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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도심을 덮어보자

강산21 2005. 6. 17. 23:45
자전거로 도심을 덮어보자
[한겨레] 매달 셋째 토요일 오후
서울 광화문∼여의도 찻길
수십대 자전거 떼거리로 등장…
벌써 5년째
18일은 1000대 목표
“수도권 자전거 모두 모여라”
매달 셋째 토요일 오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는 자전거떼가 등장한다. 산악용 자전거, 경주용 자전거, 누워서 타는 자전거, 미니 자전거 등 형형색색의 각종 자전거 수십대가 차로 한 곳을 점거한 채 광화문에서 종로, 마포를 거쳐 여의도까지 도심을 질주한다. 인터넷 자전거 동호회 ‘발바리’(bike.jinbo.net) 회원들이 벌이는 ‘떼거리 잔차질(자전차질의 약자)’이다.

2001년 4월에 시작된 도심 속 떼거리 자전거 타기는 18일로 벌써 50회째를 맞는다. 처음에 8명으로 시작된 행렬은 4년 새 100여명으로 불어났다. 어린 초등학생부터 주부, 50대 아저씨 등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차도로 ‘내려온’ 까닭은 매연과 공해에 신음하는 도시에서 자전거가 대안적인 녹색 교통수단임을 알리고, 자전거의 통행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다. 자전거 앞뒤나 참가자들 옷에는 ‘자전거면 충분하다’ ‘교통혁명 자전거’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동호회 운영을 맡은 김용욱(33)씨는 “교통과 환경 등 많은 도시문제 뒤에는 자동차가 자리잡고 있다”며 “자동차를 줄이고 그 대안으로 자전거를 타자는 것을 구호가 아닌 몸으로 직접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교통 체증이 심한 토요일 오후를 택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발바리’들은 자전거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들이다. 집에서 직장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것은 기본이다. 떼거리 자전거 타기에 참가한 지 1년 됐다는 김학구(45)씨는 20년 가까이 타던 자가용을 두 달 전 미련 없이 처분했다. 김씨는 “차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료가 3만5천원이나 많고 1년 자동차세가 50여만원이 되는 등 불필요한 낭비가 너무 많았다”며 “자전거를 타고부터는 108㎏이었던 몸무게가 30㎏쯤 빠져 건강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3년 전부터 중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자전거 타기에 나오는 장철호(44)씨는 “처음엔 왕따가 걱정될 정도로 소심했던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더니 대인관계가 몰라보게 좋아졌다”며 자전거 애찬론을 폈다.

하지만 차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여전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김용욱씨는 “자전거가 ‘교통약자’임에도 자동차들의 ‘배려’는 전혀 없다”며 “버스나 택시가 갑자기 앞으로 끼어들어 충돌하거나, 차량 운전자들이 심한 욕을 퍼붓는 일은 다반사”라고 말했다.

동호회원들은 인도 한쪽에 설치된 현행 자전거도로는 제 기능을 잃었다고 잘라말한다. 인도를 침범한 자동차에 점령당하거나, 군데군데 끊어져 도로로서 기능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인도가 아닌, 차로 하나를 자전거 도로로 만들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한강 다리 가운데 잠수교 하나 정도는 보행자와 자전거만 다니는 인도교로 바꾸고,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 자전거를 마음대로 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요구다. “그래야만 자전거가 대체 교통수단으로 제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란다.

이들은 18일 오후 3시 광화문에서 1천대의 대규모 ‘잔차질’을 벼르고 있다.

춘천·수원·청주 등 지방에서도 자전거떼가 올라오고, 회원들의 노래 공연 등을 준비해 축제로 꾸밀 예정이다. 한 회원은 자신이 직접 개발한 사지구동형 자전거를 타고 나와 시운전을 벌이고, 자전거 하나로 5년째 세계 54개국 7만㎞를 돌고 있는 캐나다인 르네 월릿(55)도 가세한다. 월릿은 2000년 8월 고향인 캐나다 퀘벡을 출발했으며, 일본을 거쳐 지난달 31일 부산에 들어와 4일 서울에 도착했다.

한 회원은 동호회 사이트에 “수도권 자전거의 총동원을 호소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 사이트는 “안전하고 즐겁게 ‘잔차’를 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광화문으로 오세요”라고 ‘유혹’하고 있다.

이호을 기자 helee@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