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수오지심

강산21 2008. 12. 31. 14:47

수오지심 / 곽병찬
유레카
한겨레  곽병찬 기자
» 곽병찬 논설위원
올해는 시화연풍(時和年豊)의 기대 속에서 출발했다. 1년 전 대통령 당선자가 무자년 사자성어로 시화연풍을 제시했을 때, 지지자건 반대자건 군말이 없었다. 나라가 화합하고 살림이 풍요해지기를 바라는 데 누가 토를 달까.

교수 사회는 광풍제월(光風霽月)로 화답했다.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달이라니, 낯이 좀 간지럽긴 했다. 당선자는 도덕적 흠결은 물론 성격적으로는 독선, 이념적으론 가진자 편향이 이미 드러난 터였다. 하지만 성공시대가 세상을 맑고 환하게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무자년을 정리하는 사자성어는 끔찍한 것들뿐이다. 증권맨들은 여리박빙(如履薄氷)에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교수 사회는 충고를 듣지 않아 병을 키운다는 호질기의(護疾忌醫)를 꼽았다. 대불단지의 전봇대를 뽑아 제 귀에 꽂았다는 뜻이다. 불과 1년 만에 상전벽해로 바뀌었다. 토붕와해(土崩瓦解·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철저하게 궤멸된 상태)라거나 일엽장목(一葉障目), 설상가상(雪上加霜) 따위의 더 혹독한 평가도 있었다.

호질기의는 지난해의 평가이자 새해의 충고일 터인즉 여기에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덧붙여 추천하고 싶다. 맹자는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있어 여기서 인간의 네 가지 본성(4단)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나온다고 했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이 중에서도 수오지심을 으뜸으로 보았다. 의롭지 못한 일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은 의(義)의 근본이자, 인간관계와 사회를 광정하는 벼리인 까닭이다. 특히 군왕에게 중요한 덕목이어서, 이 마음이 없으면 신하와 백성에게 모질게 굴어 천리를 어기게 된다고 한다. 역성혁명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춘추전국의 봉건왕조나 지금 민주공화정에서나 다르지 않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