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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똑 떨어지는 묘책 없수?

강산21 2005. 11. 22. 16:34
뭐, 똑 떨어지는 묘책 없수?
[한겨레21 2005-11-22 09:09] 

[한겨레] 위기의 열린우리당, ‘슈퍼전대론’에서 ‘강금실 영입’까지 묘책만 만발한데…
민주당과의 합당론도 불붙고 있지만 내부 핵분열 촉발하는 악재 될 수도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내년 2월 임시 전당대회 전후로 개혁당 그룹과 실용파의 결별 및 분당, 5월 지방선거 참패 뒤 열린우리당 해체, 2007년 대선 재집권 실패….

 

지난 4월 출범한 문희상 의장 체제가 4·30 재보선과 10·26 재선거에서 27 대 0으로 참패한 데 책임을 지고 7개월 만에 중도 하차한 뒤 여의도 정가에서는 열린우리당의 미래에 대한 온갖 흉흉한 시나리오들이 나돌고 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원내 과반수를 확보했지만 1년7개월 만에 신기남 의장, 이부영 의장에 이어 세 번째 지도부가 불명예 퇴진하는 불행을 겪고 10%대로 지지율 추락, 당내 각 계파의 분열과 갈등, 잠재적 대권주자들의 경쟁력 약화라는 삼각파도에 직면한 여당의 앞날이 그만큼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위기 때마다 두 장관 복귀론 솔솔

 

정세균 원내대표를 새 의장으로 옹립하고 각 계파가 고루 안배된 비상집행위원회로 임시 지도부를 꾸린 열린우리당은 ‘제2창당’의 깃발 아래 부산하게 움직인다. 정 의장은 전국을 돌며 국민에게 쓴소리를 자청했고, 당의 생존을 보장할 묘책을 찾기 위한 회의와 토론회도 만발한다. 임시지도부 합숙 워크숍(4~5일), 국민과의 대화(9, 10일), 당 진로 토론회(10일), 향후 정국운영 로드맵 발표(11일)…. 11월13일에는 소속 의원 전원이 북한산 진달래 능선을 오르며 반성과 새 출발을 다짐했다.

 

잘해보겠다는 마음은 굴뚝 같고, 제2창당을 부르짖는 목소리도 드높다. 하지만 당을 살릴 묘수는 여전히 미궁이다. 백가쟁명식 주장은 만발하지만, 뭐 하나 똑 떨어지는 게 없기 때문이다.

현재 당을 살릴 묘수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슈퍼전대론’이다. 내년 2월18일 치러질 전당대회에 당내 잠재적 대권주자인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출전해 빅매치를 펼쳐 국민적 관심을 폭발시키고, 새 지도부가 당을 강도 높게 혁신하자는 게 핵심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그동안 당의 실질적 큰손인 김근태, 정동영 장관은 뒤로 숨고 대리인들이 당권을 장악하면서 당을 제대로 이끌 수 없었다”면서 “두 사람이 직접 나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그 결과에 승복해 5월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올인하는 게 가장 확실한 위기 타개책”이라고 말했다. 당내 양대 세력인 재야파와 실용파의 실질적 리더인 김, 정 두 장관이 대권 수업을 받기 위해 입각한 뒤 확고한 당내 기반이 없는 신기남-이부영-문희상 의장으로 이어져온 ‘대리인 체제’가 한계를 드러낸 만큼 이제 ‘오너들’이 전면에 나서 경쟁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장관 복귀론은 여당이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거론된 단골 메뉴다. 4대 개혁입법 실패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총사퇴한 뒤 열린 4월 전당대회 때도 이런 요구는 거셌다. 하지만 대선 2년을 앞둔 시점에서 유력 대권주자가 낙마할 경우 대안이 마땅찮다는 논리, 노무현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우려하는 목소리 등에 눌려 대리전으로 결론났다. 그러나 10·26 재선거 참패 이후 더 이상 두 장관의 당무 복귀를 미룰 수 없다는 의견이 세를 얻고 있다. 당의 몰락과 붕괴를 막는 게 대선주자 보호보다 먼저라는 것이다. 10일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 중인 기간당원 20여 명이 “슈퍼전대로 위기를 정면돌파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이다.

 


김근태·정동영 두 장관 쪽도 정면승부를 피할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김 장관의 핵심 측근 인사는 “개인적 유불리를 따져 당을 버릴 수는 없다”면서 “당원의 뜻에 복무해야 한다는 대원칙 아래 김 장관은 직무를 잘 마무리하고 여의도의 참모들은 언제든 스타트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동영 장관 직계로 분류된 한 의원도 “더 버티면 무책임하다는 공격을 받을 수 있다”면서 “이제 당을 책임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임종석 등 젊은 세대를 당 대표로”

 

하지만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신중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신중론자들은 △현재 두 장관의 대중적 지지도가 워낙 낮아 둘 사이의 경쟁이 흥행 성공과 당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보장할 수 없고 △누가 당 의장이 돼도 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어렵고 △현 정치 구도로는 내년 지방선거 패배가 자명하다는 이유 등을 내세운다. 대선주자보호론과 두 장관의 경쟁력에 대한 회의론이 혼재된 것이다. 10일 정세균 의장이 “두 장관만 나오면 흥행이 되겠느냐”면서 “코앞의 일만 보면 안 되고 전략적으로 잘 판단하길 바란다”고 말한 것도 당내 신중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그냥 앉아서 죽자는 얘기는 아니다. 신중론자들은 ‘제3후보론’ ‘재선급 전대 출마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제3후보론은 강금실 장관 등 외부 인사 영입론과 임채정·유인태 의원 등 당내 다른 중진 출마론이 혼재한다. 강 전 장관은 전당대회 흥행의 보증수표일 뿐 아니라 지방선거와 대선을 겨냥한 새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임채정·유인태 두 중진은 계파 갈등을 봉합하고 지방선거까지 혼란한 당을 책임질 관리자라는 기대를 반영한다. 그러나 강 전 장관은 정계 진출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고, 임채정 의원은 지난 4월 전당대회 때 김근태 장관이 출마를 설득했지만 선거전에 대한 부담 등을 이유로 고사한 바 있다. 유인태 의원은 청와대와 가깝다는 이미지가 약점으로 꼽힌다. ‘재선급 출마론’은 김영춘, 김부겸, 임종석 등 젊은 세대를 당 대표로 전면에 내세워 새 바람을 일으켜 당 지지율을 회복하고 지방선거까지 과도기를 넘자는 논리다. 물론 복잡한 당 상황을 추스르며 지방선거를 책임질 지도력을 갖췄는지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찮다.

