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아침을 열며 - 추모 열풍은 여론의 공명

강산21 2009. 6. 12. 10:30

동물원에서 사람들이 모여 코끼리를 구경하고 있다. 사육사가 관람객들에게 저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될지 물었다. 저마다 어림짐작으로 답을 써 낸 다음 그 평균을 구한다. 이 과정을 10명, 50명, 100명, 1000명을 대상으로 반복하면, 답을 써 낸 관람객 수가 많을수록 그 평균값은 직접 측정한 값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평균값은 거의 항상 어느 누가 혼자 예측한 값보다 실제에 가깝다. 집단의 지혜는 개인의 능력보다 상황을 더 잘 설명한다는 연구 결과이다.

추모 열풍은 여론의 공명

  백성의 마음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헤아리기도 어렵다. 언론과 권력의 선전ㆍ 선동에 크게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백성의 마음이 내리는 판단은 어떤 권력기관이나 정치집단의 상황 판단보다 정확하고 진실하며 따라서 강력하다. 술수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스스로의 공명에 따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전국을 강타한 추모 열풍도 그러한 민심의 자연스런 발로였다.

  문제는 그 현상을 정치공학이나 합리적 사고의 틀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바로 전날까지 검찰과 언론이 파렴치범으로 매도하던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 하나만으로 영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꽃 한 송이를 바치기 위해 뙤약볕에서,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서너 시간을 기다리고 펑펑 눈물을 쏟는다.

  과연 그 많은 사람을 봉하 마을로, 시청 앞 분향소로 내몬 힘은 무엇일까. 노무현의 무엇이 그들의 마음에 그렇게 큰 공명을 일으킨 것일까.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업신여긴 언론의 보도태도에도 불구하고 그와 국민을 이렇게 묶어준 힘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 그가 바로 나 자신일 수 있다는 진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그 근원은 국민과 거리를 두지 않는 투박한 어법과 행동이다. 무릎을 꿇고 동네 어른들께 막걸리를 따르는 순박함이다. 뒤에 선 여학생의 얼굴이 사진에 나오지 않을까 봐 무릎을 굽혀 키를 낮추어주는 배려다.

  대통령 후보시절 성난 농민들의 달걀 세례를 받으면서도 "정치인들이 이렇게 가끔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풀리지 않겠습니까"라며 너스레를 떨던 순수함과 털털함이다. 무엇보다 꼼수를 부릴 줄 모르고 겉과 속이 똑같은 진정성이다. 국민들은 끝없는 악선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렇게 욕을 해댔으면서도 그가 우리 편이었다는 걸 갑자기 알아차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미안하다. 너무 욕을 해댄 게 미안하고 그가 '이제는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했을 때 정말로 그를 버린 것이 미안하다. 가족이 돈을 받은 사실에 몹시 부끄러워하면서도 최소한의 방어자세를 취했을 때 그를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우리는 그가 부끄러워했던 것보다 몇 십 배는 더 부끄러워해야 할 것 같아 미안하다. 그의 진정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우리의 천박하고 약삭빠른 세상살이가 부끄럽다.

 이 미안함은 서서히 이런 사태를 만든 언론과 권력에 대한 분노로 변한다. 틀어 막힌 광장, 마구잡이 연행, 과반수가 훨씬 넘는 국민이 반대하는 대운하를 이름만 바꿔 22조가 넘는 혈세를 들여 강행하는 무모함, 무죄가 뻔한 인터넷 글쓰기에 재갈을 물리려 했던 미네르바의 구속, 권력의 나팔수가 된 언론, 이런 것들이 이번 사태의 배경인 것을 깨달은 것이다.

  국민 마음 저버리면 안돼

  한국일보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민심은 언론이 이번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본다. 본인과 가족의 잘못을 지적한 여론도 있지만, 검찰의 이번 수사가 공정하지 않았다고 보는 여론이 64%,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정치보복 때문이라는 응답이 57%에 이른다는 조사결과가 민심의 소재를 잘 말해준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하늘의 마음과 같은 백성의 마음을 저버리면 안 된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인문의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