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안과이슈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관한 10문 10답

강산21 2010. 2. 10. 23:47
1. 학생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학생인권만 생각하다 보면 면학분위기가 훼손되지 않을까요?

☞ 학교가 즐거운 공부의 장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야말로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이유입니다. 학교생활이 즐거워야 공부도 즐겁고, 공부가 즐거워야 몰입도 가능하겠지요. 학생인권조례는 학교를 가고 싶은 공간으로, 폭력이나 차별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공간으로, 자유로운 공기를 흡입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 기여합니다. 학생들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학생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 기여합니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도 높아질 것이고 그에 따라 교사와 학교에 대한 신뢰도, 면학분위기도 한껏 높아질 수 있습니다.

☞ 규제 일변도로 학생을 통제한다고 해서 공부에 대한 몰입이 따라오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이 공부에 대한 동기를 갖고 몰입하기를 원한다면 통제가 아니라 다른 교육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두발규제를 없애면 공부는 안 하고 머리에만 신경 쓰게 될 거라고 우려하시지만, 이미 많은 대안학교들과 몇몇 일반학교의 선도적인 실험으로 이러한 우려가 현실적이지 않은 우려임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외려 규제 일변도로만 가다보면 학생들이 더 머리에만 신경 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억눌리는 지점에서 더 자극을 받는 법이니까요.

☞ 공부라고 하면 교과 공부만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데, 인권을 배우는 것도 중요한 공부입니다. 사람살이의 기본을 가르치는 것도 학교의 존재 이유니까요. 그리고 인권은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익힐 때 가장 잘 학습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교육은 민주시민 양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사회과나 도덕과 등의 교과에서 인권의 가치와 내용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민주시민이란 권리를 행사할 줄 아는 자유로운 사람이자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학생인권조례는 우리 교육의 목표를 실현하는 데 기여합니다.

☞ 인권에 대한 공부는 시끌시끌한 공부입니다. 조용한 시장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인권에 대한 공부도 시장처럼 시끄러워야 제대로 면학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끄럽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지적, 정서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이고, 차이를 조정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밟아나가는 연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권교육을 열심히 시행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됨으로써 수업 방해 행동을 개선하는 효과를 거두었다는 연구보고도 있습니다.


2. 우리 학생들은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기 행동에 책임지도록 의무에 대한 교육이 먼저이지 권리가 먼저 주어져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 학생들이 인권을 서툴게 행사하는 과정에서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질까봐 염려가 되시나 봅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을 방임하거나 무책임한 존재로 기르려는 것이 아닙니다. 통제와 방임, 의무와 무책임 사이에 나 있는 좁은 그 길,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걸어가지 않아 좁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그 길을 확장하려는 노력입니다. 물론 인권을 배우고 행사하는 과정에서 의견차나 갈등이 빚어질지도 모릅니다. 학생들만큼이나 교사들에게도 인권은 아직까지 충분히 경험되지 못한 가치이기 때문에 서투름이 부르는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린아이가 넘어지지 않고 걸음마를 배울 수 없듯이, 학생도 교사도 실수를 통해 배움을 얻고 갈등을 조정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성숙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학생도 교사도 인권에 대해 성숙할 수 없습니다. 폭력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자기 가정을 꾸린 이후 고스란히 폭력을 대물림하듯이, 인권을 존중받는 분위기 속에서 교육받을 때 자기와 다른 사람을 동시에 존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다림이 없는 교육’은 질서정연해보일지 몰라도 학생들의 영혼에 대한 보살핌은 없는 교육이 아닐까요? 스스로 책임감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교육이 아닐까요?

☞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의 기준을 제시하는 일도 하겠지만, 인권에 대한 감수성과 의식을 키울 수 있는 인권교육을 강화하는 방안도 찾아볼 것입니다. 인권교육은 권리 주체들의 인식과 힘을 키우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동시에 길러줍니다. 인권교육과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이 함께 간다면, 우려되는 혼란과 갈등은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 무엇보다 인권은 일정한 책임과 의무를 다한 경우에만 주어지는 대가가 아닙니다. 잘못된 행위가 있을 때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은 물을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의 인권이 부인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권은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존엄을 지키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권리들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또한 권리가 주어질 때 책임 또한 명확히 요구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학교 안에서 상대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학생에게는 인권이 더욱 필요합니다.


3. 학생들 사이에 장난으로 인한 사고도 많고 폭력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통제가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요?

