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현안

[정치통계 15] 복지가 아니라 정의가 먼저다

강산21 2008. 12. 25. 22:41

 [정치통계 15] 복지가 아니라 정의가 먼저다.

-더 큰 복지를 위해서, 더 확고한 정의를 세워라-

 

 

 

그 역사적 맥락을 살피지 않고 직수입한 선진국의 문제의식 및 정책 기조로 인해 엄청나게 소모적인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통계 13]에서 다룬 공공 부문(정부) 규모 시비이다. 그런데 이런 류의 시비는 몇 개가 더 있다. 증세-감세 시비도, 규제(완화-강화)를 둘러싼 시비도, 민영화 시비도 그런 것이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증세-감세 시비는 세금 및 재정의 구조에 숨어있는 심각한 불의로 집중되어야 할 사회적 관심을 엉뚱한 데로 돌린다. ‘(큰 폭의 적자재정을 감수하고서라도) 복지 재정을 대폭 늘리자’는 이른바 ‘전투적 복지주의’로 불리는 주장도 공공부문이 안고 있는 명백한 불의에는 대체로 전투적이지 않기에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규제나 민영화를 둘러싼 시비도 마찬가지다. 진보는 봉건, 식민, 전쟁, 냉전, ‘주식회사 한국’의 악성 유산이자 관료의 힘의 원천인 수많은 규제와 큰 공공부문(공기업 등)에 대한 합리적 조정(주로 완화, 민영화) 작업을 대체로 백안시 해왔다. 또한 진보든 보수든 공히 세계화, 자유화, 민주화, 지식정보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정의로운 규제’-이는 새로이 만들어야 할 것도 있고, 강화해야 할 것도 있고, 완화해야 할 것도 있다-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이익에 복무하는 지를 따질 뿐이다. 규모와 양에 대한 관심과 시비도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구조와 질에 숨어있는 심각한 불의를 먼저, 전투적으로 해결해야 할 때다. 규모와 양이 아니라 구조와 질을 먼저, 치열하게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밑 빠진 독을 일단 막아놓고 물을 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세구조에 숨어있는 불의


먼저 조세구조에 숨어있는 불의를 살펴보자. 한국의 조세부담률(경상GDP에서 조세(국세+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기준 22.7%이고, 국민부담률(경상GDP에서 조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8.7%이다. OECD 30개 회원국 평균을 보면 조세부담률은 26.8%이고, 국민부담률은 35.9%이다. 따라서 한국은 OECD평균에 비해 조세부담률은 4.1%p 낮고, 국민부담률은 7.2%p낮다. 순위로 보면 한국은 조세부담률은 25위, 국민부담률은 28위이다.

 

<표 1>조세부담률 및 국민부담률 국제비교(2006년 기준)

 

당연히 이를 근거로 관료들과 공기업 직원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재정학자, 사회복지학자들도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의 지속적인 상향을 주장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조세부담의 적정선에 대한 학계의 논의가 없으나, 세계적 양극화의 확대, 고령화의 진전, OECD 국가와의 비교 등을 고려할 때 30% 전후가 적정. OECD 국가들과 비교시, 소득세와 사회보장비 영역에서 증세의 여지가 있음. 특히, 우리의 법인세율은 OECD 국가 평균 28.4%에 비해 낮은 편임” (미래연 브리핑 [주간 동향분석] No.9- 이명박 정부의 재정계획의 문제점과 과제 -, 2008.12.21)

 

<표2>법인세율 국제비교(2005년)                                                 (단위:%)

※출처: 미래연 브리핑 [주간 동향분석] No.9- 이명박 정부의 재정계획의 문제점과 과제 -, 2008.12.21)

 

그러나 여행, 유학, 출장, 장기체류 경험으로부터 정부의 공공서비스 질을 약간은 아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한국의 부담률 22.7%와 28.7%는 그 공공서비스 양, 질과 (젊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은) 인구 구조에 비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미국은 조세부담률 21.3%, 국민부담률 28%이고, 노인 대국 일본은 조세부담률 17.7%, 국민부담률 27.9%로 한국보다 약간 낮다. 그런데 2002년 기준 OECD 국가의 총지출 대비 부문별 지출 구성비를 보면 미국의 사회보장비 지출은 20.1%, 일본은 37.8% 인데 반해 한국은 9.7% 수준이다. GDP대비 공공사회지출의 비중도 2003년 현재 미국은 16.2%, 일본은 17.7% 인데 반해 한국은 5.7%이다. OECD평균은 20.7%이다.

