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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비밀 광복군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강산21 2015. 11. 12. 02:19

 

박정희가 비밀 광복군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인터넷 사이트 일간 베스트 저장소 회원들과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러한 주장이 돌고 돌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져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박정희 비밀 광복군'이라고 검색해보면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

 

그들은 그 근거로 대한민국 육군본부가 발간한 <창군 전사> 265쪽에 실린 글을 언급한다. "만주에 있던 교관들은 그들대로의 지하 조직이 있었다. (중략) 박정희, 신현준, 이주일 등은 광복군 제3지대의 비밀 광복군으로서 거사 직전에 해방을 맞이하였다"라는 대목이다. 여기서 언급된 박정희가 바로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박정희를 의미하며 그가 광복군 제3지대 소속의 비밀 광복군이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박정희가 비밀 광복군이었다는 기록은 또 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국회의원과 힙참의장을 지낸 장창국이 1984년에 출간한 <육사 졸업생>에서 밝힌 박정희의 '비밀 광복군' 가담 경위이다.

 

"신태양 악극단이 1945년 2월 9일 (만주군) 7연대에 들어가 공연을 했다. 광복군은 이 악단에 잡역부를 가장한 공작원 이용기를 투입했다. 이 씨는 부대 간부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박정희 중위, 신현준 대위와 만나는 데 성공했다. 이 씨는 광복군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의 직인이 찍힌 광복군 임명장을 박 중위와 신 대위에게 줬다. 이래서 그들은 광복군 비밀요원이 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정말로 박정희가 친일 군인이 아니라 비밀 광복군이었단 말인가. 어처구니없게도 이 모든 허구는 박정희에게 잘보여서 치부하려던 한 사람의 거짓으로 시작되었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후 두 번째로 대통령 선거에 도전한 1967년 일이다. 당시 박영만이라는 사람이 쓴 소설 <광복군>이 이 모든 허황된 이야기의 진원지였다. 광복군 출신인 박영만은 소설 <광복군>에서 박정희의 행적을 미화하여 왜곡한다. 그 주요 내용을 보면 이렇다.

 

1945년 2월 당시 만주국 중위였던 박정희가 광복군에 가담한다. 박정희는 뜻이 맞는 한국인 동료들과 비밀리에 부대 안에 조직을 만들었고, 훈련 때면 사병들에게 우회적 방식으로 독립사상도 고취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광복군 제3지대장인 김학규 장군으로부터 "부대를 장악하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를 보아 일본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그 기회를 엿보던 중 예상보다 빨리 일제가 항복하는 바람에 거사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 이 책에서 밝힌 '박정희 비밀 광복군' 활동의 골자이다.

 

이러한 박영만의 소설 속 내용은 친일 군인으로 알려진 박정희를 비밀 광복군으로 둔갑시켰다. 장준하가 1967년 대통련 선거 당시 유세에서 이 책을 언급하며 박정희를 비판했으니, 당시 이 책이 일으킨 파문은 적지 않았다. 장준하는 유세 때마다 박정희의 광복군 둔갑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정희 씨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어느 책에 나와 있는데, 독립운동 당시에 박정희씨는 북경 지방에 일본인 장교로 있었어요"라며 광복군 출신인 자신이 잘 안다고 통렬하게 질타했다.

 

그렇다면 왜 박영만은 이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지어낸 것일까. 그 진실을 밝힌 이는 전 광복회장 김승곤이었다. 박영만과 소설의 출판 과정을 잘 알고 있던 김승곤은 2006년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다.

 

박영만은 청와대에서 돈을 받을 줄 알고 책 <광복군>을 썼는데, 내용을 훑어본 박정희 대통령은 "내가 어디 광복군이냐, 누가 이 따위 책을 쓰라고 했냐"며 오히려 화를 냈고, 결국 박영만은 돈 한 푼 못받고 거창하게 준비한 출판기념회도 치르지 못했다.

 

박정희조차 왜 이런 엉터리를 썼냐며 화를 냈다는 증언이다. 결국 박영만이라는 사람이 박정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왜곡된 사실을 담은 책을 내면서 발단이 된 것이다. (중략) 이처럼 거짓으로 꾸며진 이야기를 근거로 육군본부 <창군 전사>가 잘못 쓰였고, 그로부터 4년 뒤 나온 장창국의 책 <육사 졸업생>에 다시 왜곡된 사실이 담겨진 채 수정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 고상만, 오마이북, 2015. 12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