☞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학교로서는 당연히 제기하실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고 가운데 학생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고는 무엇입니까? 학생들 사이의 집단괴롭힘, 성적이나 생활을 비관한 학생 자살,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폭력 등일 겁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바로 이런 문제들을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기에 학생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근본적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교사의 경우 종종 학생의 안전사고에 대해 과도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기 때문에 불만을 터뜨리십니다. 보호자의 경우 학교가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고 불만을 터뜨리십니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안전에 대한 우려가 크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인권을 보장하자는 것이 방임 내지 방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반드시 예방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학생들을 일일이 규제하고 훈계해도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학생들이 웃고 떠들고 돌아다니고 장난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고삐를 죄고 꽁꽁 묶어두고 울타리를 친다고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을 억누를 수는 없습니다. 외려 학교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널찍한 목장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다만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사후 처리를 적절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며,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자기와 타인의 몸을 돌볼 줄 아는 힘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일일이 지시와 통제에 따라 움직이는 학생은 자기 몸은 물론 타인의 몸을 제대로 살피고 돌볼 줄 모릅니다. 교사가 아무리 일일이 살핀다 하더라도 매순간 모든 학생을 살필 수는 없습니다. 시스템과 예방교육은 학생의 안전뿐 아니라 교사의 업무 피로도와 부당한 책임에 대한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방안입니다.


4.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건 교사들을 문제집단으로 보기 때문 아닌가요? 요즘 과잉체벌 교사처럼 간 큰 교사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교사들은 학생들 인격 존중합니다. 그런데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면 교사들 사기가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 학생인권조례는 일부 교사의 과잉 생활지도로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에게 교육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데 반대하실 분은 없을 겁니다. 국제인권기준에서는 교육권의 본질적 요소로 ‘학생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존중되는 학교규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에서도 학생 인권의 보장을 의무화하고 있지요.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에게 이미 보장되어 있어야 할 인권을 좀더 실효성 있게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다고 해서 모든 교사들이 문제집단으로 간주되지는 않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사들을 학생인권의 지지자이자 옹호자로서 초대하고 있습니다. 교사 전체가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권과 같은 중요한 문제를 교사 개개인의 인식과 판단에만 맡겨둘 수 없기 때문에 법과 조례를 통해 학생인권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모든 부모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법으로 아동학대를 금지하고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 심각한 학생인권 침해 사례가 언론에 알려지고 나면, 종종 교사 집단 전체가 비난을 받곤 합니다. 학생인권이 무시된 사례를 보면 해당 교사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학교구조나 ‘군사부일체’로 대표되는 사회의식의 문제가 버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구조와 사회의식을 인권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학생인권이 무시되는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교사들의 자긍심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또한 교사들이 조례 제정에 적극 지지를 표하고 나서주신다면, 오히려 교사 전체를 문제집단으로 간주하는 시각을 교정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입니다.

☞ 학생인권조례는 더 이상 구시대적인 학생 지도 방식으로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민주시민, 세계시민의 자질을 키울 수 없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 권리를 당당하고도 책임있게 행사할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은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존중하는 학교를 만들어내는 데도 기여할 것입니다. 이런 학교는 당연히 교사들에게도 즐거운 학교일 것이고, 교사들의 자긍심이 지켜질 수 있는 학교일 것입니다.


5. 학생인권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왜 학생인권만 얘기하고 교권은 얘기하지 않습니까? 요즘 학생들에게 당하는 교사들도 점점 늘고 있지 않습니까?

☞ 학생들의 말이나 행동으로 교사들도 상처받는 일들이 간혹 있습니다. 자괴감을 느끼는 교사들도 계십니다. 이렇게 교사들이 상처받는 일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학생인권을 먼저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뿐 아니라 교사의 인권과 권한 또한 존중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학생들에게는 인권보다는 의무가 먼저 요구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권리를 행사하면서 배우고, 참여하면서 책임질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당장은 당혹스런 상황이 간혹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학생이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나면, 학생들도 두려움 때문에 교사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교사의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 교사에게 상처주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학생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교사가 한 사람의 ‘인간’이라기보다는 ‘권력자’로 보이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강자는 상처받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또한 교사를 괴롭히고 당혹스럽게 만드는 일을 즐기는 학생의 경우는 ‘강자’에게 도전함으로써 주위 학생들에게 힘을 과시하고픈 마음에서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규 여교사 등 약해보이는 교사들이 주로 그런 학생들의 표적이 되곤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교사와 학생의 동등하지 않은 관계’가 문제의 저변에 깔려있다는 점입니다. 학생의 인권이 존중될 때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변화하고, 교사의 인권에 대한 존중도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 교사와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다른 문제로 공격적 행동을 보이는 학생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의 학생은 몸이 아픈 환자에 비유해볼 수 있습니다. 환자가 아파서 몸을 뒤트는 과정에서 의사의 얼굴을 할퀴었다고 해서 환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의사를 부러 괴롭히려 했던 것이 아니니까요. 지금 몇몇 학생들이 보이는 공격적인 행동도 어쩌면 아픈 환자의 뒤틀림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학교나 가정,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 ‘나쁜 행동’을 보이는 경우에는 뿌리를 건드려야지 교권을 내세워 학생을 제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 경우, ‘나쁜 행동’은 더 약한 사람에게 옮겨갈 뿐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 ‘교사가 학생들에게 당하고 있다’는 것이 어떤 행동을 두고 말하는 것인지도 따져보아야 합니다. 교사의 뜻에 따르지 않는 학생들의 행동을 죄다 잘못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교사의 뜻이 언제나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교사의 뜻이나 인권기준에 어긋나는 규정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당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6. 학생인권을 신경 쓰다 보면 요즘처럼 거친 학생들을 지도하기가 힘듭니다. 교사에게는 학생을 지도할 책임도, 지도할 권리도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까지 만든다고 하니 학생지도를 포기하라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을 ‘지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권을 존중하는 ‘학생지도’를 가능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권리는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에 보장된 학생의 학습권을 실현하기 위해 요구되는 직무상의 권리입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에 있든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으므로 인권은 몸에서 떼어낼 수 없지만, 교사의 가르칠 권리는 그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에만 인정되는 권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사의 교육권은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조정, 제한될 수 있습니다. ‘학생 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서 ‘학생 지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학생 지도’와 학생인권은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하는 것입니다.