 

<표 3>조세부담률 및 국민부담률 추이(1999~2007)

 

더욱이 한국의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은 소리 소문 없이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추세이다. 1999년 이후 2007년까지 조세부담률은 17.8%->22.7%로 1.28배 늘었고, 국민부담률은 21.5%->28.7%로 1.33배가 늘었다. 이 관성이 금방 사라질리 있겠는가?


세금 종류별 세수 비중을 보면, 한국은 소득세 비중이 GDP의 3.4%로 미국의 9.6%, 일본의 5%, OECD평균인 9.2%에 비해 매우 낮다. 사회보장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의 소득세와 사회보장비의 비중은 워낙 낮아서 시간이 흐르면 스믈스믈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미국, 일본 보다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이 훨씬 높아져서, 어쩌면 10~20년 내에 독일이나 영국 수준에 근접할지 모른다. 단적으로 중앙정부 외에 지방재정 및 지방교육재정까지 포함한 정부부문 전체의 통합재정규모는 2006년 결산기준으로 260.8조인데, 이는 GDP의 30.7%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재정 구조가 유지된다면 국가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

 

 

<표 4>OECD 주요국의 GDP대비 세금 종류별 세수 비중                        (단위: %)

 

재정 구조에 숨어있는 불의


높은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이 국가와 사회의 개인과 가족에 대한 높은 책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익집단과 정치인 및 관료들이 결탁, 방조 하여 연출한, ‘약탈’ 냄새가 진동하는 한국의 재정 구조를 뜯어보면 이는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02년 기준 OECD 주요국과 한국의 정부지출 내역을 비교할 때 특이한 것은 사회보장 지출 비중은 총 국가지출의 9.7%로 OECD 평균(34.7%)의 28%에 불과하다.  반면에 국방관련 지출은 239%, 경제사업 관련지출은 208%, 주택·지역개발 관련 지출은 181%로 매우 높다. (교육 분야 지출도 OECD평균의 141%로 한국이 높은 편이데, 이는 OECD 대부분의 국가의 경우 초중등 교육비의 평균 50%를 지방정부가 부담하는데 반해 한국은 중앙정부가 약 87%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분단 상황이기에 국방관련 지출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경제사업 관련 지출과 주택·지역개발 관련 지출이 높다는 것은 우리 경제 산업 발전단계에 비추어 특이하게 높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경제사업및 주택·지역개발 관련 지출은 정치와 관료의 권능(지렛대)을 배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사회보장 관련 지출은 정치와 관료의 의무이자 서비스 성격의 지출이다.

 

<표 5> OECD 국가의 총지출 대비 구성비 (2002)                               (단위: %) 

※출처: OECD, National Accounts of OECD Countries: General Government of Accounts, 2005.

 

 

전체 재정지출 중 경제관련 지출비중은 2000~2004년에 22.8% 수준인데, 이는 OECD 평균(2000년 기준) 9.5%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사실 한국이 정부주도로 경제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라는 것을 감안하면 OECD 평균에 비해 경제분야 지출이 높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비중이 경제구조가 민간주도로 넘어온 지 한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평균이 20.7%, 1990년대 평균이 23.2%였음을 감안하면, 2000~2004년간의 평균 22.8%는 매우 높은 수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표 6> 정부 전체 지출 중 경제 분야 지출비중                                                    (단위: %) 

 ※출처: ‘세금에 대한 오해 그리고 진실’(국세청, 2006).

 

이는 자원배분에서 관료의 재량이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신 통계(2005년)에서도 한국의 경제 관련 지출은 21%로 집계되는데, 이는 미국의 6.5%(2004년)보다 3배가량 높고, 선진국 중에서는 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강한 이태리의 3.9%(2003년)보다는 5.4배가 높은 수치이다.

