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근본주의와 파시즘 / 곽병찬

강산21 2008. 11. 5. 12:05

[유레카] 근본주의와 파시즘 / 곽병찬
유레카
한겨레 곽병찬 기자
» 곽병찬 논설위원
미국의 시카고 대학은 1988년부터 93년까지 전세계 150명의 학자를 참여시켜 지구상의 가능한 모든 근본주의에 대한 보고서를 쓰도록 했다. 그 결과 종교건 문화건 관계없이 근본주의는 다음 다섯 가지 특징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회든 국가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의 규칙이 적용돼야 한다.(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규칙은 땅의 법이 되어야 한다.)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하다. 규범을 정하고 시행하는 건 남성이어야 한다. 단 하나의 믿음과 시각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하므로, 교과서는 물론 가르치는 방식까지 통제해야 한다. 근본주의와 파시즘의 의제는 동일하다. 경전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나 문화적 차이에 따른 해석은 불가하다.

미국의 저명한 목사 데이비슨 뢰어는 이것을 종교화한 것이 종교적 근본주의라고 정의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이슬람 및 기독교 근본주의가 혐오하는 것들을 이렇게 정리했다. 해방된 여성 혹은 낙태 등 여성 해방을 상징하는 것, 동성애 등 다양한 성적 취향이나 생활방식, 유일무이한 진리의 구속력을 떨어뜨리는 개인적 자유와 권리(이슬람), 남성을 따르지 않는 여성, 다양한 성적 취향, 교리에 따라 운용되지 않는 민주주의 정부(기독교). 동일하다.

정치학자 로런스 브릿이 꼽은 파시즘 정권의 공통점 14개 중에는 이런 게 있다. 하나의 원칙과 해석만 허용한다. 인종적 종교적 소수자나 자유주의자를 국가의 적으로 내몬다. 남성이 배타적인 지배권을 행사한다.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얽혀든다.

근본주의는 종교적 파시즘이고, 파시즘은 정치적 근본주의라고 일컬어지는 까닭이다. 근본주의나 파시즘은 실천하기 쉽다. 몇 가지 간단한 원칙만 고수하면서 자신은 사도처럼 고상한 척하면 된다. 교과서까지 통제하려는 이 정부와 많이 닮아 보이지 않는가?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