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안과이슈

급식담당자가 바라보는 무상급식

강산21 2010. 3. 18. 10:46

급식을 담당하시는 영양사분께서 쓰신 글인데 참 공감이 갑니다.... 많이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58335

 

이 글을 쓰는 제 마음을,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겪을 학생들의 상처를 한 번씩만이라도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18년째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영양사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은 초등학교부터 중, 고등까지 발령이나면 옮겨다니는 곳이므로 대부분을 초등에서 근무했지만 중학교 4년, 고등학교 1년 6개월을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곳은 지방이라 거의 100% 직영으로 운영되고 납품업체도 공개경쟁입찰로 선정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은 학생이 약 500명 정도됩니다. 초등학교는 급식비 징수에 큰 문제가 없는데 중고등학교는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대다수의 학교에서 중식지원(급식지원)업무를 영양사가 맡고 있으며 학년초가 되면 가정형편이 적힌 담임교사의 추천서를 받아 국민기초수급자부터 저소득한부모가정, 시설보호중인 아동, 기타 극빈한 학생에 이르기까지 중식지원자를 선정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살펴보면 부모의 가출, 사망으로 인한 한부모가정의 자녀들도 있고 심한 학생은 부모가 있어도 거의 방임상태에 놓여있고 생활능력이 없는 부모로부터 급식비를 받지 못해 무상지원을 받는 아동들도 있습니다. 아예 어려운 학생들은 이미 급식지원을 받고 있으며 급식비 징수에 문제가 되는 학생들은 중간정도의 생활수준이나 최하층은 아니고 하위권 학생들이라는 뜻입니다.


 학교급식비는 월별로 선징수해야하며 급식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급식비를 내는 돈으로 식재료도 구입하고 퐁퐁, 고무장갑도 사고 급식기구도 수리하고 가스값도 내고 계약직 조리원의 인건비도 지급하고 있습니다.(영양사, 조리사는 공무원으로 인건비는 교육청에서 지급) 그런데 문제는 학생들이 제 기한 안에 급식비를 내지 않는 다는 것이죠(중고등학교가 심함). 제 날짜에 내는 학생들이 1/3도 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는 독촉해야 그 때 내고 학교에서 납부를 독촉하지 않으면 다음달, 그 다음달로 계속 밀리게 되므로 학교 행정실에서 납부를 독촉하게 됩니다. 그냥 놔두면 미납액이 한 해에 몇 백만원.. 천만원 근처까지 가므로 학교에서 그냥 놓아둘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제가 근무하던 남자중학교도 매달 급식비를 안내서 엄청 힘들었습니다. 급식은 매달 예산 수입의 범위안에서 적정하게 운영해야 합니다. 급식비는 수입이 들어온 범위안에서 식단을 편성해야하므로 돈을 안낸 학생들이 돈을 낸 학생들의 급식비를 갉아먹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학교 행정실뿐 아니라 급식실에서도 식권이나 다른 방법으로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들을 통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학교도 제가 식권이라는 방법으로 통제를 하지 않으면 행정실에서 급식비를 모두 걷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급식비가 걷히지 않으면 주나 월단위로 지출해주는 급식비를 업체에 지불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서 받아서 다른 곳에 사용하는 학생도 있지만 제 관심의 대상은 없어서 못내는 학생들입니다.

  급식비를 걷는 것이 제 업무는 아니었지만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들 때문에 문제가 커질때는 급식실 문을 잠그고 못먹게 한 적도 있어서 한 선생님과는 얼굴이 벌개지면서까지 대판 싸웠던 적도 있습니다. 그 선생님은 학생들이 무슨 죄냐, 돈은 내일 내면 되지 않느냐, 배고픈 채로 수업할 학생들을 생각해봐라 하셨고 저는 선생님들이 기간안에 급식비를 내도록 지도하는 것도 교육의 일환이고 지도해야할 사항이라고, 또 학생들도 매번 그냥 받아주니 기간안에 안내지 않냐고 이렇게라도 해야 제 때 낼 것 아니냐며 멱살만 안잡았지 정말 대~판 싸웠습니다. 물론 그러는 제 마음도 학생들의 마음을 압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밥 못먹는 학생들의 마음을 물론 알지요. 그런데 교육학을 배우면서 알았습니다. ‘잠재적 교육과정’ 이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요.

