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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네오휴머니즘 신자유주의 넘을 열쇠”

강산21 2008. 11. 16. 17:00

“협동조합+네오휴머니즘 신자유주의 넘을 열쇠”
조합원 공동소유 바탕 노동 기여 따라 성과급
‘영성’으로 이기심 막아 자본·사회주의 넘는 제3의 길
한겨레  한승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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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경제모델 프라우트가 온다〉
다다 마헤시와라난다 지음·다다 칫따란잔아난다 옮김/물병자리·1만원

 

 

“1970년에 국제자본의 90%는 무역과 장기투자(대체로 생산부문 투자)에 사용됐으며, 10%가 투기적인 성격이었다. 그러나 1990년에는 이 숫자가 뒤바뀌었다.” 프라우트 운동가 다다 마헤시와라난다가 2003년에 낸 <건강한 경제모델 프라우트가 온다>(AFTER CAPITALISM: Prout’s Vision for a New World)에 서문을 쓴 노엄 촘스키는 불과 20년 만에 국제자본의 90%가 투기자본화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현재의 경제제도는 실패작이며, 거의 재난에 가깝다”고 썼다. 2007년 월든 벨로는 하루 약 1조9000억달러의 돈이 투기 도박장에서 거래된다고 했다. 지금 전세계 하루 자본거래액 가운데 실물경제와 관련된 것은 2%에 지나지 않으며 98%가 투기거래다.

 

이 만연한 투기의 수혜자들은 한 줌에 지나지 않는다. <포브스>(2007년 5월3일)는 애플컴퓨터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받은 연봉은 6억4800만달러로 애플사 초년생 연봉의 3만배나 된다고 전했다. 이 잡지가 발표한 2006년도 ‘억만장자 명단’을 보면 세계 최상위 부자 52명의 재산은 최근 4년간 2배 이상 늘어 1조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전세계 인구의 절반인 30억명의 1년 소득액보다 많은 것이다. 그 결과 지금 66억 세계인구의 3분의 2는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중산층’은 양극분해돼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1970년대 미국의 이른바 ‘레이건 혁명’과 영국 ‘대처리즘’ 등장 이후 본격화한 정치적 신보수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몰고온 재난을 한국인들은 1997년 외환위기 때 이미 처절하게 체험했다. 지금 그때보다 더하다는 대재난이 다시 밀려오고 있다. 이젠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가 아니라 ‘다른 세계는 가능해야 한다’는 외마디가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의 공통적인 이익을 고려할 때, 자본주의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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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비하르주 자말푸르 출신으로 1955년에 사회적·영적 조직인 ‘아난다 마르가’(Ananda Marga·지복의 길)를 창설한 프라밧 란잔 사카르(1921~90)는 재난을 몰고 오는 경제적 공황을 “순전히 착취의 결과”라고 했다. 이기심에서 출발한 무자비한 이윤추구가 초래한 극단적인 부의 편중과 넘쳐흐르는 돈의 투기자본화에 따른 화폐유통시스템 마비가 공황을 부르며, 이는 자본주의체제 아래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봤다. 그는 “자본가들은 마치 기생충처럼 공업·농업 노동자들의 피로 번영한다”고도 했다. 해결책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가 제자들과 함께 창설한 조직이 아난다 마르가였고 1959년에 대안이론으로 제시한 것이 프라우트(Prout)였다. 프라우트는 ‘진보적 활용론’으로 번역되는 ‘Progressive Utilization Theory’라는 영어 머리글자들을 엮어 만든 말이다.

 

개혁주의자들을 비판하며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한 점에서 사카르는 마르크스주의자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진정한 영성과 종교적인 도그마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분명하게 구분”하면서 “종교 전도사들이 과거 세계 곳곳에서 인류를 착취했으며, 오늘날에도 같은 짓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아난다 마르가와 프라우트가 단순한 종교조직이나 신앙 차원의 비전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해서 ‘영성’을 강조하는 그가 마르크스주의자일 리도 없다.

그는 혁명을 얘기하지만 무장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유혈혁명이 아니라 지성을 갖춘 영적인 지도자들인 ‘사드비프라’가 지도하는 대중운동 형식의 점진적 무혈혁명을 추구한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공산주의 철학을 인간심리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것이라 비판하면서 중앙집중식 전체주의도 거부한다.

프라우트는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다. 촘스키는 이를 “협동조합 중심의 경제적 민주주의”라고 했고 지은이 마헤시와라난다는 “일종의 통합적 거시경제 모델”, “모든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사회와 경제를 어떻게 재구성해야 하는지를 담은 청사진”이라고 했다. 핵심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관리하는 사업을 통하여, 구성원들의 공통된 경제적·사회적·문화적인 필요성과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뭉친 사람들의 자율적인 협회”로 정의되는 협동조합이다. 프라우트 협동조합은 사적 소유를 인정한 바탕 위에 지분을 나눠 가지지만 이 투자 지분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다. 투기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누구에게나 기본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 기술이나 노동 기여도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되 최고임금에 상한을 설정해 최저임금과의 격차를 일정 한도 내에서 제한하며 조합 생활수준의 전반적 향상에 따라 그 차이는 점점 줄어드는 구조로 돼 있다. 공동소유이니 해고 같은 것도 없다.

