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아침햇발] 감동 없는 귀환 / 오태규

강산21 2009. 3. 25. 01:12

[아침햇발] 감동 없는 귀환 / 오태규
아침햇발
한겨레  오태규 기자
» 오태규 논설위원




그가 돌아왔다. 지난해 7월 미국 유학을 떠났으니 약 8개월 만의 귀국이다. 인천공항엔 2000명 가까운 그의 열성 지지자들이 환영 나왔고, 그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함께하기 위해 돌아왔다”고 일성을 터뜨렸다. “내가 좀더 잘했더라면 세번째 개혁 정부를 창출했을 텐데”라는 회한도 쏟아냈다. 그리고 “13년 전 설레는 마음으로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재출발할 것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이것으로, 1년여 전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씨의 ‘이상한’ 4·29 재선거 출마는 더욱 굳어졌다. 민주당 안에서 상당한 반발이 있겠지만, 그가 출마 뜻을 접는 것은 짜낸 치약을 다시 튜브에 밀어넣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됐다.

 

물론 그가 나오면,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다. 그가 나가려는 전주 덕진은 13년 전 그에게 전국 최고득표율이라는 화려한 왕관을 씌워 정치 무대로 보내준 곳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의 귀환엔 사람들의 가슴을 흔드는 감동이 없다. 적어도 대통령 후보급의 거물이 새 일을 하려면, 감동의 큰 물결은 아니더라도 작은 물결은 일으켜야 옳다. 목숨은 아니더라도 정치 생명 정도는 거는 기개가 필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 세 번이나 부산에 내려가 ‘맨땅에 헤딩’을 했다. 돈키호테처럼 지역주의에 맞서는 그의 용기에 많은 사람이 감동을 먹었고, 그것이 바로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가장 강력한 정치 자산으로 작용했다.

 

반면, 정씨는 김대중 정권 때 제2인자였던 권노갑씨에게 대든 것을 마지막으로 ‘지키는 정치’로 일관해왔다. 노무현 정권이 한창 어려움에 처해 있던 2006년 7월 실시된 성북을 재선거 때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당시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보궐선거에 나가 달라는 권유를 수차례 받았다. 누가 나가도 떨어질 선거였지만, 개혁을 지키는 방파제가 되어 달라는 절박한 호소였다. 그러나 그는 독일 유학으로 이를 외면했다.


또 한 번은 지난해 열린 18대 총선이다. 낙선한 대선 후보가 바로 총선에 출마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그래도 전략지역에 출마해 싸우는 것이 붕괴 직전의 당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공감이 컸다. 하지만 그는 장고 끝에 거의 정치적 상징성을 찾기 힘든 동작을을 택했고, 맥없이 낙선했다. 정치 1번지인 종로에 출마했더라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그의 이번 출마도 이런 ‘안전운행 정치’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그러니 감동을 불러올 턱이 없다.

 

그래도 제대로 된 명분이 있다면 다를 것이다. 그의 말을 이모조모 뜯어봐도 ‘내가 왜 이 시점에 필요한가’라는 호소력 있는 설명을 찾을 수 없다. 유학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처음 정치를 시작한 곳에서 재선거를 하니까 나간다는 식이라면 ‘망각 공포증’이나 ‘배지 기갈증’ 환자라는 오명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그의 출마로 가장 심하게 영향을 받는 것이 있다면, 바로 선거지형일 것이다. 그의 돌출로 민주당 내 분란이 주목을 받으면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장으로 흘러가던 4·29 재선거 구도가 급속하게 흐려지고 있다. 그의 출마가 굳어지면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선뜻 출마 포기를 선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지금이라도 그의 출마 선언에 대해 누가 웃고, 누가 우는지를 잘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생각을 바꿀 시간은 충분하다. 9회 말 역전홈런을 칠 것이냐, 치명적인 에러를 범할 것이냐. 그것은 그의 손에 달려 있다.

오태규 논설위원oht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