을 열어주신...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긍정적인 아이로 변할 수있었고 성적도 오르게 되었다.
성적이란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었다. 성적이 오른 후 선생님들은 나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셨고 그시선들을 느끼는 건 나의 학교 생활의 즐거움이었다. 어느 순간인가 학교라는 터울 속에 어우러진 나를 바라보았다. 내 모습은 이제 더 이상문제아도 어리석은 반항아도 아니었다.
가끔씩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어리석은 반항심이 나를 무너뜨리려 할 때면 어디선가 선생님이바라보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나 자신을 바로잡게 한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는 선생님의 눈물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스승이 제자를사랑하는 마음이 이러하다는 걸 몸소 체험케 해주신 그 선생님... 세상을 보는 눈을 다시 열어주신 선생님께감사드린다.
2001/05/13 오전 10:01:58 ⓒ 200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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