  학생들이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배우는 정규 교육과정 외에 선생님 혹은 친구들로부터 배우는 것들이나 받는 상처들도 교육과정이라고.....학교의 물리적 조건, 제도 및 행정적 조직, 사회 및 심리적 상황을 통하여 학교에서는 의도한 바 없으나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학생들이 은연중에 가지게 되는 경험이 바로 잠재적 교육과정입니다.

  잠재적 교육과정에 관한 관심은 학교의 역기능이 무엇이며, 그러한 역기능이 나타난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서 교육의 힘으로 이를 최소화하거나 없애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학교 안에서 청소년들이 평등한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건전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하여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경험하는 것 중에서 학교에서 의도하지 않았거나 학교교육 속에 숨겨져 있는 잘못된 경험을 찾아내고 이를 표면화하여 이러한 경험을 없애고자 하는데 관심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무너졌습니다. 제가 얼마나 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생채기를 내고 할퀴었는지를요.. 물론 못 먹게 한 것이 월말쯤의 일주일정도밖에 안되었고 그렇게라도 해야 그 때서야 급식비를 내는 학생들이 1/3이 넘었지만 당하는 학생들에게는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상처였을까요? 그래서 소심해 상처받을 것으로 판단되는 아이들은 늦게 따로 오라고 불러서 밥도 먹게 해주었고 식탁에 놓아두고 간 식판 몇 개 치우라고 시키고 얘들아. 일했이니 당당하게(?) 밥 먹으라고 이야기도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들 상처야  이미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안하면 와서 먹으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 때의 제 진심이 조금은 그 학생들에게 통했었습니다. 친구 밥먹는데 뒤에 서서 튀김같은 반찬 얻어먹고 있는 아이를 오라고 해서 준 적도 있습니다만 그런 일들로 학생들이 받는 상처가 치유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급식담당자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해도 제가 주었던 상처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임을 압니다.


 지금 어느 당이나 궁극적인 목표는 무상급식이지만 어느 한 쪽에서는 지금 100% 무상급식하자, 어느 한 쪽에서는 재원 조달이 어려우니 시차를 두고 점진적으로 하자고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은 작년까지는 면단위 초등학교 100%, 올해는 읍지역 20학급 미만의 초등학교 전체를 무상급식하고 있습니다. 그냥 이대로 진행되어도 언젠가는 100% 무상급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학생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받는 상처는 마음에 할퀴어져서 평생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급식비 안 낸 아이들을 골라내야했던 저도 아직까지도 가슴이 저려옵니다. 그 아이들의 눈과 표정에 나타났었던 당혹감과 난감함, 걱정, 반항심... 그 아픔들이 아마 뼈에 사무쳐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예전의 그 학교들은 별다른 대책없이 그렇게 진행됩니다. 제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누군가는 오늘도 또 겪고 있겠죠.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어느 한 두 학교가 혹은 어느 한 두명의 개인들이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중식지원자 선정을 위해 부모의 건강보험료 영수증을 제출해야하는데 올 해부터는 부모 모두 수입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까지 학교에 제출하도록 변경되어 공문이 시달되었습니다. 그 서류.. 말하지 않아도 왜 그러한 서류를 내는지 다른 학생들이 이미 압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어 급식지원을 받다보니 부모들이 그 서류들을 챙겨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담임교사는 서류제출을 2차, 3차 독촉하게 되는데 요즘 선생님들이 아무리 따로 불러 이야기해도 어찌 표시가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100% 무상지원되어야 상처받는 학생들이 생겨나지 않는다고..그래서 별도의 재원을 조달해서라도 반드시 빠른 시일내에 100% 무상지원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학생들이 어린 나이부터 주눅들지 않도록,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조금씩 주머니를 더 열던지 불필요한 운영경비에서 줄이든지 해야 할 때입니다. 선배들이, 학부모가, 사회단체들이 급식후원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선생님들중에는 급식비를 대신 내 주고 돈 때문에 못가는 수학여행 경비를 대신 내주시는 분들이 아직도 있습니다만 그것도 해결방법이 아닙니다.

 이미 무상급식은 각 시도에서 추진해 나가고 있는 과제였습니다. 이제 그 과제가 수면위로 떠올랐고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시점이니 모든 사람들이 교육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의도하지않은 비교육적인 역기능을 해소하여 밝고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