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실그대로

“<돌발영상>은 이미 YTN의 것을 넘어 시청자, 국민의 것”

강산21 2008. 10. 20. 11:58

[FOCUS] 돌발영상│“<돌발영상>은 이미 YTN의 것을 넘어 시청자, 국민의 것”

기사입력

2008-10-16 18:30 

 

YTN <돌발영상>은 세 명의 기자 겸 PD가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을 해온 YTN 노조원 33명에 대한 인사조치가 단행된 10월 6일, <돌발영상> 팀의 정유신 PD가 해임되고 임장혁 팀장은 6개월 정직 처분을 당했다. 그리고 10월 8일, 유일하게 징계를 면한 정병화 PD가 만든 ‘블랙 코미디’ 편을 마지막으로 <돌발영상>은 사실상 폐지되었다. <돌발영상>을 처음 만들었던 노종면 PD(현 YTN 노동조합위원장)로부터 바톤을 넘겨받아 3년 10개월째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던 임장혁 팀장을 만나 그동안 <돌발영상>이 가졌던 의미와 지금의 상황에 대해 들어 보았다. 인터뷰 후반부에 정유신 PD가 합류했다. 프로그램은 중단되었지만 이들은 마침 6일부터 시작된 국정감사 현장을 <돌발영상>에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t : 요즘 하루 일과가 어떤가.

임장혁 : 회사에 의해 업무로부터 배제된 상태다. 그래서 아침에는 노조 지침에 따라 집회에 참석을 하고, 매일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오늘은 징계를 받은 노조원 33명의 자료를 취합해 변호사를 만나야 한다.

t: <돌발영상>을 만들던 때의 하루 일과는 어땠나.

임장혁 : 아침에는 가능한 한 일찍 출근해서 그 날 방송할 아이템을 최종 확정했다. 바로 전날 촬영한 내용, 혹은 좀 더 전에 촬영한 자료를 보고 가끔은 당일 나온 테이프도 본다. 오전 9시 전까지 아이템을 확정해서 편집에 들어가 자막과 그래픽 작업 하고 최종 녹화해서 테이프를 넘긴다. 그게 끝나면 두시 반에서 세시 사이에 식사를 하고, 다시 다음 날 방송할 아이템을 찾는다. 쳇바퀴 도는 것처럼 일했다.

“2006년 WBC 관련 에피소드는 내가 봐도 재미있다”

임장혁 PD
t: 2003년 여름, <돌발영상>이 처음 방송되기 시작했을 때는 영상에 가장 기본적인 자막만이 들어간 간략한 형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말풍선 같은 효과들이 등장했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처럼 영화와 결합을 하는 등 형식적인 변화가 생겨났는데.

임장혁 : 그런 변화들은 사실 의도해서라기보다는 물리적 여건이 나아지면서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처음 <돌발영상>을 만든 노종면 PD 혼자 모든 작업을 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장비나 인력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2, 3년 정도 지나고 <돌발영상>이 YTN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인지되면서 지원이 좀 더 늘었다.

사실 뉴스 화면에 일반 자막이 아닌 말풍선을 등장시킨다던가 하는 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잘 쓰이지 않을 때였는데 그런 방식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할 수 있었고, 그런 게 장치적인 매력이 된 것 같다. 초반에 노종면 PD가 참 잘 만든 거다. 이후에 내가 프로그램을 맡고 나서는 자막이나 화면 상태 같은 걸 좀 더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사실 내 판단이나 주위 반응 모두 ‘초기에 만들어졌던 원형을 많이 바꾸지 않으면 좋겠다’는 데 일치해서 일부러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측면도 있다.

t: 그렇다면 지난 5년 동안 <돌발영상>이 기본적으로 이어 온 정신은 무엇일까.

임장혁 : 어떤 사람들은 <돌발영상>이라는 제목만 보고 특정인의 돌출적인 행동이나 코믹한 해프닝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만 생각하는데, 우리는 유머나 풍자를 통해 뉴스를 전달하되 그것이 말 그대로 희화화에 머무는 게 아니라 정치의 이면이나 현실을 꿰뚫어보자는 게 목적이었다. 유머와 풍자는 수단일 뿐, 기계적인 중립을 벗어나 이 현안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에 대한 간접적인 평가를 내리게 하자는 거였다. 즉,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뉴스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되 공익을 통해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t: 프로그램을 맡은 이후 수백 편의 <돌발영상>을 만들어왔는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면.

임장혁 : 내가 만든 거지만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관련된 회는 다시 봐도 재미있다. 잘 만들고 아니고를 떠나서, 어떤 정치적인 판단이나 비판 의식 없이 그냥 국민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재미있게 만든 거였고 반응도 좋았다. 항상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어느 한 쪽을 부각시키면 다른 한 쪽이 비판받게 되는 식이었는데 야구 같은 건 정치를 떠나 누구나 좋아하는 소재니까 그 때만큼 편집하면서 편하고 즐거웠던 적이 없다.

t: 반면 방송으로 만들 수는 있는 내용이지만 이걸 내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경우도 있나?

임장혁 : 많았다. 우리 의도는 아니지만 어떤 내용이 방송됨으로 인해 큰 잘못 없는 누군가가 곤경에 빠지거나 공인이 아닌 사람, 혹은 공인이라 해도 이름이나 얼굴을 공개하기 어려운 중하위직 공무원이 등장하는 내용 같은 건 개인의 인권이나 명예훼손과 관련된 문제라 소재는 있어도 방송하지 못한 적이 종종 있었다. 또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라던가 효순, 미선양 사건이나 철거민 문제처럼 국민들이 볼 때는 어두운 사건들의 경우는 코믹한 상황이 발생해도 그 본질을 훼손하거나 현안 자체를 희화화할 수가 있어 방송하지 않는 내용이 많았다. 남북정상회담 상황에서의 색다른 에피소드 같은 것들도 쓰기가 좀 어렵고.