 

이것이 자본주의를 뛰어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면, ‘영성’은 사카르가 “정신병”이라고 못박은, ‘이윤을 무한 추구하는 탐욕과 이기심’을 원천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형이상학적 장치다. 사카르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가 우주심, 지고의 존재와 연결돼 있는 한몸이자 하나의 가족으로서 공명·공감한다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영성가족’ 개념을 얘기하면서 그것을 확장된 휴머니즘 곧 네오휴머니즘이라 일컫는다. “프라우트의 목적은 경제성장이나 부의 축적이 아니라 기본적인 욕구만 충족시키고 무한한 영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요한 갈퉁)

프라우트가 과연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세계의 비전’이 될 수 있을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옮긴이와 함께 / 다다 칫따란잔아난다

“영성공동체로 자본주의 이후 대비”


» 다다 칫따란잔아난다
“플라톤도 한 사회 상층의 소득이 하층 소득의 5배를 넘으면 위험에 빠진다고 했다. 내 유학시절 미국의 상하층 소득비는 1000 대 1 정도나 됐다. 하지만 지금 미국 대기업 최고책임자의 연봉은 그 회사 초년생 연봉의 3만배다. 그 회사 직원이 아니라 일반 하층민 소득을 그 최고연봉자와 비교하면 무려 9만배 차이가 난다.”

 

책 번역자 이름이 ‘다다 칫따란잔아난다’(사진)로 돼 있어서 한국말 잘하는 인도 사람이 있나 보다 했는데, 전북 정읍 출신의 한국인이었다. 1947년생이니 61살. 오렌지색의 인도 수행자 특유의 옷차림에 터번을 두르고 수염까지 기른 그는 아닌 게 아니라 인도인처럼 보였다. 서강대 경제학과를 나와 1982년부터 약 7년간 미국 위치타대와 메릴랜드대에서 공부했다.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따고 돌아와 산업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일했는데 고혈압과 당뇨, 위염 등으로 몸을 심하게 앓아 이곳저곳 찾아 헤맨 끝에 아난다 마르가를 만났다. “거기 들어간 지 1년 만에 먹던 약들을 몽땅 끊었고 지금까지 약을 먹어본 적이 없다. 3년 만에 직장도 그만두고 인도에 갔다 왔다. 몸도 정신도 완전히 바뀌었다. 갖고 있던 미국 책들도 모두 버렸다.” 대학 다닐 때 데모 한 번 한 적 없던 그는 “자본주의는 착취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스승 사카르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스승의 책 200권을 읽었는데 “매우 논리적”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착취사회다. 모두가 모두에게 도둑이라 할 수 있다. 다들 어떻게 하면 남의 몫을 빼앗아 가질까만 생각하고 있는 꼴이다.” 입시를 봐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했다. “내 아이 합격만 빌면, 남의 아인 떨어지라는 얘기냐?”

 

1997년에 낸 <자본주의의 종말>은 “금융공황이 밀어닥치고 있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했다. 거기서 지구 자전축 변화와 환경파괴 등에 관한 얘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본명 ‘고철기’를 버리지 않았다. 결혼하고 가정이 있었지만 2001년 “깨달음과 사회봉사를 위해 여생을 보내려고” 출가수행자가 됐고 그때 이름도 바꿨다. “수행자는 앞만 보고 나가야 하는데, 옛 이름을 들으면 과거에 미련을 갖고 뒤돌아보게 된다.” 아난다 마르가의 출가수행자는 지금 200여개 나라에 1500여명이 있는데, 한국인 출가수행자는 그 한 사람뿐이다.

 

1991년에 전북 완주군에 ‘고산 산촌유학센터’라는 걸 만들었다. 그게 한국 최초의 아난나 마르가다. 지금 선생 7명에 학생 18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학생들은 다 도시 아이들이다. 한 학기 또는 1년씩 와서 요가하고 명상하며 함께 생활한다. 그 기간에 근처 학교에 다니는데, 그 덕에 학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처했던 학교 분위기도 완전히 바뀌었단다. 경북 청송에 농사짓고 수행하는 일반인 대상의 자급자족 영성공동체를 또 하나 준비하고 있다. 그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아난다 마르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서도 지금의 인간 심성으로는 프라우트를 당장 실현하긴 어렵다고 했다. 결국 자본주의가 갈 데까지 가 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사람들이 깨닫게 되고 무혈혁명이 일어나겠지만 준비를 착실히 해서 그 시기를 앞당기고 좀더 무난하게 전환하도록 만들 수는 있단다. “요구르트를 발효시킬 때 보면, 발효 마지막 순간까지 별 변화가 없어 보인다. 발효는 그 마지막 순간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그 발효 준비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 그게 그 자신을 포함한 영적인 혁명 리더들, 곧 사드비프라가 할 일이라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한승동 선임기자



기사등록 : 2008-11-14 오후 07:4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