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서화숙 칼럼/2월 12일] 민낯의 시대

강산21 2009. 2. 13. 00:33
[서화숙 칼럼/2월 12일] 민낯의 시대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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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신해철씨가 학원 광고에 나왔다. 연예인이 광고야 뛸 수 있지만 입시 위주, 경쟁 위주의 교육을 비판하던 신씨가 입시와 경쟁만을 위해 존재하는 학원 광고에 나선 것은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둘러대도 돈에 팔린 것 맞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가치를 돈과 맞바꾸는 것도 비난거리가 아니겠지만 신씨의 평소 언행을 생각하면 남다른 국가관을 외쳐서 인기를 얻은 가수 유승준씨가 미국 시민권을 얻어 군 입대를 기피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 영주권자가 시민권을 받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신망을 배신한 거짓말이 문제이다. 공생의 가치보다는 돈을 숭상하는 것이 그의 맨얼굴이다.

전체주의 드러낸 민주노총

조합원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면서 민주노총은 맨 얼굴을 공개했다. 상처 입은 조합원이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때 조합이 진상을 밝히고 문제가 된 사람에게 분명한 처벌을 내렸다면 이 문제는 개인의 잘못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조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다. 나중에 이 사건이 공개됐을 때조차도 권력투쟁의 산물이라며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려고 했다.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의 처리에서 민주노총은 민주와는 거리가 먼 전체주의 집단이라는 본모습을 드러냈다.

진보진영을 대변해온 개인과 단체의 추락처럼 보이는 이 사건은 달리 보면 한국 사회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는 신호이다. 그 동안 한국 사회는 독재와 싸운다는 명분으로 문제가 많은 집단과 개인의 맨 얼굴을 너무 오래 은폐하고 살아왔다. 그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 자체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방해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맨 얼굴이 드러난 것은 쭉정이를 버리고 알곡을 구분할 시대가 왔다는 신호이다.

맨 얼굴의 등장은 고통을 수반한다. 환경운동연합 간부들이 공금을 유용한 사례는 환경운동연합이 꾸준히 주장해온 사회비판적인 기능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돈관리에서가 아니라, 대기업과 유착한 환경운동연합의 노선은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함께 운동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비춰졌다. 법인 등록을 하지 않고 임의단체를 고집함으로써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은 문제도 알고 있었다. 맨 얼굴을 공개했다가 함께 주장해온 공생의 가치마저 힘을 잃을까봐 입 닫고 있었을 뿐이다.

사회 곳곳에서 존경받던 인사들의 맨 얼굴도 드러나고 있다. 전직 공무원 한 분은 작년에 지인의 자녀 혼례에 참석했다가 주례인 이수성씨가 전두환씨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가운데 한 분'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들었다. 이씨는 김영삼 정부에서 총리를 지내고 김대중 정부에서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지내는 등 '민주인사'로 존경받아 왔지만 민간인 학살을 토대로 권력을 잡은 이를 '위대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맨 얼굴이다. 이기수 고려대학교 총장은 최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이명박 정권이 앞으로는 고려대 출신을 더 많이 기용할 것'이라고 자랑하더라는 이야기를 예비 입학생한테 전해들었다. 지식인과는 거리가 먼, 명문 사학 총장의 맨 얼굴이다.

이들의 맨 얼굴이 드러남으로써 한국 사회는 이제 유명 인사라는 이유로, 개인의 발언이 의미를 가지는 시대를 벗어나게 되었다. 추기경이 말한다고 다 진리는 아니며 민주인사가 말한다고 다 민주적인 내용은 아니게 되었다. 누구든 어떤 집단이든 그가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옳을 때에만 옳다고 해줄 시대가 됐다.

각료들의 부패한 맨 얼굴

정작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부동산 투기를 하고 편법 증여를 받고 논문 조작을 하는 맨 얼굴이 다 드러났는 데에도 이들을 정부 각료로 내세우는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신해철씨야 가치관을 바꾼들 개인 문제이며 민주노총도 조합원의 기금으로 운용되는 단체이다. 반면 각료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낸 세금으로, 국가 전체를 위해 일하라고 기용되는 사람들이다. 추악한 맨 얼굴이 드러났는데도 각료로 기용하는 것은 범죄 행위임을 이명박 정부는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