 

<표 7>OECD 주요국가의 중앙정부 재원배분 현황

※ 기획예산처 2007-2011년 국가재정운용계획. 국회예산정책처 2007~2011 국가재정운용계획 분석.(미래연 브리핑 [주간 동향분석] No.9- 이명박 정부의 재정계획의 문제점과 과제 -, 2008.12.21)

 

 

[그림 1] OECD 주요국가의 중앙정부 재원배분 현황

 

 

 

한국 재정 구조는 효율성, 효과성, 공평성을 따질 부분이 너무 많다. GDP 대비 높은 건설 투자 비중도 그 중의 하나이다. 1995~2006년까지 12년 동안 한국의 건설투자 비중은 19.22%로, OECD 평균 11.67%에 비해 훨씬 높다.  건설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는 후발 개도국인 터키(11.02%), 폴란드(11.4%), 멕시코(9.94%) 보다 높고, 악명 높은 토건 국가인 일본(13.19%) 보다도 높다. 

 

<표 8>1995~2006년 건설투자의 GDP 대비 비중                   (단위 : %)

※ 출처: 미래연 브리핑 [주간 동향분석] No.9- 이명박 정부의 재정계획의 문제점과 과제 -, 2008.12.21

 

 

농업, 농촌 분야 재정 투자 추이도 효율성, 효과성, 공평성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한미FTA 협상을 계기로 농업, 농촌 분야에 대한 재정 투자(지원)를 집계한 <표 8>에 의하면 2001 이후 연 11조원 이상이 투자되었다. 2006년에는 12.7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표 9> 농업 농촌 분야 재정 투자 추이 

 

 

농업 농촌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재정 투자(지원)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를 계기로, 1992~98년에는 ‘농어촌 구조개선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총 42조원이 투자되었다.  1999~2003년에는 ‘농업‧농촌 발전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총 45조원이 투자되었다. 문제는 이런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농업 경쟁력이나 농촌의 청년층 흡입력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2013년에는 ‘제3차 농어업‧농어촌 투융자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농업에 119조 원, 수산 분야에 12조 원의 투자가 예정되어 있다.


2005년 현재 연간 농업 총생산은 22조원으로, GDP의 2.7%(806.6조)이다. 그런데 연간 농업 분야 지원액은 14~15조원으로 추정된다. <표 8>에 적시된 2005년 현재 재정투자 11.4조원 외에 다른 경로나 항목으로 투자되는 돈이 있기 때문이다. 14조원으로만 계산해도 이는 2005년 국세+지방세(163.4조)의 8.6%이다. 농업 인구가 181만5천명(총인구의 3.7%)임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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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매니페스토 매거진(2008년 11월 12월 통합호) 집계에 따르면, 한국 기초의원 중 농업 종사자는 1,141명으로 전체 4,303명의 26.5%이다. 건설업 종사자는 344명으로 전체의 8.0%이다. 광역의원에서는 농업 종사자가 108명으로 전체 866명의 12.5%이다. 건설업 종사자는 107명으로 12.4%이다. 대도시에서는 농업 종사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농촌이나 중소 도시에서 농업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중과 그 정치적 영향력을 짐작 할 수가 있다.  

   

