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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로를 훼방하라, 도로를 해방하라

강산21 2005. 6. 23. 17:10
도로를 훼방하라, 도로를 해방하라

교통수단으로 인정받기 위해 도로를 누비는 ‘발바리’들의 ‘떼잔차질’
자전거 타기는 육체 운동이 아니라 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은 사회 운동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서울의 토요일 오후, 회사 퇴근하랴, 결혼식 눈도장 찍으랴, 거리로 쏟아져나온 사람들. 정체된 차량 행렬에 끼어 운전대 앞에서 짜증이 난 사람들 뒤로 유쾌하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

발바리. 본딧말은 두 ‘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 매달 한 차례 떼거리가 돼 서울과 수원, 공주에서 ‘떼잔차질’을 한다. 서울에선 매달 셋쨋주 토요일 오후 3시30분 광화문을 출발해 대학로와 종로, 여의도까지 서울 자동차 교통의 중핵을 헤집고 다닌다.

기업 협찬 거부하는 ‘비자본주의적 ’태도

“We don’t block the traffic. We are the traffic!”(우리는 교통을 막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바로 교통수단이다)

발바리는 “자전거가 차도로 간다”며 욕지거리를 퍼붓는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자전거는 ‘차마’로 분류돼 자동차와 동등한 권리로 차도를 통행할 수 있는 엄연한 교통수단이다. 이들의 떼잔차질은 교통수단으로서 권리를 누리는 것이자, 자전거를 무시하는 사회를 향한 ‘준법투쟁’인 것이다.

떼잔차질은 2001년 4월 시작했다. 8명이 모였다. 1999년 PC통신 참세상 ‘자전거타기 모임’에 드나들던 사람들이 인터넷에 둥지를 틀고 벌인 첫 행동이었다. 자전거를 운동의 도구나 가벼운 산책의 수단으로 생각했지, 아무도 ‘차도 질주’ 권리가 있는 ‘교통수단’으로 생각하지 못할 때였다.

“떼잔차질은 사회적으로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인정하라는 운동이에요. 자전거 도로를 확충하고 자전거를 보호하는 교통법규를 만들고 네덜란드처럼 차도 하나를 자전거에 내주라는 요구지요.”

장철호(46)씨는 자전거 타기가 육체운동이 아닌 사회운동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아들인 한(15)군에게도 “위험해도 할 수 없다. 자전거를 타고 절대 인도로 다니지 말고 차도로 다니라”고 가르친다.


△ 매달 한 차례 '떼잔차질'을 하는 '발바리' 회원들. 자전거가 교통수단으로 당당하게 인정받기 위해 '준법투쟁' 이다.

발바리 창립멤버인 김용욱(34)씨는 떼잔차질이 자동차 문명에 대한 명시적인 반대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주말 오후 한국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떼잔차질은 화석연료를 태워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고, ‘빨리빨리’를 강요하는 체제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이다. 성질 급한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욕지거리를 들어야 하는 것처럼 자동차와 전선을 긋는 위험한 주행이기도 하다.

“자전거 타기는 철학의 문제이기도 해요. 자동차는 차체와 문으로 바깥 공간과 구획된 배타적인 공간이잖아요. 반면 자전거는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에요. 삶을 바라보는 태도 자체가 다른 거죠.”

그래서 발바리는 매우 ‘비자본주의적’이다. 자전거숍의 협찬으로 주말 라이딩을 떠나는 여타 자전거 동호회와 다르다. 지난해 여름 발바리는 서울대에서 2박3일짜리 자전거 캠프를 열었는데, 이때 기업의 협찬을 받을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다 결국 받지 않기로 했다. 김씨는 “상업주의를 배격한다는 거창한 원칙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우리끼리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는 의견이 우세해 그렇게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장도 없는 평등한 네트워크

발바리는 그래서 탈근대적이기도 하다. 회장도 없고 사무국장도 없는 느슨한 네트워크다. 그때그때 원하는 사람들이 자기 돈을 들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행사가 끝나면 흩어진다. 떼잔차질에 등장하는 ‘자전거 꽃마차’와 녹색 도시를 ‘선동’하는 홍보 팸플릿도 그렇게 준비된다. 잠수교를 자동차 없는 인도교로 만들고, 차선 하나를 자전거에게 양도하고, 대중교통에 자전거를 자유롭게 실을 수 있도록 보장하자는 내용이다.

이들이 벌이는 ‘자전거 운동’은 페달에서 발을 뗄 줄 모르는 사이클리스트처럼 쉬지 않고 달려왔다. 8명으로 출발한 떼잔차질에는 이제 기본이 50명, 화창한 날엔 100명이 넘게 모인다. 거리낌 없이 도로를 훼방(?)하는 자전거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발바리는 6월18일 50번째 질주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