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세상읽기] 학력 위조와 거짓말의 심리 / 곽금주

강산21 2009. 1. 2. 17:50

[세상읽기] 학력 위조와 거짓말의 심리 / 곽금주
세상읽기
한겨레
»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책을 고르거나 물건을 살 때 겉과 내용이 판이한 경우가 종종 있다. 내용과 상관없이 부풀려진 책 표지,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윗부분과 달리 작고 볼품없는 과일로 채워진 과일 바구니…. 포장과 내용이 다른 경우는 너무나 흔해 이젠 으레 그러려니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겉포장이 가지는 힘은 강력해서 화려한 포장에 눈길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대인관계에서도 이런 포장이 나타난다. 일종의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거짓말을 한다. 잠자리에서 남녀 간 거짓말,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간 거짓말,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거짓말, 정치가의 거짓말, 그리고 과학자들의 거짓말이 흔하다. 거짓말은 직장을 얻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빈번하다.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과거 어떤 일을 했는지 자신을 소개할 때 대부분 단점은 감추고 작은 장점도 커다랗게 부풀린다. 이처럼 자신을 포장하는 거짓말은 생존에 필요한 전략이기도 하다. 실제로 구직 상황에서 10분간의 면접 동안 평균 3∼4회의 거짓말이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물론 사회는 이런 거짓말을 용인하며, 일일이 진위를 밝혀 문제 삼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거짓말, 특히 거짓말 당사자들이 명성을 얻고 사회적 위치에 도달하는 데 어떤 식으로든 이득을 가져다주는 거짓말은 사회적 배신감과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 최근 학계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종교계에서 잇따라 밝혀진 허위 학력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부풀리기와 거짓말이 난무하는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 심리학자 에크먼은 거짓말에는 ‘속이는 기쁨’이 존재한다고 했다. 거짓말을 통해 남을 속이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있다는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거짓말은 자존감 유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좌절과 열등감은 거짓말을 야기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그럴듯한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여, 상대가 가진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이득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거짓말을 할 때는 팔, 손, 손가락을 덜 움직이고, 눈 깜빡임이 적으며 중간중간 멈춤이 많다.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안에서 쉴 새 없이 앞뒤 계산을 하면서 뭔가 꾸며내야 하므로 인지적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 설득력을 높이자면 유사한 거짓말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처음에는 거짓말하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나, 반복하고 몰두하는 순간 거짓이 아니라 실제 자신의 경험과 기억, 사실이라고 믿어버리게 된다. 본인이 이처럼 진심으로 믿게 되면 더욱 확신을 가지고 설득력 있게 거짓말을 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은 그 말을 오히려 더 신뢰하게 된다.

 

거짓말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어려운데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이들이 발각되었을 때의 부담보다는 거짓말로 얻어지는 단기적 보상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내가 한 거짓말을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갈 때 얻게 되는 보상이 더욱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거짓말과 허위가 난무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단기적인 보상을 얻기에 적합한 환경이기 때문은 아닐까? 거짓말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의 마련도 필요하지만 거짓말에 지나치게 너그러운 의식의 개선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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