☞ ‘지도’라는 말에 대해서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칙은 준수되어야 하고 교사는 늘 옳다는 전제 하에서 학생을 ‘지도’하려다 보면 지금 학교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과 불신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 ‘지도’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교칙(학교생활규정 등) 역시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이 제시한 학생인권기준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책임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교육이라고 할 때, 학생인권 존중은 필수적으로 요청됩니다. 교칙이 정당성을 확보하고 학교와 교사가 학생인권을 존중한다면, ‘지도’하지 않아도 자발적인 준수와 책임의식이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만약 폭력적인 행동으로 다른 학생이나 교사가 위험에 처할 염려가 있을 때, 또는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을 때 그 행동을 제지하는 것은 인권침해가 아닙니다. 이때 행사되는 힘은 ‘공격’이 아니라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힘이니까요. 다만 학생의 위험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이 교사마다 다를 수 있고, 행동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필요최소한의 범위를 넘어 제압이 가해지거나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방지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학생인권조례의 역할입니다.


7. 학교현실에서는 수업시간 중 학생 지도의 책임이 교사에게만 내맡겨져 있습니다. 안 그래도 수업시간 중 문제행동을 보이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는데 학생인권까지 이야기하면 어떻게 학생들을 통제하란 말입니까? 그럼 수업시간에 자거나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말입니까?

☞ 수업시간에 교사 혼자서는 대처하기 힘든 난감한 상황들이 종종 일어나곤 하지요. 그래서 대다수 교사들이 차이도 크고 갖가지 사연을 가진 다수 학생을 동시에 수업에 집중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고 계실 겁니다. 다른 지원책 없이 교사 개인의 역량이나 통제방식에만 내맡겨두고 있는 학교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하는 분들도 자주 만나 뵈었습니다. 학생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수업시간에 자거나 돌아다니는 행동을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사 개개인의 책임만 늘여가는 방향을 지향하지 않을 겁니다. 학생이 즐겁게 수업에 참여하고 학생 역시 수업에 공동으로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데 방향을 두고 있습니다.

☞ 학생인권조례는 수업시간에 자거나 돌아다니는 학생이 그와 같은 행동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돌봄의 교육을 지향합니다. 수업에 참여하기 힘든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일은 교육의 기본이겠지요. 한 선생님이 실제로 겪으신 일입니다. 한 학생이 자기 수업시간마다 자고 있기에 앞으로 불러내 매를 들었다고 합니다. 자기를 포기한 듯해 보이는 그 학생의 모습이 한심해보이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셨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학생은 홀어머니와 함께 새벽 바닷가에 나가 고깃배에 잡힌 생선들을 궤짝에 담는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새벽일을 하고 학교에 등교하니, 1교시 수업에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사연을 알고 나서 그 선생님은 그날로 체벌을 다시는 하지 않기로 결심하셨답니다. 학생의 문제행동을 판단하는 자기 시각이 얼마나 제한적일 수 있는지를 통감하셨던 것이지요. 이 사례에서처럼 수업에 참여하기 힘든 학생들에게는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쉬는 시간에 다른 학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을 수도 있고, 수업방식이 그 나이의 특성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고, 다른 일로 고민이나 불안에 빠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연을 읽어보지 않고 무조건 집중을 요구하고 행동을 통제한다고 해서 그 학생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행동 이면의 마음을 읽었을 때 다양한 대처법이 나올 수 있고, 그만큼 교사의 역량도 더욱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 교사 혼자서 대응하기 힘든 학생의 문제 상황이 발견되었을 때는 학교 차원에서 교사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모색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담을 것입니다.