그 결과 오랫동안 농업, 농촌 분야에서는 농기업이나 특용 작물 같은 웬만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사업비를 정부와 은행으로부터 지원받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지방의회의 지배구조와 허술한 재정 감시 시스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계화,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돈을 운용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돈의 효율성과 효과성이 크게 엇갈리는 법이다. 그것도 단순농업이 아니라 가공, 유통과 결합된 사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고령화된 농촌에는 공급되는 돈을 제대로 운용할 사람이 적어 재정 투자의 효율성과 효과성이 높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R&D 분야나 벤처.중소기업 분야에 대한 재정 투자(지원)를 비교적 큰 폭으로 늘렸다. 그러나 이 역시 토건족 등에 의한 재정 약탈 질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예컨대 중소기업청 예산은 2006년 현재 총 2조 344억 원인데, 이 예산의 60%(1조 2,033억 원)는 금융지원 예산으로 대부분은 신용보증기관 출연(9천억 원) 또는 신용보증재원 상환(2,540억 원)에 소요된다. 나머지 주요 예산항목을 보면 중소기업 기술경쟁력 강화에 2,514억 원, 재래시장과 소상공인 및 여성기업인 지원에 1,701억 원이 배정되어 있다. 그런데 재래시장과 소상공인 및 여성기업인 지원에 대한 지원액 1,701억 원도 자세히 살펴보면 시설 현대화에 1,228억 원, 시장경영 혁신 지원에 250억 원, 소상공인 지원센터 운영에 140억 원이 배정됐다. 이 예산의 상당부분은 건물을 짓고 건물을 개선하는 데 사용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창업.벤처 지원관련 예산은 2006년 현재 339억 원인데, 이 내용도 자세히 살펴보면 창업보육센터 건립지원에 168억 원, 벤처 촉진지구 육성에 45억 원이 소요된다. 이 둘을 합하면 거의 2/3를 차지하는데 이 역시 토목.건축 관련 예산에 다름 아니다. 벤처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예산은 창투사 투명성 제고 관련예산으로 6억 원이 잡혀 있을 뿐이다. 중소기업 기술경쟁력 강화 관련예산 2,514억 원의 내용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이 창업단계가 아니라 일정한 궤도에 올라와 있는 견실한 중소기업 지원용 예산이다.

 

 

<표 10> 중소기업청 항목별 예산액 및 재래시장, 소상공인및 여성기업 지원 예산

 

 

  

발전 국가(개발 독재)의 유산과 사민주의의 이종 교배는 괴물을 낳는다.


한국은 발전 국가의 유산이 매우 두텁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자산 10조원이 넘는 기업이 14개이다. 이 중 6위와 7위에 올라가 있는 포스코(32조 6610억 원)와 KT(27조 5300억 원)는 정부 지분이 커지는 않지만 사실상 정부가 주요 인사권을 행사한다.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KT 사장으로 올리기 위해 정관을 변경하는 등의 무리수를 두는 것은 그 단적인 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제외된 공기업 중에서 자산 10조 이상짜리가 7개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력 공사(한전 자산 63조 5360억 원 + 한국 수력원자력 자산 22조1220억 원), 가스공사, 도로공사, 수자원공사, 주택공사, 철도공사, 토지공사이다. 이렇게 보면 정부가 사실상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재벌급 대기업이 얼마나 많은 지 알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은 앞에서 보았듯이 정치나 관료의 권능의 지렛대로 쓰일 수 있는 경제/SOC 관련 예산이 엄청나게 크다. 복지 예산은 대체로 정치와 관료의 재량을 벗어나 있지만(잘못 분배하면 복지 수혜자나 복지 소외자들에게 멱살이 잡힌다), 경제/SOC 관련 예산은 그렇지 않다.

 

 

<표 11> 2007년 국내 20대 그룹 순위

 

 

 

 

