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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쓰나미'에 휩쓸렸는가

강산21 2005. 6. 24. 12:02
‘황우석 쓰나미’에 휩쓸렸는가
[한겨레21 2005-06-17 18:12]

[한겨레] 배아 줄기세포 연구 결과에 나라 전체가 집단 흥분 상태
정부나 언론이나 생명윤리에 대한 논쟁 없이 ‘영웅 만들기’만

▣ 김동광/ 과학저술가·고려대 강사

 

여러 차례 깜짝 놀랄 만한 뉴스가 나올 것이라고 뭔가를 암시하던 황우석 교수가 지난달 19일 배아줄기 세포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우리 사회는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집단 흥분 사태에 빠져들었다. 한 기자는 이러한 현상을 지진해일(쓰나미)에 비유하기도 했듯이 거의 나라 전체가 한 과학자의 연구를 놓고 술렁거렸다. 이 비유가 적절한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다. 하나는 지진해일이 닥치면 오로지 한 방향의 물결만이 몰아닥친다는 점이다.

 

자심감 넘치는 행보, 종교사회단체 대응 약화

 

다시 말해서 영웅으로 추앙된 황 교수의 연구를 칭송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목소리가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가 적절한 좀더 중요한 다른 이유는 쓰나미가 닥치면 아무도 그 상황에서 비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물결에 순응해서 같은 방향으로 높은 곳을 향해 냅다 달려가서 목숨을 건지거나 아니면 죽거나 둘 중 하나다. 즉,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문제를 짚어보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는커녕 잠시 관망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 주제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당신의 입장은 찬성이냐 반대이냐?”라는 단답형 질문을 받고, 그 이상의 논의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조금 길게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다시금 채근을 해댄다. “좋은 말씀인데, 그래서 찬성이냐 반대냐?”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뭔가 입장을 밝혀야 하지 않는 경우 차츰 입을 다물게 된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런 양상은 쓰나미가 몰고 온 깊은 상처 중 하나일 수 있다.

 

황우석 교수와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이번 사태는 지난해 2월13일 <사이언스>지에 연구결과를 발표한 뒤 나타났던 상황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다만 사회적인 흥분의 규모와 정도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을 뿐이다. 우선 윤리적인 측면에서 쟁점은 완전히 동일했다. 사람의 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였다는 점에서 배아의 윤리적 지위를 둘러싸고 치료를 위해 사람의 배아를 파괴하는 것이 옳은지 여부가 제기될 수 있다. 또 이 연구가 지속될 경우 예상되는 난자 획득을 둘러싼 숱한 윤리적 문제도 제기된다.

 

사회적인 열광 분위기가 조성된 이유 역시 변한 것은 없다. 우리의 과학자가 세계 최초의 연구를 하고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민족적 자부심, “줄기세포에 ‘메이드 인 코리아’를 찍고 싶다”는 애국주의, 불치병과 난치병이 곧 치유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이러한 연구가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리라는 경제적 기대 등이 한데 버무려져서 서민적이고 성실한 황우석 교수의 개인적 이미지와 결합해 한껏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다른 점은 무엇인가? 굳이 다른 점을 꼽는다면 지난해에 비해 종교사회 단체들의 대응이 약화된 반면, 황우석 교수쪽은 훨씬 대담하게 행보를 계속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윤리·사회적 문제에 대한 지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워낙 거세게 밀어닥친 흥분 사태 때문에 즉각 반응을 표명하지 못하거나 언론과 사회 전반의 ‘영웅만들기’에 가려져 별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종교단체와 윤리학자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견해를 발표했다.


시민단체 성명, 주요 언론은 다루지도 않아

 

이번 사태 뒤 처음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단체는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였다. 이 협회는 5월27일 “인간배아 연구는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미약한 인간 생명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인간 생체 실험이며 '살인하지 말라'는 보편적 도덕률을 범한 비윤리적 범죄 행위”라고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배아를 대상으로 한 황 교수의 연구가 궁극적으로 “과배란 촉진에 따른 여성 신체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아 여성을 실험 도구화하고,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며, 비윤리적인 난자 매매를 가속화하는 위험도 안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처음 나온 공식적인 반응인 만큼 여론의 뭇매가 가해졌다. 인터넷판에 실린 댓글은 2만개가 넘었고 그 내용은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고 윤리적 지적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감히 다른 견해를 달았다가는 순식간에 집중 공격을 받기 십상이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씨는 “열광적인 찬양의 분위기에 압도돼 냉철한 성찰과 비판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상황을 일본의 정치사상가 후지타 쇼조의 말을 빌려 “안락을 위한 전체주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인터넷상에서는 온갖 비난의 표적이 되었지만, 정작 주요 언론들은 이 성명을 다루지 않았다. 그 뒤 천주교 주교회의도 “황 교수의 연구가 인간 생명체인 배아의 복제와 인간 생명체의 파괴라는 반생명적 행위를 수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활발한 활동을 보였던 시민사회단체들은 소극적인 자세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기고 등을 통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변화는 황우석 교수쪽이 지난해와 달리 형식적인 언급 이상 윤리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태생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계속 밀고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들은 시민단체가 성명을 내지 않는 것은 지적하면서 정작 태풍의 핵에 해당하는 황 교수쪽의 이런 윤리 불감증에 대해서는 한줄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가령 지난해만 해도 기관윤리위원회(IRB) 통과, 난자 획득 경위 등 윤리적 문제가 불거지자 황 교수는 2월에 잠정적으로 연구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경쟁국들이 관련 연구를 서두르고 있어 우리가 추월당할 수도 있다는 구체적인 정보가 있어 연구 재개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국민적 성원, 언론과 정부의 절대적 지지 등에 힘입어 윤리 문제로 발목 잡히지 않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말하자면 윤리 문제를 ‘처리’하는 데 상당한 자신감을 얻은 셈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언론과 정부가 한몫을 단단히 했다.


이 자리에서는 특종 제조자에 대한 예속으로 거의 황 교수의 녹음기 수준으로 전락한 대부분의 언론매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황 교수의 인기에 영합해서 어떻게든 떨어진 지지를 회복해보려는 노무현 정권과 일선 업무를 담당하는 복지부, 그리고 최근 간신히 구성을 마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문제점은 지적돼야 할 것이다. 이미 황 교수의 연구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국가 차원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한낱 이익집단이 아니라면) 이 주제를 공익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의무가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주제는 개인 연구자와 시민단체, 또는 윤리학자 사이의 논쟁으로 다루어질 수준을 이미 오래전에 넘어섰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체들은 당장의 대중적 인기에 눈이 멀어 거의 천박한 수준으로 황 교수 떠받들기에 골몰하고 있을 뿐 이 연구가 가져올 사회·윤리적 파장을 진지하게 다룰 의지가 결여돼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에 구성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며칠 전 간담회를 열었지만 황 교수의 연구 문제는 의제에 오르지조차 못했다.

 

왜 국가생명윤리심의위는 입을 다무는가

 

이 위원회는 엉뚱하게 생명윤리운동협의회가 생명윤리기본법이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면서 헌법재판소에 청원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있다. 이 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지난 5년여 동안 쏟아부은 노력이 헛된 것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이 대목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역시 한손으로는 윤리를 주무르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연구를 지원하는 이중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 목전의 인기가 아닌 장기적인 안목에서 무엇이 국가적 이익인지 살피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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