8. 학교는 하나의 공동체인데, 인권 이야기하는 소수 학생의 의견만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학교는 교사, 학부모, 학생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학교단위에서 교육3주체의 의견을 수렴해 학생생활규정을 정해나가면 되지, 조례를 굳이 제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 교사, 학생, 보호자 등 교육주체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고 반영하여 학교를 운영하겠다는 말씀은 너무나 반갑고 소중한 말씀입니다. 그 일환으로 단위학교에서 자발적으로 학생생활규정을 민주적으로 개정하려는 노력도 적극 독려되고 지원되어야 합니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가고자 하는 학교의 모습도 바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기도 하고,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나가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습니다. 반면 학생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학교에서 학생인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도록 적극 독려하려면,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시급하다고 할 것입니다.

☞ 교육3주체의 의견을 모아나가는 일은 아주 중요하지만, 교육3주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다수의 의견을 따른다고 해서 모든 인권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기본선으로 지켜져야 할 학생인권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함과 동시에 단위 학교에서의 자발적 노력을 독려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할 것입니다. 단위 학교에서는 그 기준에 따라 구체적 계획을 입안하고, 학생인권의 향상을 지속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민주적으로 협의해 나가야 합니다. 수사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더라도 고문수사, 불공정수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기준은 기본으로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또한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학생이 소수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대개의 학생이 침묵하고 있고 소수 학생만 인권 주장을 펼친다고 해서 다수의 학생이 인권에 관심이 없거나 원하지 않는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학생들은 안타깝게도 활발한 의견 개진을 해본 경험이 없거나 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들의 침묵은 학생인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한 현재의 학교 상황이 낳은 결과이지, 학생인권 보장을 미뤄두는 근거로 활용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게다가 학생들이 아직 인권에 대한 이해나 욕구가 깊지 않다고 해서 우리 교육이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고 인권의 공기를 흡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을 내던져서도 안 됩니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소수 학생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인권이 돈독히 보장되는 환경 속에서 행복한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9. 우리 교육의 방향은 학교 단위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로 획일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학교 단위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이 아닐까요?


☞ 우리 헌법에는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권리의 목록이 구체적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를 두고 국민의 생활을 획일적으로 규제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학생인권조례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모든 학생이 누려야 할 권리를 구체화함으로써 학교가 고려해야 할 ‘공통의 기준’을 세우고자 합니다.

☞ 학생인권조례와 학교 단위의 자율성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학교 단위의 자율성은 분명 보장되어야 합니다.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단위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지 않도록 숙고에 숙고를 거듭해야 할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학교 단위의 자율성이 무제한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칙 제정 등 학교 단위의 자율권은 자치법규인 학생인권조례가 제시하는 규범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합니다. 결국 학생인권조례는 각 단위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정되어야 하고, 단위 학교의 자율성 역시 학생인권조례의 규범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할 것입니다.


10. 학생인권조례의 내용 중에는 구제기구 설치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학교 바깥에 구제기구를 만들어 놓으면 학교 안에서 조용히 대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까지 밖으로 알려져 학교가 시끄러워지지 않을까요?

☞ 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려면 인권을 침해당했을 때 호소할 수 있는 의지처가 있어야 합니다. 적절한 구제장치가 없는 인권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합니다. 법원이나 국가인권위원회 등 각종 권리구제기구들이 설립된 이유도 이러합니다. 학생인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이나 학생을 지지하는 교사, 보호자 등이 안심하고 신속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학생인권조례에는 꼭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구제장치의 구체적 형태나 절차, 학교 바깥에만 설치할지 학교 안에도 설치할지 등에 대해서는 좀더 고민이 필요합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제정위원회는 남은 기간 동안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학교 현실에 맞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찾아볼 것을 약속드립니다.

☞ 학생인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학교 안에서 자체적으로 문제가 신속히 해결되고 재발 방지 조치가 취해진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칭찬 받을 일입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다고 해서 학교 안에서의 자발적인 해결 노력이 제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학교 안에서 문제 해결 방안을 찾기 어려운 조건이거나 사건이 숨겨지거나 축소될 경우를 대비하고, 학교 안에서의 문제 해결을 지원할 수 있는 공적(公的) 기구는 요구됩니다.

☞ 학생인권이 존중되는 바람직한 학교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가는 과정인 만큼 일부 혼란이 불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은 변화에 따른 과도기적 현상에 그칠 것입니다. 또한 그 혼란을 좀더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하기 위해서도 학교 밖 권리구제기구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학생인권 구제기구의 존재를 혼란을 야기하는 훼방꾼이라고 보지 마시고 학생인권 보장을 지원하는 협력자라고 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