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전남 순천에서 음식점을 하는 박철현(47.가명)씨는 '테마 파크' 뉴스만 접하면
화가 치민다. 2003년 박씨는'순천 문화 테마파크'가 생긴다는 말에 흥분했다. 테마파크의 청사진은 화려했다. 2008년까지 1000억원을 들여
20여만 평에 롯데월드 같은 놀이시설, 골프장, 호텔을 지어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것이다.
'순천을 남부 최고의 관광지로 만든다'는 현수막이 내걸렸을 때 도시는 축제 분위기였다. 그
계획은 2년을 넘기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민자유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홍보비 등 초기 비용만 수억원을 날렸다. 박씨는 "지방마다 테마파크가
유행이다 보니 순천시가 어설프게 뛰어들었다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뒤부터 박씨의 시정 (市政)을 보는 눈은 달라졌다. "주민들이 시장이
하는 일을 꼼꼼히 따졌으면 테마파크 같은 엉터리 사업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며 "국회의원보다 단체장이 민생에 휠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사는 이재영(40.우리은행 본점 프라이빗 뱅킹 사업단 과장)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요즘 "당신이 낸 세금의 반쯤을 구청에서 주무른다"는 세무사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2005년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쓴 전체 예산 중 지방예산의 비율은 52.8%다.
마포구에서 37년을 살아온 이 과장은 여태껏 자신이 낸 세금을 누가, 어디에, 무슨 용도로
쓰는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4인가족의 가장인 이씨가 직.간접적으로 내는 세금은 하루 평균 4만여원으로 이 중 8000원가량이 지방세다.
그는 "내가 낸 세금의 반을 마포구청이 쓴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부의 예산 낭비만 관심 썼지 구청의 씀씀이엔 너무 무신경했다"고
말했다.
마포구의 지난해 예산은 2098억원. 이 돈 대부분의 씀씀이를 결정하고 도장을 찍어준 사람은
구청장이다. 구청장이 하루 평균 5억8000만원을 주무르는 셈이다. 이 돈에는 각종 판공비(업무추진비)와 공무원 봉급, 도로 보수비, 저소득층
지원비가 포함돼 있다.
기초단체장(일반시장.군수, 서울 및 광역시의 구청장)은 막강한 권한 덕분에 '지방의 소통령'으로
불린다. 건축허가, 요식업 개업 등 인허가를 받을 때면 대다수 국민이 이를 실감한다.
광역단체장(서울특별시장과 6곳의 광역시장, 9곳의 도지사)이 정치적 의미가 큰 자리인 반면 주민
생활 돌보기는 기초단체장의 몫이 더 크다.
지난해 술집을 개업하기 위해 구청을 드나들던 이현주(37.서울 신사동)씨는 "국회의원이 세다지만
구청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면서 "지방선거 때면 서울특별시장에 누가 되는지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정작 우리 주변의 민생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우리 동네 구청장이더라"고 말했다.
경희대 김종호(행정학)교수는 "국민 대부분이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에 관심을 기울일 뿐 지방선거는
대충 치른다"면서 "더구나 5.31 지방선거의 초점이 어느 당 후보가 광역단체장에 뽑힐지, 선거 결과가 내년 대선판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 등
중앙정치 이슈에 맞춰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 하루 8042원, 평생 2억원을 지방세로= 6일 출근길에 이 과장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순간 48원의 지방세가 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 그가 하루 한 갑 피우는 2500원짜리 담배에 붙는 세금은 약 1800원. 이 중 962원이
지방세다. 2500cc급 승용차를 갖고 있는 그는 하루에 1507원을 자동차세로 낸다. 연봉(6000만원)에 맞춰 주민세 1239원도 매일
낸다. 이 과장은 25평형 아파트(약 3억5000만원)를 갖고 있어 하루 2951원(재산세.도시계획세 등)을 낸다. 지난해 낸 지방세 중
70%가 재산세.자동차세와 관련된 것이다. 이런 것을 포함해 그가 매일 세금으로 서울시와 마포구청에 내는 돈은 하루 평균 8042원, 연간
294만원이다.
이 과장이 입사 때(26세)부터 76세(예상 평균수명)까지 요즘 인기있는 주식형 적립식 펀드에
이 돈을 넣을 경우 총 2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김완석 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장은 "지방세가 재산.소득.소비 등 일상생활에 스며 있어 주민들이
자신도 모르게 돈을 낸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며 "5.31선거 때 실력있는 단체장을 뽑지 못하면 주민들이 내는 돈은 줄줄 새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