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아이 엄마로 평범하게 살고싶어요 | |
버려진 아이 엄마로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소망의집 박현숙 원장...고달픈 봉사의 길 11년 왜 이렇게 삶이 고단할까. 버려진 아이들의 엄마로 평범하게(?) 살겠다는 소망은 점점 높아 가는 현실의 벽앞에서 번번이 좌절을 생각하게 만든다. 남다른 장사 수완으로 빌딩을 지을 만큼 돈도 벌었다는 소망의집(서울시 송파구 오금동 71-12) 박현숙원장(38). 그러나 그에게 남은 것은 100만원이 넘는 수도세와 바닥을 친구 삼아 박박 기는 지체장애아 30명이다. 배꼽에 긴탯줄을 매단 채 문밖에 버려져 있던 한 아이는 얼마 있으면 100일을 맞는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장애는 없지만 친부모가 누군지 모르는천애고아. 박 원장은 이 아이에게 세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호적에 입적시켰다. 소망이와 상혁이에 이어 3번째 입적시킨 아이다.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은 세휘의 티없이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면 절로 시름을 잊는다. 그러나 그저 이 애들의 부모로 아무런 걱정 없이 살면 얼마나좋을까 라는 소망은 그저 사치스러울 뿐이다. 남편도 모르게 그저 남을 돕는 게 즐거워 이 일을 시작한 게 벌써 11년째. 수년전남편이 이 사실을 알고 자랑스러워하며 기꺼이 동역자로 합류했지만 지체와 정신장애아 30명의 부모 노릇은 보통 어려운 일이아니다. 유별나게 춥고 눈이 많이 내렸던 지난해 겨울, 박 원장에게는 3명의 아이가 비슷한 시기에 차례로 세상을 떠나는 무서운시련이 찾아 왔다. 아이들의 관을 챙기며 흘렸던 눈물과 두려움은 정말 다시 떠올리기 힘든 악몽이다. 원래 장애와 질병을 갖고있는 아이들이었지만 3명이 한꺼번에 세상을 떠난 사실 앞에 박 원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박 원장은 죽은 아이들의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도못하고 일단 방 한구석에 관을 덮어놓았다. 다른 애들의 손이 닿지 못하게 하는 일도 보통 일은 아니다. 비록 죽음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이지만낌새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자꾸 관 쪽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장애아 3명 잇달아 세상 떠좌절하기도 어차피 오래 살 것으로 기대는 안 했지만 차가운 시신이 되어 관속에 누운 아이를 바라보며 인생의 덧없음도 한탄했다. 또의사에게 죽음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관을 다시 뜯었을 때 느낀 죽음 앞의 공포도 다시 겪기 싫은 체험이다. 머리를 빗겨주거나 목욕도 시켜주고,직접 살을 맞대고 함께 잠들기도 했던 사랑스런 아이들, 그들의 죽음을 다시 대면할 때는 끔찍한 것은 물론 정말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은 깊은절망감을 갖게 만들었다. 더구나 한꺼번에 여럿 아이가 죽음에 이르자 혹시나 비위생적이거나 잘 돌보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외부의 시선도 무척이나 따가웠다. "그런 건 쓰지 마세요. 끔찍한 얘기는 뭐할라고 물으세요. 이미 지난 일인데요뭘." 과거의 악몽을 잊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박 원장. 앞으로도 오랫동안 장애아들의 엄마로 남기 위해 안 좋은 기억은 빨리씻어버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사실 박 원장이 아이들이 생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서 이제는 더 못하겠다고 일을팽개치고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눈길이라도 마주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의 가냘픈 시선때문이다. 송파구 오금동의 한 낡은 건물의 맨 위층(4층) 40평공간이 30명 아이들의 모든 터전. 이 공간에 욕실과 작은 방 두 개를 뺀 나머지 마루가 아이들의 놀이터이고 침실이다. 이 곳에서 박 원장은복지사 1명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소망의집이 있는 4층은 원래 장애아동 시설로는 잘 맞지 않는 곳이다. 바로 문만 열면복도 건너편에 사무실이 여러 개 늘어서 있어서 여름에도 제대로 문도 열지 못한다. 만약 문만 열었다면 괴성을 지르는 아이들 때문에 시끄럽다는항의가 빗발친다. 더구나 이 건물은 수도관이 낡아 번번이 누수가 발생한다. 지난 여름에는 쓰지도 않은 물세가 엄청나게 나왔다. 건물전체가 부담해야 하는 수도세는 720만원. 이중 박 원장이 부담해야 하는 돈만 180만원이다. 