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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칼럼] 현실로 다가온 사교육 대란

강산21 2008. 11. 13. 13:22

[이준구칼럼] 현실로 다가온 사교육 대란
이준구칼럼
한겨레

»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의 80%가 교육비의 압박을 매우 부담스럽게 느낀다고 한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하나하나가 모두 사교육을 부추기는 것들뿐이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위기로 고통이 심한 터에 사교육비 문제로까지 속을 태워야 하는 서민들의 처지가 딱하다.

사교육비 부담에 대한 불평이 높아지자 정부는 학원비 규제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입만 열면 규제 철폐를 부르짖으면서 가격 규제라는 케케묵은 수법을 동원하는 모습이 자못 우습다. 가격 규제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국민에게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목적이 있는 것일까?

 

사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하다.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니까 그런 것이다.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경제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도 잘 아는 진리다. 정부는 모든 교육수준에서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이 사교육 수요를 근본적으로 줄이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다른 부문은 극심한 침체상태에 허덕이고 있는데 오직 사교육 부문만 전례 없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올해 20조원 수준인 사교육비 총지출액이 내년에는 30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그날그날의 살림도 어려운 터에 사교육에만 10조원 이상의 돈을 더 쏟아부어야 한다는 말이다. 돈 많은 사람은 태평일 테지만, 서민들은 허리가 꺾일 지경이다.

 

대학입시 자율화라든가 고교 다양화 그 자체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정책의 긍정적 측면만 보고 밀어붙이는 것은 정말로 미련한 짓이다. 그것의 부정적 측면도 신중하게 고려하는 균형감각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균형감각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교육의 기본구도를 송두리째 뒤바꾸려 하는 정부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한 가지 의문은 정부가 사교육 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정말로 예견하지 못했는가라는 점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대학입시 자율화나 고교 다양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정부만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을 정부만 몰랐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로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그저 모른 척한 것일까?

 

그뿐이 아니다. 존재 의의조차 불분명한 국제중학교는 초등학생들까지 사교육 수요자로 만들어 버렸다. 더욱 한심한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은 어린이들까지 영어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다. 영어몰입교육이라는 허황한 발상이 이런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 이제는 걸음마를 떼는 순간부터 대학에 갈 때까지 사교육의 굴레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많은 것을 너무나도 성급하게 바꾸려 한 과욕에 있다. 이런 과욕의 부작용은 교육 측면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제도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느끼는 극심한 혼란이 그 부작용의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한쪽 측면만 보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책들이 우리 사회를 ‘사교육 천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는 지금이라도 현실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사교육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집어치우고 사교육 대란을 막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만 모르고 있을 뿐, 이미 사교육 대란은 초읽기 단계에 들어선 상황이다. 얼마나 더 많은 징조가 보여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될지 답답한 심정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