 

이런 마뜩찮은 현실을 고려한 절충안으로 최근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40대 재선급이 지도부 경선에 출마해 당 대표를 맡아 역동성을 확보하되, 김·정 두 장관이 당에 복귀해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지방선거를 치르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두 장관의 조기 대권 경쟁에 따른 당내 분란과 의원들의 줄서기 가능성, 지방선거 패배에 따른 두 장관의 낙마 가능성 등 부정적 요인을 제거하면서 당을 살리는 묘책인 셈이다. 김두관 대통령 정무특보도 10일 사실상 이 방안을 지지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새해 정국 구상, 두 장관의 대권 전략, 당내 각 계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맞물려 있어 어느 쪽으로든 쉽게 결론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영남포위 전략으로 회귀할 것인가

 

여당을 살릴 또 다른 묘책으로 최근 급속히 불붙는 게 민주당과 합당론이다. 합당론은 서민 유권자와 호남표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갈릴 수밖에 없는 현행 정당 구도가 존속하는 한 열린우리당 후보는 각종 선거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나름의 정치공학적 분석틀에 의존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내 상당수 호남 의원들이 민주당과 분당한 직후부터 ‘개혁세력 한 뿌리론’ ‘형제론’을 제기하고, 지난해 민주당의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대선 빚 변제’ 요구를 수용하면서 두 당 사이에 화해의 물꼬를 트려는 시도가 깊숙이 추진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지역주의 정당 구도로 회귀하는 수구적 행태라는 청와대와 개혁당 그룹 의원들의 반발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런데 10·26 재선거 패배 뒤 지지세력 분점에 따른 선거 필패론에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합당론이 조금씩 힘을 얻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염동연 의원을 중심으로 일부 호남 의원들의 간절한 소망에 머물던 합당론에 임종석 의원 등 일부 소장파까지 거세했다. 특히 11월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여당 임시 지도부에게 “열린우리당이 나를 계승한 정당”이라며 “전통적 지지표 복원”을 주문하고, 이강래 의원 등 친정동영계 의원들이 합당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일단 열기와 기대심리는 잔뜩 부풀었다. 친정동영계인 호남 출신 한 의원은 “지금처럼 평화민주 개혁세력의 분열이 장기화돼 기득권 세력에게 정권을 내주는 결과를 가져오는 게 과연 옳은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합당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말했다. 김근태 장관 쪽도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김근태계의 핵심인 문학진 의원은 최근 “민주당과 통합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의 한 측근은 “김 장관은 지금까지 민주세력의 대연합, 대통합을 주창해왔다”면서 “현 상황에서 합당론을 제기하는 게 거기에 부합하는지 깊이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합당론이 여당을 구원할 묘수인지 분열과 몰락을 부추길 독약인지 속단하기는 좀 이르다. 합당론 역시 슈퍼전대론만큼이나 정답을 찾기 어려운 난제이기 때문이다. 두 장관은 지방선거 이전에 두 당이 합당하거나, 최소한 상대 당 후보가 유력한 지역에 후보를 내지 않는 전략적 공조에 합의할 경우 대권 가도의 최대 복병인 5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 ‘절반의 승부’는 기대할 수 있는 만큼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미 심대평 충남지사와 자민련이 합당한 국민중심당과 연대를 공언한 상황에서 민주당과의 합당 추진은 사실상 1997년, 2002년 대선 때 작동했던 영남 포위 전략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영남 유권자의 반발은 자명한 일이다. 청와대의 부정적 시각도 통합의 중대 걸림돌이다. 청와대 고위 인사는 “합당론은 과거로의 회귀이며, 역 3당 합당”이라며 “그렇다면 왜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느냐”고 말했다. 수석당원인 노 대통령이 합당에 반대할 경우 합당론자들은 대통령과 결별을 각오해야 하고, 이것은 사실상 열린우리당의 분당을 의미할 수도 있다.

 

개혁당 그룹의 반발 어찌할 것인가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의 3분의 1을 장악한 개혁당 그룹과 영남 당원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참여정치실천연대 대표인 이광철 의원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지역주의 극복”이라며 “(합당은) 도로 민주당이 되자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개혁당 출신 의원들 사이에는 최근 제기된 중앙위원회 해체론, 기간당원제 당헌·당규 개정론 등이 합당 반대파인 자신들을 쫓아내기 위한 정동영 장관 쪽의 정교한 시나리오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어 합당론이 자칫 여당의 핵분열을 촉발하는 악재가 될 수도 있다. 개혁당 그룹의 한 의원은 “상대인 민주당이 극력 반발해 현실성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대로 가면 내년 선거가 어렵다는 상황논리로 합당론을 밀어붙이려는 기류가 당 안에 존재한다”면서 “결국 합당과 기간당원제 완화를 거부하는 우리를 당에서 내쫓는 것까지 염두에 둔 장기 포석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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