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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지

강산21 2001. 2. 24. 08:03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마지막 편지

 

중학교 졸업식 전날, 친구들과 졸업식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내 옆을 지나는 앰뷸런스의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집 앞 모퉁이를 돌자 아까 그 앰뷸런스가 우리집 앞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그 주변에서 웅성거리고 있었고들것에 사람이 실려 나왔다.

“아빠!” 피범벅이 된 아빠가 보이는가 싶더니 눈앞이 흐려져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은 피로엉망이 되어 있었고 엄마는 울면서 앰뷸런스를 쫓아갔다. 그날 밤, 큰언니와 나는 뒷산에 올라갔다. 간경화에 좋다는 토종 솔잎을 따기 위해서였다.몇 번을 넘어지고 손이 시렸지만 바구니 가득 솔잎을 따 왔다. 아빠가 그것을 갈아 마시고 씻은 듯이 낫기를 바라며….
다음날 내 졸업식에는식구 누구도 올 수 없었다. 신이 난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무거운 마음을 억누른 채 서러운 졸업식을 마쳐야 했다.

아빠의 병은점점 악화되어 갔다. 매달 정기 검진 날짜까지 버티지 못하고 병원에 가기를 수십 번이었다. 건강을 위해 매주 산에 올라가던 아빠는 간성 혼수가찾아와 집을 못 찾아 헤매기도 여러 번이었다. 심하게 혼수가 오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내가 고3 수험생이되어서도 아빠의 투병생활은 계속되었다. 그 무렵 아빠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가리키며 자꾸 누구냐고 물으셨다. 혹시 저승사자는 아니었을까? 며칠뒤 아빠는 12일 동안 기나긴 혼수상태에 빠지셨다. 코와 목이 막혀 자꾸만 숨이 멈추자 엄마, 언니, 나는 서로 교대해 가며 24시간 내내간호했다.

그날 밤 나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아빠 옆에 꼭 붙어서 편지를 썼다. 아빠가 깨어나면 읽어 드리기 위해 말이다. 편지 한장을 빽빽이 쓰고 피곤했던 탓에 금세 잠이 들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눈을 떠 보니 아빠의 상태가 안 좋아졌다며 엄마와 언니가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결국 의사 선생님은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 거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식구들은 그 순간이 오지 않기를 기도했지만우리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고 그날 저녁 아빠는 영원히 눈을 감으셨다.

아빠와 함께했던 마지막 밤에 아빠 얼굴을 보면서 썼던 편지를읽어 드리지 못한 것이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 하지만 아빠의 산소 앞에서 읽기에는 너무나 간절한 희망이 담겨 있기에 지금도 읽어 드릴 수가없다. 엄마아빠의 결혼 기념일과 아빠의 생신이면 아빠가 생각나고 눈물이 나겠지만 꿋꿋하게 살아갈 것이다. 함께 어려움을 딛고 견뎌 온 남은 다섯식구가 내 옆에 있으니까. 정선혜 님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좋은생각2001.1>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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