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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 마음, 여자 마음 (박완서)

강산21 2008. 10. 31. 12:55

에미 마음, 여자 마음

-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자식을 앞세운 에미는 밤에 편히 잠들지 못한다. 추운 날은 내 자식이 얼어붙은 딱딱한 땅속에서 추위에 떨 것 같아 따스한 잠자리가 오히려 가시방석처럼 고통스러워 전전반측 잠 못 이루고, 더운 날은 더운 날대로 그 깊은 땅속에서 답답하고 무더워 어찌 견디나 싶어 쾌적한 냉방을 거부하고 홀로 가슴을 쥐어뜯는다.


아침에 개었던 날이 낮부터 흐려져서 오후엔 장대비가 내리자, 그런 날이면 우산 갖고 학교로 마중가던 버릇대로 나섰다가 그 애가 이젠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막막해졌지만 내친 김에 무덤이 있는 산으로 달려가 봉분 위에 우산을 받쳐주면서흐느끼다가 돌아온 에미의 예기를들은 적도 있다. 죽으면 육신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자식이 그렇게 됐다는 걸 차마 인정하지 못하는 게 모성이다.


자식이 하는 짓이면 온갖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게 모성이라지만 죽음만은 한사코 거부하는 게 또한 모성이다. 죽음조차도 부정할 수 있는 에미 마음이고 보면 자식의 부재 또한 순순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6.25 때는 거의 대부분의 청년들이 자진해서 전쟁터에 나가거나 끌려가지 않으면 도망다녀, 자식의 행방을 모르는 에미들이 숱하게 많았다. 그런 에미들은 거의가 다 자식이 집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끼니때마다 자식의 밥그릇에 밥을 퍼놓고 기다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건 단지 자식이 집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슬프고도 어리석은 모성의 차원을 넘어, 하늘도 감동시킬 신성한 의식이 되었고, 자식들로 하여금 기적처럼 위기를 넘기게 하거나 믿을 수 없을 만큼 용감한 죽음을 맞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것도 여인들이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처음 뵌 것도 여인이었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이야말로 최초의 페미니스트이셨을까? 그렇다고 해도 나쁠 것은 없지만 예수님은 성별에 따라누굴 더 두둔하거나 층하하실 분이 아니다.


여인들이 먼저 갔으니까 기쁜 소식도 먼저 들은 건 당연하다. 왜 먼저 갔을까. 별로 좋은 데도 아닌 무덤에를 겁도 없이. 제자들도 무서워 문 닫고 모여 있는데.

밤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나 걱정이 되어 도저히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갔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걱정한다는 것은 산 사람 사이에나 하는 일이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는 슬퍼만 하면 됐지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걱정이 되어 도저히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그만인, 목석과 다름없는 시신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향유로 씻어드리고 싶어 갔을 것이다.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린 일은 여인이 예수님 생전에도 행한 최고의 공경이요, 사랑의 표현이었다. 살아계실 때와 똑같이 해드림으로써 살아 계실 때와 다름없이 기뻐하시리라 여인들은 믿었으리라.


아무리 막강한 죽음의 세력도 진리요 정의이자 사랑이신 주님을 아주 죽게 할 수는 없으리라는 여인들의 믿음이 그 분의 살아계심을 가장 먼저 보고 듣고 느끼고 증언할 수 있는 특권이 되었다.

요한 2019-31.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박완서, 열림원, 2008, 5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