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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사형수가 부르는 찬송가

강산21 2001. 2. 28. 01:44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30대 사형수가 부르는 찬송가

 

두꺼운 감옥의 철문이"철커덩!" 닫히고 사형수 신복철(가명)이 사형집행을 당하러끌려나갔다. 그러자 감옥의 전체 사동은 무거운 정적이 흐르며 팽팽한긴장감에 휩싸였다. 마치 사동 저 끝쪽의 방에서 바늘 하나만 떨어져도그 소리가 내 귓가에 들릴 것만 같았다. 숨이 막히고 코 끝이 시큰거리며자꾸만 눈물이 고여들었다. 각자의 방에서 3렬 횡대로 질서정연하게앉은 죄수들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이 없었고, 사동에 근무하는 담당교도관조차도 먼 곳을 응시한 채 그림자처럼 붙박혀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사동 저 안쪽 방에서낮고 가녀린 음성의 노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부르는 복음성가의 일종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세상에서 방황할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하면서시작된 노래는 1절이 끝나고 2절로 접어들면서 울먹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3절이 시작되면서노래는 피울음을 토하듯 절규에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이토록 애절하고 간절한 노래를 들어 본적이 없으며, 사람의 노래를들으면서 그토록 가슴아파해 본 적도 없다. 노래가 3절로 접어들자 각방에서 하나둘씩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사동전체가 울음바다로 변해 버렸다. 절도범, 강도범, 폭력범, 경제사범가릴 것 없이 모두가 눈물 속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그 노래의 주인공은바로 그 역시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던 30대 초반의 사형수였다. 가무잡잡한얼굴에 동그란 눈을 가진 동안의 사람이었다. 긴박했던 당시의 상황을제쳐두고서라도 그의 노래 실력은 대단했으며, 그러기에 그 노래가 가지는정서와 어우러져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든 것 같다.

사형을 집행하는 당일날몇명을 집행할지는 재소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한 명을 할 수도 있고,차례차례로 여러 명을 집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사형수는다음 차례가 자신인 것으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죽음의 문턱에서그 사형수는 자신의 반성과 회한의 심경을 그 노래에 압축적으로 표현했던것이다.

"각방 쉬엇!"교도관의 구령이 울려퍼졌다. "후유!"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그 구령은 바로 오늘의 사형집행이 종료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동시에 그것은 남은 사형수들에게는 얼마간의 생명이 조금 더 연장되었음을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형집행이 끝나고몇 시간이 흘렀을까? 교도관 여러 명이 갑자기 사동 안으로 우루루 뛰어들어 왔다. 그리고는 한 사내를 급히 들쳐업고 나가는 것이었다. 업혀나간 사내는 다름아닌 또 한 명의 사형수 도재완(가명) 이었다. 평소고혈압을 앓고 있던 그가 사형집행날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뇌출혈로그만 쓰러져 버린 것이다.

이틀 후, 사형수 도재완은교도소측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망 하고 말았다. "독립군!(감옥에서의나의 애칭 - 민주화운동 한다고), 좋은 세상 오면 나 좀 살려줘. 무기수로말이야!"하던 그 깡마른 체구의 사내, 사형수 중에 유난히 삶에대한 애착이 강했던 그는 그렇게 한많은 인생을 접고야 말았다.

사형집행이 있고난다음날 아침,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눈은 빨갛게 충혈이 된 교도관들이여럿 보였다. 사형집행에 참여한 교도관들이었다. 어젯밤에 꽤나 술들을많이 마신 모양이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사형집행자의 명단은 사형집행하루전 날 교도소장에게 통보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당일날 아침에교도관들이 출근을 하면 각자의 책상 위에 하얀 장갑과 위로금, 각자의위치와 역할을 담은 메시지가 놓여져 있다는 것이다. 사형수를 데리고나오는 사람, 만약을 위해 양 옆에 도열하는 사람, 얼굴에 두건을 씌우고목에다가 밧줄을 거는 사람 등등의 역할이 배정 되는 것이다.

그중 가장 고통스러운사람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사형집행의 마지막을 담당하는 사람이다.이 사람을 감옥 용어로 '당기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떤 장치를 당기면사형수가 목이 매달려 죽음에 이르게 되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직업이라지만그 과정에 참여한 특히, 마지막을 담당한 교도관의 심적 고통이야 말로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7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군인의 신분으로소위 '남한산성'이라는 군대감옥을 경험한 선배의 얘기도 이와 비슷하다.

군법에 의한 사형은민간인과는 다르게 당시에는 총살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약 3명 정도가총알의 표적판을 매달고 서 있는 사형수를 향해 사격을 가하는데 모두가부담을 느껴 표적판을 약간 빗나가도록 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죽였다는심적부담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이다.

그래서 상관이 3명중 한 명만 실탄이고 나머지는 공포탄이니 부담없이 쏘라고 하는데 실은모두 실탄이라고 한다. 이 얘기에 대한 정확성은 나로서는 확인할 길이없다. 다만 내가 경험하고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은 아무리 합법적인 사형집행이라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의 역할은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며 매우 고통스럽다는사실이다.

합법을 근거로 한 사형집행이라는행위는 마치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듯, 수 많은 산자들의 고통과슬픔을 전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형집행으로 한 명이죽고, 뇌출혈로 또 한 명이 죽은 후, 남은 사형수들은 일주일 동안 방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일주일 뒤에 모습을 드러낸 그들의 모습은흡사 해골바가지 같았다. 정말이지 눈이 움푹 들어가고 노랗게 뜬 얼굴은일주일 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주여, 이 죄인을"이라는복음성가를 절규하며 불렀던 사형수에게 모든 재소자들이 그 노래를가르쳐달라고 모여들었다. 한동안 우리 사동은 그 노래를 배우는 소리로가득차 있었다.

나는 출소를 한 지약 2년 후 다시 투옥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바로 그 사동에 다시방배정을 받았다. 약 7명의 사형수가 있었는데 한 명을 제외하고는 새로운사형수들로 채워져 있었다. 복음성가를 불렀던 사형수도 다른 사형수도모두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하였다. 그들의 사형집행과 함께 수 많은교도관들도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리라. 사형집행 뒷편의 슬픔은중단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 평도 안 되는 0.75평의독방을 배정받아 방청소를 하고 있는데 누가 "최군! 반갑네"한다.창살 너머로 허연 백발에 환갑의 나이를 지난듯한 영감이 허허거리며웃고 서있었다. 유일하게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재회할 수 있었던 사형수!바로 그 노인네였다. 솟아오르는 눈물을 겨우 수습하고 창살너머로 영감의손을 덥석 잡았다. 내가 교도소로 막 넘어온 터라 배가 고플까봐 우유랑,빵, 담요 한 장을 주러왔다고 한다.

"영감! 이것도방 사람들한테 삥땅(뺏거나 훔친것)친 거 아잉교?"했더니 죽어라고이 물건만큼은 깨끗한 거니까 받으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자주보러 오지 왜? 이제서야 왔노"하고는 웃는다. 그래서 내가 "영감볼라고 매일 징역이나 들락날락 하라꼬!"했더니 배를 잡고 웃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노인네를 재회할 수 없었다. 아마 그도 "각방 차렷!"이라는구령 속에 피를 말리는 순간순간을 넘기다가 언젠가는 형장의 이슬로사라졌을 것이다. 사형집행 뒤에 오는 깊은 슬픔을 또 다시 남기고 말이다.사형수가 지속적으로 양산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직접적으로"당기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여 우리는 그 슬픔으로부터 얼마나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에서 옮김>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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