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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와 승자독식경기

강산21 2014. 10. 3. 16:50

결투와 승자독식경기

 

백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의 신사들은 누군가 자신을 모욕하면 결투를 신청했다. 결투 당사자들은 결투 장소에 각자의 입회인들을 데리고 새벽에 나타났다. 결투는 몇 가지 공식적인 규칙에 따라 행해졌다. 첫 번째 규칙은 총의 발사거리를 정한 것이었다. 이 규칙에 따르면 결투자들은 처음에 등을 맞대고 서 있다가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간 후 뒤돌아서서 총을 쏘아야 했다. 두 번째 규칙은 사용되는 총의 종류 및 형태를 정한 것이었다. 이 규칙에 따르면 총신은 평평하고 나선형의 홈이 없어야 했다.

이런 규칙들은 결투자들의 사망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결투자들이 일정 거리를 걸은 후 돌아서서 총을 발사하게 한 것은, 명중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것이었다. 총신이 평평하고 매끄러워야 한다고 정해놓은 것은, 발사된 총알의 정확성을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다. 총신 안쪽에 나선 모양의 홈을 새긴 '라이플'은 총알이 총신을 떠나자마자 선회하게 하며, 이 경우 총신이 평평할 때보다 총알이 직선에 가깝게 날아간다. 총알이 선회하면서 목표물을 향해 가는 것은, 마치 여러 번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날아가는 축구공이 그렇지 않은 축구공보다 더 정확하게 골대를 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회전하지 않는 투사물은 너클볼처럼 산만하게 비틀거리며 불규칙적으로 날아간다. 총알을 단 한 발만 발사하라는 규칙은, 100발이나 쏠 수 있는 라이플 총으로 싸울 경우 결투자들이 어떤 운명을 맞을지 상상해보면 그 타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규칙들은 목적 달성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즉 영국에서 일어난 200여 건의 결투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6명의 결투자들 중 한 명 꼴로 상대방의 총알에 맞았으며, 14명 중 한 명 꼴로 죽었다고 한다. 이 수치는 어쩌면 실제 사상률을 과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결투는 검시관이 할일이 없을 정도로 아무 일 없이 끝나버려 문서로도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정도도 명예를 지키기 위한 대가로는 너무 비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상 모든 산업사회에서는 결투가 금지되었다.

규칙에 의해 규제되지 않은 결투는 승자독식경기의 많은 특징들을 내포한다. (승자독식 경기들은 상쇄작용을 일으켜 사회적인 낭비만 초래한다.)

 

<승자독식사회> 로저트 프랭크, 필립 쿡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08. 216-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