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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성이 울먹이며 전화하는 곳

강산21 2009. 2. 24. 19:48

중년남성이 울먹이며 전화하는 곳

복지콜센터129, 하루 5000여통 "SOS"

 

신수영 기자 | 2009/02/24 08:34 | 조회 6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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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세가 5개월째 밀렸습니다. 난방조차 못하고 있어요. 수도와 전기도 끊길 판입니다."

40대 남성이 전화기에 대고 울먹였다. 박모씨. 올해 44세. 별거하고 있던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산다. 아이들은 헤어진 아내가 키우고 있다. 박씨는 "아이들 키우는 전처에게 양육비도 줘야 하는데..."라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신용불량자가 된 중년 남자가 자존심 버리고 "생계가 어렵다"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화.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일일 상담원으로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던 129복지콜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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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보건복지 상담전화로 24시간 운영된다. 지난 20일 경기 안양시 범계역 인근에 위치한 129복지콜센터를 찾았다.

오후 4시, 80명의 상담원은 모두 전화기에 매달려 있었다. 상담원들은 한 사람당 하루 평균 70~100통의 전화를 받는다. 지난해 3895건이었던 일평균 상담건수가 올 들어 5174건으로 급증했다. 그래서 요즘 콜센터는 비상근무체제다. 2시간 연장근무에 휴일근무까지 해야 한다.

129는 요즘 '눈물 젖은 사연'으로 가득하다. "죽고 싶다"는 호소도 부쩍 늘었다. 사업이 망해 빚이 눈덩이라며 한강에 뛰어내리겠다는 사람도 있고 보증을 섰다 재산을 모두 날리고 가정도 파탄 났다며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

최모씨(남, 30세)는 불황을 견디지 못해 지난달 옷가게를 정리했다고 한다. 상가 보증금은 밀린 월세 등으로 깎이고 당장 식비조차 마련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최씨는 "일을 구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고 사업을 다시 하래도 돈도 없다"며 "젖먹이가 있다, 숨통이 트일 수 있도록 몇 달만이라도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갑작스럽게 생계가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긴급복지 지원 상담 건수는 올들어 벌써 2만5535건이나 들어왔다. 올들어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지난 1년간 전체 상담검수 2만7707건에 육박한다.

129로 상담이 접수되면 이름과 나이, 소득, 자녀, 직업, 연락처, 사연 등이 행정전산망에 올라간다. 이를 본 전국 시군구 복지담당 공무원이 현장조사를 나가 지원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지원은 이르면 다음날부터 바로 이뤄진다.

긴급복지 지원은 최대 4개월까지다. 이런 단기 지원으로 해결이 어려운 경우 정부의 기초생활보장제도 등으로 연계해주는 것도 상담원의 역할이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특정분야는 전문상담원이 따로 있다.

129로 전화한다고 모두 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원을 받지 못해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OO구에 사는 윤모씨(여, 56세)는 2억원짜리 집이 있어 지원을 받지 못했다.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도시 재산 기준은 1만3500만원 이하다. 윤씨는 "집 빼고는 정말로 돈이 한 푼도 없다"며 "남편과 20년 동안 온갖 고생 다해 마련한 집인데 팔아야 하느냐"며 자꾸 되물었다.

뇌동맥류 수술을 받은 김모 할머니(65세)는 병원비를 나라에서 도와주면 안되느냐며 전화를 걸어왔다. 김 할머니는 "요즘 아들네 사정이 너무 안 좋아 나마저 짐이 될 수 없다"며 병원비를 내달라며 통사정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아들의 재산과 소득이 기준 이상이라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더구나 어머니가 129로 전화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아들이 "어머니 병원비 정도는 내가 낼 수 있다"며 버럭 소리를 질러 콜센터에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김인숙 상담반장은 "제도적으로 지원이 불가능하면 지자체 복지사업 등으로 연계해 가능한 도움을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때 줄 때 가장 안타깝다"며 "그저 열심히 들어드리고 위로하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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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상담반장이 129콜센터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