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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창당 초심으로!" 당지도부에 일침

강산21 2005. 11. 15. 18:01
 
노 대통령 “창당 초심으로!” 당지도부에 일침
14일 당청 만찬 “멀리 내다보고 일시적 유불리를 따지지마라”
입력 :2005-11-14 22:56  
노무현 대통령은 개혁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은 4·30재선거와 10·26재선거에서의 연이은 참패로 최근 중도·실용주의적 입장을 강화하겠다는 열린우리당 지도부에게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다.

노 대통령은 14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임시지도부를 만나 “정치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이고 정당은 정치이념을 함께하는 결사체”라며 중심을 잡아줄 것을 요구하고, ‘창당초심’을 강조함으로써 기간당원제의 폐지 및 완화를 담을 것으로 보이는 당헌당규 개정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청와대의 핵심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우리당 지도부가 먼저 훈수를 구했고, 조언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내용”이라며 “세부적으로 하나하나를 해석하지는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적어도 대통령의 입장은 분명히 밝히신 것 아니겠느냐”며 “강한 톤으로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이런 관측을 뒷받침 했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7대과제 등을 제시하며 중도·실용적 태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는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대한 청와대의 분명한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당헌당규를 개정해 기간당원제를 완화·폐지하려는 여당 내부의 움직임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도 해석될 수 있어 향후 정치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간당원제 폐지·완화 담은 당헌당규 개정 움직임에 쐐기

이날 만찬은 노 대통령이 임시지도부를 격려하는 분위기로 시작됐다. 노 대통령은 2001년 운영했던 비상대책위원회와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방문해 지지율을 하락시켰던 기억을 되살리며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운명을 따르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정책과 쌀비준안, 감세논쟁과 예산안 처리에 힘을 기울여달라”며 당지도부를 격려했지만 기간당원제 유지여부와 관련해 열린우리당 내 개혁진영과 실용진영의 첨예한 갈등을 낳고 있는 당헌당규 개정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정세균 임시 당의장이 비상집행위원회에서 정리한 7대과제에 대해 설명하자 노 대통령은 ‘창당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시대정신을 살리는 것’이라고 못 박아 사실상 유시민 의원을 비롯한 개혁진영에 힘을 실어줬다.

최근 열린우리당은 창당 2주년을 기념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중도개혁정당의 노선을 분명히 하자 △당체제 정비를 보다 발전적이고 문제는 개선하는 노력을 확실하게 정리하자 △범여권의 혁신을 추진하자 △경제 활성화와 중산층과 서민 보호는 우리당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있어서 보다 진력하고 집중하자 등의 7대과제를 제시했다.

이외에도 △당의 체제정비와 지지도 복원을 통한 통합적 구심력 확보에 우선 주력하자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당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인재발굴 기획단을 즉시 가동하자 △국민의 지적과 민생의 요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국민과의 대화 프로그램과 민생 챙기기에 역점을 두는 당활동으로서 강화해 나가자 등이 포함된다.

범여권 혁신 등 정계개편시도에도 부정적 의견 드러내

이 중에서도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역시 두 번째로 언급된 당의 체제정비. 전병헌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마침 이날 오전 국회에서 7대 과제를 브리핑하며 당의 체제정비와 관련해 “이는 당헌, 당규 개정을 포함하는 내용이 되겠다”고 못 박은 바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멀리 내다보면서 자신의 정치노선과 정책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국민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주는 정당과 정치인이 필요하다”며 “일시적인 유불리로만 따질 것이 아니라 적어도 노선과 정책으로 정당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노선과 정책에 충실하면서 멀리보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과거회귀의 현상을 보이는 열린우리당의 최근 행보에 일침을 가했다.

