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현안

종부세사건과 법관임명방식의 문제점에 대한 반추

강산21 2008. 12. 25. 22:37

종부세사건과 법관임명방식의 문제점에 대한 반추



정태호 (경희대 법대 교수, 헌법학)



1. 헌법재판의 특성


  매우 추상적인 헌법규정들이 사건해결의 잣대로 적용되는 헌법재판에서는 재판관들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헌법해석에, 따라서 재판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데 이론이 없다. 헌법재판관들은, 몽테스큐가 상정했던 것과는 달리 헌법제정자가 헌법조문에 담아 놓은 의미, 즉 구체적인 사건을 규율하는 법규범을 기계적으로 발견하는 자동인형이 아니다. 오히려 재판관들은 추상적인 조문들이 희미하게 그어 놓은 한계 안에서 구체적 사건에 적용될 헌법규범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의 오류를 심사하여 시정할 수 있는 상위심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은 단심으로 끝나버린다. 재심도 원칙적으로 부정된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최고법인 헌법을 규준으로 다른 최고국가기관들이 취한 법적 조치들의 위헌여부를 가림으로써 동시에 최고기관들의 권한범위를 확정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통해 동시에 자신에게 배정된 통제권한의 범위, 즉 다른 기관의 조치를 위헌으로 선언할 수 있는 범위까지도 스스로 확정하게 된다. 

 

 그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자신의 본분을 넘어 다른 기관의 권한, 특히 입법자의 입법권을 침해하거나 ‘정파적 재판’을 할 가능성은 어떤 재판의 영역에서보다 높다. 헌법은 이와 같은 위험성을 완화하고 공정재판의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책을 담고 있다. 즉 헌법재판소를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하고,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에게 각 3인의 지명권을 부여하여 헌법해석에서 사회의 다원적 구조가 반영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두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헌법의 대책도, 재판부가 사회의 다원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구성되지 않거나 재판관 후보자 풀 자체가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지 않으면 그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2. 민주개혁세력의 헌법재판소 구성의 다양성 확보 노력과 그 실패

  

  헌법재판소가 지난 11월 내린 종합부동산세제에 대한 위헌취지의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지나치게 보수성을 띠는 등 우리 사회의 다원성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헌법재판소는 이 결정에서 주택의 세대별 합산과세에 대하여는 헌법 제36조 제1항의 혼인 및 가족 보호 정신에 반하여 혼인하여 함께 가족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을 독신자나 사실혼관계에 있는 자 등에 대하여 부당하게 차별하여 위헌이라는 이유로 즉시 실효시키는 한편, 1주택장기보유자로서 담세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자를 위한 예외나 조정장치를 두지 않아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당 규정에 대한 입법개선을 명하였다.

 

  이로써 지난 3년간 우리 사회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주택관련 종부세제는 대들보가 뽑힌 채 명목만 유지하게 되었다. 토지초과이득세법, 택지소유상한에관한법률에 이어 주택관련 종부세제가 형해화됨으로써 부동산 공개념 강화시도는 또다시 헌법재판의 관문을 뚫지 못하고 사실상 좌초하고 말았다. 강남재판관들 위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이기에 오히려 부자들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헌법재판소는 혼인 및 가족에 대한 헌법의 보호정신을 강조하면서 부부를 비롯한 가족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통인 주택에 대한 종부세 부과방식을 결과적으로 부동산부자에게 유리하게 바꾸도록 요구하였다. 그에 따라 ‘담세능력에 따른 과세의 원칙’이라는 또 다른 헌법적 요청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세대별합산과세방식이 헌법재판소의 주장처럼 혼인․가족의 보호와 충돌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능력에 따른 과세의 원칙에 담긴 조세정의라는 또 다른 헌법적 가치를 감안한다면, 무조건적 분리과세가 아니라 합산과세를 허용하되 어느 정도의 기초공제를 해주는 것으로 충분했다고 본다.

 

  헌법재판소는 또한 종부세의 주된 기능이 국가의 재정수요 충당과 아울러 조세부담의 형평성 확보에 있고 부동산투기억제는 그 부수적 기능일 뿐임에도 장기간 1가구 1주택을 보유하고 있거나 충분한 소득 없이 고가의 1주택만을 보유한 이들을 배려하라는 설득력이 없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결국 헌법적 논증의 이면에는 종부세에 저항하는 부동산부자들인 헌법재판관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숨어 있는 것이다. 즉 종부세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는 재판관들의 사회적 지위가 투영되어 있다. 실제로 재판관의 재산보유정도와 재판관의 종부세 사건에서의 태도 사이에는 높은 상관성이 존재한다. 합헌의견을 제시한 2인의 재판관은, 위헌의견을 제시한 재판관들과는 달리 공직자재산등록금액이 8.1억원 이하였기 때문에 종부세부담이 없거나 있더라도 그 부담이 크지 않았다. 이에 비하여 누가 재판관 지명권을 행사했는지와 종부세제 결정을 통해 나타난 재판관의 성향은 상관성이 매우 낮았다. 합헌의견을 낸 김종대, 조대현 재판관은 각기 대법원장과 열린우리당 몫으로 임명되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몫으로 임명했던 이강국, 송두환, 김희옥 재판관은 모두 위헌의견 쪽에 가담하였다.