또한 2007년 현재 220조원의 연금 자산에 대한 유.무형의 운용권이 있다. (1988~2007년까지 조성 액은 2,56조 1,207억 원인데 반해, 여태까지 지출액은 36조 4,972억 원에 불과하다) 또 하나 권력자와 관료의 거대한 권능은 유무형의 규제, 처벌권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권력자나 노블레스가 반칙, 변칙, 편법에 익숙해서 지키기가 힘든 법, 질서를 그대로 두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명분론이 강하고, 이율배반이 일상화 되어 있기에 현실에 맞게 법을 고치는 것이 여간 힘든 나라가 아니다. 그 결과 그 누구도 지키기가 힘든 법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교통법규, 선거법, 정치자금법, 의료법, 식품위생법, 소방법, 건설관련 법 등에는 그런 요소가 많다. 그런데 이는 관료나 권력자들의 힘의 원천의 하나이기에 현실에 맞게 고치려 하지 않았다. 재벌. 대기업은 정보를 통제하거나 검찰, 법원 등 사법권력을 구워 삶아버릴 자신이 있었기에 반칙, 변칙, 편법을 지속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인이 대체로 범법자인 상황에서는 자의적 처벌권과 심판권을 가진 관료(권력자, 검찰, 선관위, 법원, 국세청, 보건복지 관련 공무원, 공공기관 담당자 등)들의 권능이 커 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 검찰은 기소독점권이 있고, 법원은 헌법에 의해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법 엘리트에 의해 독점되어 있기에 더 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공사 발주, 인허가, 자리, 처벌(수사와 기소), 재판  등이 대체로 연고에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한국은 개인, 기업, 지역의 흥망성쇠(생사여탈)를 좌우할 수 있는 권력자의 권능이 너무 크다고 할 수 있다. 큰 정부는 아닐지라도, 엄청나게 센 정부 혹은 정말로 챙길 것이 많은 짭짤한 정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치는 연고주의로 뭉친 패거리(주로 지역 기반)들의 이권 쟁탈전이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념/정책/전문성/경륜 대결이 이뤄지지 않고, 영남 중심 주류 기득권과 호남 중심 비주류 기득권의 대결이 중심 대립 축이 되고, 여기에 충청 중심 핫바지(?) 신세의 기득권이 천하삼분지계를 구사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먹튀 정치, 도적 정치 청산 없이 복지 국가는 없다


주요 선진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불을 달성한 시점(대략 1990년)의 OECD 23개국 공공사회 지출 규모는 GDP의 17.9%였다. 그런데 2만 불을 돌파한 한국의 복지재정 규모는 아직도 GDP의 7.8%(2008년 예산 기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결코 신자유주의자의 농간이 아니다. 그것은 토건족, 지방의회를 장악한 토호들, 각종 이익집단, 관료, 정치인의 오랜 유착구조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 제도(특히 선거제도)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이 구조는 경제가 성장하고, 복지재정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정말 한국 재정 할당 양상이나 재정 구조를 보면, 로비력이 강한 집단이나 정보가 빠른 집단의 ‘먹튀’ 징후가 뚜렷하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핵심들은 정권을 무슨 비즈니스(수익) 모델로 간주하는지, 큰 폭의 적자 재정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자기 패거리와 친화적인 상층이 대부분의 혜택을 보는 감세를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동시에 토건족 또는 재벌.대기업이 대부분의 혜택을 보는 재정 배분 계획(산업분야와 SOC 분야 집중 지원)을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또한 자질도 능력도 없는 자들을 자기 패거리라는 이유로 온갖 변칙, 편법을 써가며 공기업, 공공기관 등에 밀어 넣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재정 할당이나  자리 배분에서 점점 더 ‘먹튀’들의 노략질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도적 정치’를 닮아가고 있다. 


정의가 무참하게 강간을 당하고, 재정이 엉뚱한 곳으로 콸콸 새는 마당에 큰 폭의 적자 재정을 감수하고서라도 복지 재정을 대폭 늘리고, 공공부문을 유지, 확대하자는 것은 그 속마음은 어떤지 몰라도 객관적으로는 반동이 아닐 수 없다. 발전 국가, 개발독재의 유산과 사민주의가 이종 교배하면 재정을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불가사리 같은 괴물을 낳을 뿐이다. 현재 한국에서 복지 가치는 (투자의욕과 근로의욕 자체를 맛이 가게함으로서) 일자리 자체를 죽여 거대한 복지 수요층을 양산하는,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정치,경제,사회 구조를 뜯어고치지 못한다. 조세 저변을 늘리지도 못하고, 조세 부담 의지도 늘리지 못한다. 백년 갈 가치 생산 생태계를 불태워 찰나의 이익을 취하는 화전민 마인드도 퇴치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의는 이 모든 것을 정조준한다.  그러므로 더 따뜻한 나라를 만들려면 더 차가운 정의를 세워야 한다. 더 큰 복지, 더 많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 확고한 정의를 세워야 한다. 복지가 아니라 정의가 먼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