결국 수도세를 내지못해 이 건물에는 단수조치가 내려졌고 박 원장과 30명의 아이들은 꼬박 물을 길러다 먹을 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였다. 30명의 아이들을 하루에도몇 번씩 씻겨줘야 하는 소망의집은 물 없이는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한다. 박 원장은 불법임을 알면서도 옆 건물의 수도를 끌어다간신히 물을 쓰고 있다. 물론 수도세를 내면 수도관을 연결시켜 주겠지만 노후된 수도관을 교체하지 않은 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과거몇 차례 소방차를 불러 물을 옥상에 끌어 올려봤으나 터진 수도관을 타고 모두 땅으로 흘러버려 제대로 사용도 못했다. 그런데소망의집의 다급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른 건물 사용자들은 별로 급한 눈치가 아니다. 다른 입주자들은 먹는 물 정도만 배달시키면 일단 불편은면하는 셈이다. 집주인 역시 수도관 교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한다. 수도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망의집운영은 갈수록 힘들어 진다. 이웃 건물에서 수도를 끌어쓰는 것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관할 관청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단수 조치를취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박 원장의 고단한 투쟁은 이래저래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박 원장이 소망의집을 운영하는데 들어가는비용은 한달 평균 800만원. 이 중에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후원금을 다 합해야 350만원이다. 나머지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까. 박 원장의 돈마련하는 방법은 참 기구하다. 박 원장의 남편은 공구를 파는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에 그저적자만 안보면 다행이다. 결국 소망의집 운영비를 마련하는 일은 박 원장의 몫이다. "저에게 특별한 기술이 있어요. 바로 장사죠.남들 보다 훨씬 물건을 잘 팔아요." 박 원장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달란트(?)는 바로 무엇이든지 파는 장사수완. 박 원장은 양말회사에서 재고로남은 양말을 싸게 구입해 어디가 됐는지 가판을 펴놓고 행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장담하는 데요 제 양말 파는 기술은양말회사에선 이미 소문이 자자합니다. 제가 노점상만해서 양말 10톤을 팔았다면 믿겠어요?" 박 원장이 양말 뿐 아니라 기저귀와화장지 등 돈이 될 수 있다면 뭐든지 팔아 봤다. 젊어서 시작한 장사, 그 돈만 계속 모았다면 빌딩을 샀다는 얘기는 그냥 허튼 소리처럼 들리지않는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남편과 애들과 함께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박 원장은 왜 이처럼 험하고 모진 '십자가'를 자청해서 지고 있을까. 그 이유는 불행했던 과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전 슬프게 자랐어요." 박 원장은 과거를 묻는 질문에 이 말을 하고는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이 말은 단순히 "참 가난하게자랐어요"란 의미로 들렸지만, 실상 박 원장은 가난 보다 몇 배 큰 고통을 어린 시절에 겪어야만 했다. 박 원장은 꽤 부유한양계장을 운영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돈이 궁한지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가정을 꾸려가는 아버지는 '의처증(疑妻症)'이라는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었다. 박 원장 부친의 의처증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논에서 모를심다가 아버지의 의처증이 또 발동했죠. 어머니를 논 바닥에 쳐 넣고 발로 밟았어요." 또 한밤중에 잠을 자다가도 이불을 뒤집어씌우고몰매를 때리는 일도 있었다. 이런 광경을 수도 없이 목격하고 자란 박 원장은 아버지의 발작이 언제 시작될 지 몰라 양말도 신은 채 잠을 잤다.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혹은 아버지를 피해 어디론가 몸을 숨기기 위해 생긴 기구한 습관이다. 그래서 박 원장의 어린 시절 기억은광기를 발하는 아버지의 무서운 폭력, 그리고 가혹한 학대에 시달리는 어머니, 오물 투성이 양계장의 지독한 악취뿐이다. "그런데저는 아버지를 미워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불쌍했죠. 아버지는 병만 없으면 너무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 병이 그를 그렇게 광인처럼 만든것이지요. 그래서 용서했어요." 