 


헌법재판관 추천기관 및 부동산 재산 신고내용(2008)

 

재판관

 추천기관

재산신고액합계

건 물

토 지

이강국 재판소장

대통령(노무현)

37.2억

37.1억

0.1억

이공현 재판관

대법원장

27.2억

25.7억

1.5억

조대현 재판관

국회(열린우리당)

8.1억

8.1억

-

김희옥 재판관

대통령(노무현)

31.7억

30.1억

1.6억

김종대 재판관

대법원장

6.3억

6.3억

-

민형기 재판관

대법원장

13.7억

10.9억

2.8억

이동흡 재판관

국회(한나라당)

11.3억

11.3억

0.5억

목영준 재판관

국회(민주+한나라당)

38.3억

36.8억

1.5억

송두환 재판관

대통령(노무현)

20.7억

20.3억

0.4억

평 균

-

21.6억

20.7억

0.9억


 

 

3. 헌법재판소의 보수편향의 원인과 대책


  민주개혁세력이 다수파로서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고 있던 지난 5년간 참여정부는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관을 탄생시키는 등 헌법재판소에 다양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종부세사건이나 신문법사건에서 보듯이 참여정부의 의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처럼 민주개혁세력의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계속해서 강한 보수성을 띠고 있는 데는 다음과 같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즉 헌법재판관들이 충원되고 있는 고위 법조인 풀 자체가 매우 보수적이기 때문에 진보적인 성향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찾기가 매우 어렵고, 헌법재판관 임명을 고위 법관이나 고위 검사의 승진인사로 생각하는 법조계나 정치권의 태도 역시 오랜 판검사 활동을 통해 관료화되고 보수화된 법조인들이 헌법재판관이 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를 순수 법조인 재판소로 만든 현행 법제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비법조인 등 다양한 사회적 배경과 경력을 가진 인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각 원인들에 맞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보수편향을 완화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헌법재판관의 주된 충원 풀인 고위법관들이 보수화되는 근본원인을 알아보고, 그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현행 헌법상 대법원의 구성에는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대통령과 국회가 관여하지만, 대법관의 추천권은 대법원장에게 있다. 그런데 대법원장이 자신의 동료가 될 대법관을 추천하는 것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사이에 비공식적인 위계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서 합의제기관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 뿐 아니라 모든 법관들을 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 제도는 모든 법관들을 수직적 위계구조에 가둬두어 관료화시키고, 사법권을 비롯한 모든 국가권력의 원천인 국민과 유리시키는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관들이 재판에서 대법원판례의 동향에만 신경을 쓰면서 순치되는 한편,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반영함으로써 국민 다수의 정의감이나 법적 감각과는 거리가 먼 재판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고 있다.

 

  법관은 비정치적․중립적으로 법을 해석하고 재판한다는 테제는 신화요 허구일 뿐이다. 오히려 법해석은 법조문에 입법자가 담아 놓은 구체적인 사건을 규율하는 법규범을 기계적으로 발견하는 비정치적인 과정이 아니라 법해석자의 가치관, 사회적 지위 등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창조적․정치적 과정이다. 법관인사제도의 개혁도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는 바탕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다시 말해 정치권을 법관인사에서 최대한 배제하고 있는 현행 법관인사제도의 기틀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관료화된 법원조직의 정점에 있는 대법원장의 대법관추천권을 폐지하여야 한다. 그 대안으로 대법원장 선거제, 법관들에 의한 대법원장 및 대법관 선거제, 법관대표․시민단체․ 변호사단체 대표․법학계대표 등이 참여하는 대법관추천제도 등이 제시되고 있으나, 필자는 대통령이 국회의 재적의원 2/3 이상의 동의를 얻어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하는 것이 솔직한 해법이라고 본다. 국회재적의원 2/3 이상의 동의요건도 극단적인 정치적 성향을 띠는 후보자들이 대법관이 되는 것을 어렵게 할 뿐 실제적으로는 국회의 세력관계에 따라 대법관임명권을 정치세력들로 하여금 분점하게 함으로써 대법원구성이 사회의 다원성을 반영할 수밖에 없게 만들 것이다.

 

  나아가 대법원장 및 그에 의해 제청되어 임명되는 대법관들로 구성되는 대법관회의에 맡겨져 있는 일반 법관의 임명방식을 법관임명에 민주적 통제가 보다 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하여야 한다고 본다. 일반법관의 임명을 사법부 구성원들에게만 맡겨두는 것은, 고유의 이해관계를 형성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법관들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반면 민선의 정치인들을 극도로 불신하는 또 하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장기간의 독재 내지 권위주의체제를 거치면서 법관의 인사를 법조인들에게 맡겨두는 것이 낫다는 관념이 국민의 의식 속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사방식은 과거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냄으로써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구축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므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법관인사에 대한 정치기관의 관여금지 내지 법원의 법관인사자율권의 으로 이해하는 잘못된 헌법이론과 결별하여야 한다.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일반법관의 임명을 사법부구성원들에게 완전히 맡기고 있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법관인사가 중요한 정치적 문제라는 전제 위에서 법관인사제도가 형성되어 있다. 현행 법관인사제도에 대한 대안으로 유권자에 의한 법관선거방식, 의회에 의한 법관선출방식, 행정부에 의한 법관임명방식, 임명권자의 임명과 연임여부에 대한 투표를 결합하는 방식, 행정부와 의회가 공동으로 임명에 관여하는 방식 등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적어도 지방법원부장판사부터는 대법관회의로 하여금 그 후보자를 2-3배수 추천하도록 하고 행정부와 국회의 대표들이 이 추천명부에서 법관을 임명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 이러한 임명방식도 문제점이 없지는 않지만, 법관들이 국민과 유리되는 현상, 법관의 획일적 보수화, 궁극적으로는 헌법재판소의 보수편향을 완화시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