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밀물 썰물] 접대비 실명제

강산21 2008. 12. 21. 18:14

[밀물 썰물] 접대비 실명제 / 이정호 논설위원

기사입력 2008-12-20 10:39 


일본 금융부패 스캔들이 터졌던 지난 98년 당시 일본 관청가와 금융계에서는 '퐁당'과 '풍덩'이란 은어가 유행했다고 한다. '풍덩'은 요정 같은 곳에서 1인당 5만엔 이상의 풍성한 접대를 받았다는 의미이고, '퐁당'은 1만엔 내외로 가볍게 저녁만 먹은 경우를 지칭하는 것이다. 유능한 관리일수록 '풍덩'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접대를 고리로 한 금융계의 관민(官民) 유착은 도쿄지검 특수부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일본은행의 경영관리 담당 이사 등 관련자 5명이 자살하는 비극으로 끝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법파동을 불러온 것도 '접대' 문제 때문이었다. 1971년 한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가 재판부에 출장 신문을 제의했고, 변호사와 함께 현장을 다녀온 담당 판사들에 대해 느닷없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혐의는 뇌물수수, 판사들이 현지에서 변호사로부터 사건 관련 청탁과 함께 여행 경비와 접대를 받았다는 이유였다. 당연히 법원에 의해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하면서 1차 영장에서는 빠졌던 '접대'의 상세한 내역을 명시해 버렸다. 여성과 관련된 일이었다. 전국적으로 150여명의 판사가 '사법권 독립'을 주장하며 집단사표를 제출하는 등 파문이 커졌지만 대통령의 지시로 사건을 덮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지난 2004년 도입된 접대비 실명제가 내년부터 폐지된다. 기업이 50만원 이상의 접대비를 지출할 때에는 상대방 등을 명시한 증빙서류를 작성해야 비용처리를 해주는 제도다. 도입 당시 위스키 매출이 20~30% 격감하고 룸살롱 매출도 크게 주는 등 향락·접대 문화의 거품을 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반면 영수증 쪼개기나 다른 업체의 신용카드 빌리기 같은 편법도 일상화되어 버렸다. 경기침체로 잔뜩 위축되고 있는 소비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자칫 이로 인해 '어둠 속의 소비'만 살아나지 않을까 두렵다.

이정호 논설위원 lee62@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