박 원장은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지우고 아버지를 위해 용서의 기도를 올리는 심정으로 이 길을택했다. 즉 자신보다 더 슬픔에 처한 아이들에게 한가닥 위안이 되기 위해 특별한 삶을 택하게 됐다고 말한다. "아이들 너무귀여워요. 그리고 우습기도 하구요. 하나도 싫지 않아요." 심각한 정신지체와 지체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괴성과 손짓 발짓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조금도 징그럽거나 싫지 않다. 아이들 역시 박 원장을 친 엄마처럼 믿고 따른다. 소망의집 아이들 30명 중 비장애아는 5명. 세휘처럼 문 앞에 버려졌거나 다른 무의탁 시설에 있다고 옮겨온 아이들이다. 이들에게는가끔 입양 제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 아이는 입양을 보내려 하자 끝내 거절했다. 그 아이는 눈물을흘리며 박 원장에게 "왜 저를 버리냐"며 "이 곳에 있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아이들과 박 원장 사이의 혈연 보다 더욱 깊은 사랑이 형성돼있음을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결국 박 원장의 고단한 삶은 아이를 돌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 외부적 환경 때문이다. 박원장은 소망이를 천신만고 끝에 수술을 성사시켰다. 한번 수술에 1,500만원이나 든다는 대 수술이다. 수술비는 대부분 복지단체의 지원을 받았고박 원장은 170만원 정도를 보탰다. 그러나 아직도 두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한다. 박 원장은 그 동안 3,000만원의 수술비를어렵사리 모아놨다. 지금 당장이라도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돈 때문에 시기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각별한 배려다. 그러나 이제 그3,000만원도 당장 사용하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매월 100만원의 월세를 전세로 돌려달라는 집주인의 강요에 못 이겨 그만 이 돈을 전세비에채워 넣기 때문이다. "언제 수술을 받아야 할지 모르는데 걱정이네요. 수술비가 하도 많아서 미리미리 준비해 왔는데 그만..." 박 원장의 또 다른 어려움은 달갑지 않은 '봉사의 손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주로 교인들이 자주 찾아오죠. 정말고마운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주로 주일날 한꺼번에 찾아오거나 하는데 번번이 일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짐이 될때가 많아요." 저녁 7시, 이제 아이들과의 하루종일 씨름이 끝나고 좀 쉴만한 시간이다. 그러나 갑자기 20여명이나 되는 모 교회남전도회 회원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이곳에서 1시간 넘게 예배를 드리고 이미 정돈이 끝났는데도 청소한답시고 한바탕 뒤집어 놓았다. 소망의집은 박 원장과 복지사 단 1명이 사역을 감당하기에 자원봉사의 손길이 절실한 실정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방문객은 봉사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불청객이다. "정말 자기 집처럼 따뜻하게 열린 맘을 갖고 오시면 좋겠어요. 냉랭한 시선으로 둘러보고는 '별로어렵지 않겠네'라고 중얼거리는 분들을 보면 그만 속이 상해요." 지극히 낮은 곳에서 30명 어린아이들의 엄마로 살면 세상 무엇도부러울 것이 없다는 박현숙 원장. 그의 기도 속에도 아이들을 향한 깊은 사랑이 녹아 있다. "하나님 아이들이 병으로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가슴이 조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면양말 스타킹을 판매해 생활하고 있습니다. 여러사람들이 많이 구입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하지만 정작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쏟느라 정작 자신을 돌볼 틈이 없는 박 원장의육신은 어느덧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다. "오른손 마비 증세가 오네요. 침을 맞고 있는데…, 한의사가 과로와 신경을 많이 써서그렇대요. 아마 지난 겨울에 너무 힘들었나봐요." 박 원장은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혼자 말처럼 중얼거린다. "정말열심히 했지요, 생명 있는 동안 일하다 가지 뭐..." 그래도 이곳저곳 삐걱거리는 육신을 생각하며 스스로 원망도 한다. "그렇게 결심해놓고도... 그래 이 정도도 못 견디는가..." 후원문의 / 소망의집 02-406-4971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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