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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칼럼] 사이코패스의 연인

강산21 2009. 2. 11. 17:11

[곽병찬 칼럼] 사이코패스의 연인
곽병찬 칼럼
한겨레  곽병찬 기자
» 곽병찬 논설위원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다치고, 역시 수천 명이 투옥됐던 광주 학살에 용산 참사를 견줄 순 없다. 그러나 사건 처리의 비열함에선 용산 참사가 심하면 심했지 못지 않다. 희생자는 죄인이 됐고, 가해자는 정당한 법 집행자가 됐다.

 

‘광주’의 쟁점은 집단 발포 명령계통과 과잉 진압 여부였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끝까지 숨기려 했던 것은 발포 명령을 낸 지휘 계통이었다. 이들은 집단 자위권 발동으로 이를 피했다. 하지만 과잉 진압만큼은 인정했다. 해괴한 양시양비론은 이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용산 참사에서는 과잉 진압도 지휘 책임도 인정되지 않았다. 김석기씨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법과 원칙을 세우는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앞으로 이 정권 아래서는 경찰의 법 집행에 저항하다가는, 죽어나가더라도 그건 당사자 책임이다. 그의 발언은 경찰국가 선언이었다.

 

전두환은 광주의 빚 때문인지 이후에도 공권력에 의한 시민의 죽음 앞에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 했다.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이 들통나자,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발뺌하기 바빴다. 이한열씨가 직격 최루탄에 맞아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정권이라면 강변했을 법한, ‘악질적인 좌경용공 체제전복 세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거나, ‘도심에서 화염병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를 진압하기 위한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대들지는 않았다. 주검을 멋대로 부검하지도 않았다.

 

총칼이 아니라 선거로 집권한 정권이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이 정권이 잠꼬대로도 떠든다는 법과 질서 때문일까. 하긴 폭력·수뢰·협박 등 파렴치 혐의는 물론, 민주질서를 근본부터 깨뜨리는 선거부정·범인도피 등의 혐의로 처벌받거나 입건됐던 대통령을 모시고 있으니 법질서 콤플렉스가 있을 순 있겠다. ‘떡찰’로 지목됐던 검찰총장, 밥 먹듯이 거짓말하던 경찰총수 내정자가 있으니 일부러라도 법질서를 강조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법질서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국민이 법질서를 위해 존재하는 건가.

 

사이코패스 강아무개 덕분에 이 정권은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다. 위선과 폭력성 등 이 정권의 본성을 성찰하는 데 그만큼 기여한 자도 없다. 강씨가 국민에게 학습시킨 사이코패스의 특징과 이 정부의 닮은 점은 이렇다.

 

사이코패스에겐 영혼이 없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 비원 따위를 느끼지 못한다. 강씨는 사람을 쥐 잡듯이 잡았다.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했다. 이 정권도 용산 참사의 유족의 슬픔과 고통에 철저히 무감각했다. 사이코패스에겐 죄의식이 없다. 강씨는 마음에도 없이 보도진이 물으니 유족에게 미안하다고 한마디 했다. 이 정권은 아예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사이코패스가 의식하는 시선은 오로지 가족이나 내 집단(패거리)뿐이다. 강씨는 아들 걱정만 했다. 김석기는 부하 직원 앞에서 눈물지었고, 대통령은 그런 그를 끝까지 두둔했다. 사이코패스는 냉정하고 침착하다. 이웃에게 강아무개는 친절하고 상냥한 청년이었다. 대통령도 돌아서면 노점상 할머니 앞에서 눈물도 짓고, 목도리도 감아준다. 그리고 사이코패스는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강씨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 범행을 부인했다. 국민을 섬기겠다고 한 이 정권의 거짓말 사례는 굳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잘하면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사이코패스 권력은 안 된다. 언제나 엿듣고 엿보고 뒤따르고, 공갈·협박·강압으로 영혼과 육체를 파괴한다. 혼자로는 막지 못한다. 그가 두려워하는 건 연대다.

곽병찬 논설위원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