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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선정 올해의 인물]촛불소녀

강산21 2008. 12. 22. 12:53

[경향신문 선정 올해의 인물]촛불소녀

ㆍ국민주권 일깨우다

지난 5월2일 1만여명의 군중이 서울 청계광장에 모였다. 대부분 교복을 입은 여중·고생들이었다. 한 손에는 촛불, 다른 손에는 손팻말을 들었다. '촛불 소녀'들은 학교 급식과 입시 지옥 같은 자기 앞에 닥친 관심사를 들고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어른들만 몰랐다. 청소년들은 이미 두발 자유화, 학생회 선거, 0교시 부활로 상징되는 '미친 교육 반대' 등에 목소리를 내며 공동행동을 벌여왔다. 사회적 주체로 자리매김하려는 누적된 경험은 미국산 쇠고기에서 폭발됐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소녀들의 촛불은 직장인·대학생·주부·교수·종교인 등 이명박 정부의 비정(秕政)에 개탄하는 기성세대를 불러냈다. 쇠고기 주권을 포기한 여당의 독선, 야당의 무능 속에 시민들이 동참했다. 계층과 지역을 아우른 수많은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거리 정치'의 시작이었다. 비폭력·무저항의 촛불은 6월10일 '100만 대행진'으로 절정에 달했다.

촛불은 쇠고기로 촉발된 생활주권 수호를 위한 항쟁이었다. 민주시민으로서 주권의식을 천명한 혁명이었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않는 정권은 주권자로서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소녀들의 외침은 잠들었던 국민주권을 각성시켰다. 마침내 대통령은 사과했고 무기력한 정치권은 고개를 숙였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촛불시위는 민주주의 제도가 작동하지 않고,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할 때 그 자리를 대신할 구원투수 같은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촛불 소녀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어냈다. 리더도 없었고 일사불란함도, 남녀노소의 구별도 없었다. 자유발언대에 나와 생각을 밝히고 노래하고 춤췄다. 피켓에는 풍자와 해학이 넘쳐났다. 집회·시위의 엄숙주의를 깨뜨리고 솔직·당당·발랄함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촛불 소녀' 캐릭터는 2008년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했다.

촛불은 인터넷을 통해 시공(時空)을 넘나들며 오프라인과 연대했다. 온라인 모임은 오프라인에서 현실화됐다. 인터넷은 공론의 장으로 여론 형성을 주도했고, 네티즌들은 전문가 뺨치는 정보를 퍼날랐다. 사이버 민주주의는 활짝 만개했다.

수없이 모인 촛불은 횃불보다 밝았다. 촛불은 자유와 평등, 소망을 노래했다. 21세기형 신나는 시민 저항의 원형을 가르쳐줬다. 그래서 혹자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는 '촛불 이전'과 '촛불 이후'로 나뉜다고도 했다. 그 촛불, 소녀들이 지폈다.

유현주양(15·중3)은 "청소년은 아무 생각 없는 애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나갔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큰 즐거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중3 김윤애양(15)은 "이제 정치나 사회에도 관심이 생겼다. 내가 행동해서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