‘범여권의 혁신을 추진하겠다’는 세 번째 대목도 새로운 해석이 필요해졌다. 전 대변인은 이를 “범여권의 혁신추진이라는 것은 당·정·청 시스템과 대화통로와 의사소통체계를 개선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당정분리의 원칙을 제시해온 청와대의 기존 입장과 묘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

하지만 노 대통령이 이날 만찬에서 당정분리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다시 강조함으로써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노선변경을 불가피해졌다. 노 대통령은 “당정분리 원칙은 우리 정당문화의 변화에 따라 세워졌고 그에 따라 지켜온 것”이라고 말하고, “앞으로도 이 원칙 하에서 당과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대화하고 협의하겠다”며 당의 세부적 운영에는 관여할 뜻이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이는 최근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민주당·민주노동당을 아우르는 정계개편에도 암묵적 반대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의 다른 핵심관계자도 “대통령은 현재까지 탈당이나 합당이나 신당창당 등의 인위적 정계개편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혀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옛날에 많이 겪고 훌륭히 극복해온 일들” 격려

노 대통령은 “(그동안) 당 지도부를 초청해서는 메모를 적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적었다”며 이날 모임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또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이 질서를 하나하나씩 새롭게 바꿔가는 과정의 진통”이라며 “혼란스럽고 불안하지만 옛날에 많이 겪어봤고 훌륭하게 극복해온 일들”이라고 말했다.

특히 2001년 11월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운영했던 예를 들어 “당의 조직과 운영에 있어 새로운 논리를 만들고 기초를 마련해서 경선을 치르고, 그 후 당내 경선과정에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위기는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미래의 낙관적 전망을 가지고 열심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이날 공무원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등장하는 내용으로 노 대통령의 최근 생각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열심히 하자”며 참석자들을 거듭 격려한 노 대통령은 또 다시 지난 대선을 앞두고 자신이 행한 실수를 끄집어냈다. 그는 “나도 대처하는데 미흡했지만 후보가 됐는데 덜렁덜렁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동서화합 합시다’며 손 내밀었다가 지지율을 한꺼번에 3분의 1이나 잃어버리고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참패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부동산·쌀비준안·예산안 처리에 신신당부

하지만 청와대에 입성했듯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도 있었다. 노 대통령은 “그 뒤에 어떻게 극복했느냐 그것을 생각해 보면, 개인이나 나라나 조직이 다 시대 흐름에 따르는 각기 운명이 있다”며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운명을 따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만찬과 관련해 부동산정책과 쌀협상비준안 처리 등을 거론하고, “유익한 얘기가 있으리라 본다”며 “국회가 진행 중이고 중차대한 과제가 놓여 여러분들의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정책은 두 번 일을 하는 것인데 세 번 일이 안되게 잘 처리해 달라”고 주문했으며 “우리 국민들은 쌀 협상을 긴박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쌀 협상이 비준되지 않았을 때 국가가 겪을 혼란이 커서 당의 부담이 클 것이며 어려울 것인데 잘 대처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외에도 감세논쟁과 예산안 처리를 거론하며 “여러분 앞에 어려운 일이 많을 것”이라고 말하고, “당을 추스르면서 한편으로는 국정을 차질 없이 수행하기 바란다”며 당지도부를 격려했다.

당지도부 “부동산·비정규직법안 통과시켜 참여정부 성공 이끌겠다” 다짐

노 대통령의 환대에 대해 정세균 당의장은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를 거론하며 “대통령께서는 주인역할을 하느라 마음으로나 시간적으로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시고 저녁까지 마련해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는 “당이 잘 해서 대통령의 걱정을 덜어주고 국민을 편안케 해야 하는데 당이 제 역할을 못해서 어려운 상황”이라며 “비상집행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는데 단순히 내년 2월 전당대회까지 가는 관리형 지도부가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성과를 내는 비상집행위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보였다.

또 “당이 먼저 쇄신하고 국민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할 테니 대통령도 도와주시고 잘 이끌어 주시라”고 말한 뒤, 부동산정책과 비정규직 등 민생관련 법안통과를 거론하며 “참여정부의 성공과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건배제의는 처음”이라며 너스레를 떤 유재건 의원은 “역사상 처음으로 APEC에서 의장국이 돼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이렇게 불러줘 감사하다”며 사의를 표했다. 그는 “2001년 11월 당시를 포함해서 개인적으로는 임시비상집행위원만 세 번째인데 이번이 마지막이 되기를 바란다”며 대통령 내외의 건강과 성공적인 APEC총회, 열린우리당의 미래를 위해 건배를 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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