“같은 진실, 같은 상황인데 어떤 건 방송해도 되고 어떤 건 안 된다면 불합리”

t: 그 밖에도 <돌발영상>은 국정감사나 국회에서의 법안 통과 과정, 각 당 대변인들의 논평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등 정치의 이면들을 계속 들춰 왔는데, 그런 내용들로 인해 압력이나 제재가 가해졌던 적은 없나.

임장혁 : 없었다. 국회의원 한 명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적은 있지만 우리가 완벽히 승소했고, 올해 3월 초 ‘마이너리티 리포트’ 편에 대해 데스크에서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과 통화한 뒤 수정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지만 그 밖에 제작에 대한 압력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YTN 낙하산 사장 임명과 관련한 사태가 발생하자, 겉으로는 <돌발영상>과 무관하게 나와 정유신 PD에 대한 사측의 경찰 고소와 징계가 이어지며 프로그램에 차질을 빚던 중 결국 우리가 정직, 해직되며 사실상 방송이 중단되는 결과가 된 거다.

t: 정직이나 해직에 대한 사유는 무엇인가.

임장혁 : 업무 방해와 사장 출근 저지를 했다는 건데, 우리 스스로는 그런 징계를 받을 만한 행위를 한 적이 전혀 없다. 다만 대선 특보 출신 정치인이자 현 정권의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한 인물이 보도 전문 채널의 사장으로 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 죄 밖에 없다.

t: 이미 9월 초에 다른 부서로 인사 발령을 받았고 프로그램 작성을 위한 아이디를 폐쇄당한 후였는데 그 후 <돌발영상>을 만들면서 자체검열의 유혹에 빠지지는 않았나. 이명박 대통령이 멜라민이 검출된 과자의 포장을 들여다보며 “멜라민이라는 말이 없네”라고 말하는 ‘멜라민’ 편 같은 경우는 돌발영상이 아니었다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내용이었다.

임장혁 : 자체검열보다는 방송적합성 여부나 수위에 대한 제작자로서의 고민을 한다. <돌발영상>이 초기부터 관심을 끌었던 이유 중 하나가 ‘성역 없는 사실보도’였고, 지금까지도 우리는 내용을 왜곡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에 해가 되지 않는 선이라면 방송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멜라민’도 팀원들과 사전에 얘기를 했지만 누구 하나 ‘이런 걸 방송에 내보내서 대통령을 건드려서야 되겠냐’는 목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같은 진실과 같은 상황인데 어떤 건 방송해도 되고 어떤 건 안 된다면 불합리한 태도다. 결국 자체검열보다는 자기 고민인데, 어쨌든 그 기준에 ‘성역’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정유신 : <돌발영상>은 PD 세 명과 작가 겸 AD 네 명이 만드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단지 우리 일곱 명이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돌발영상>이 지금까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현장에서 촬영하고 취재한 것을 전달해 주는 카메라 기자와 취재 기자의 도움 덕분이었고, 제작과 기술 부서에서 인력과 장비를 제공해 준 덕분이다. 도요타에 렉서스가 있듯 YTN에는 우리가 다 같이 만들어 낸 최고의 브랜드인 <돌발영상>이 있었던 거다. 게다가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치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돌발영상감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돌발영상’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대명사가 된 시점에서 <돌발영상>은 이미 YTN의 것을 넘어 시청자들의 것, 국민의 것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돌발영상>에 대해 시청자들이 거는 기대나 <돌발영상>이 우리 사회에서 하는 역할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방송이 중단된 상황에서도 많은 분들이 폐지 반대 서명을 해주시는 것 역시 <돌발영상>이 자신들의 것, 시청자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일인 것 같다.

“‘대선 특보’가 보도채널의 사장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이 지켜지는 게 유일한 해법”

정유신 PD
t: 그러나 징계조치 이후 마지막으로 방송된 ‘블랙 코미디’ 편에서는 현재 YTN의 상황에 대해 국정감사장의 국회의원들이 “케이블 채널 내부의 문제”, “그저 그런 문제”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정유신 : 현 정권 측에서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얘기하며 의미를 축소시키려고 하지만 사실 그 뒤에서 <돌발영상>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정치인들은 <돌발영상>에서 잘 먹히는 부분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평상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으면 어떤 여권 인사들은 “왜 나를 안 써주냐”고 할 정도다. 약간 코믹한 상황일 때 <돌발영상>에 등장하면 행여 좀 비판을 받더라도 자기 얼굴이 나오는 게 좋으니까. 그런데 또 다른 면에서는 <돌발영상>이 정치에 대한 풍자, 특히 대통령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데 대해 “이러면 재미없다. <돌발영상>도 없앨 수 있다”는 정부 당국자의 발언이 있었다. 그러니까 앞에서는 <돌발영상>의 의미를 축소하고 케이블 채널의 경영 문제라고 표현하지만, 뒤로는 <돌발영상>에서 얻을 수 있는 부분은 자기들이 가져가려고 하면서 위협이 된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면 “너희들, 내가 지시 한 번 내리면 없앨 수 있는 거야”라는 식인 거다.

t: 그런데 구본홍 사장은 징계조치 이후 있었던 국정감사 질의에서 “<돌발영상>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소신”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임장혁 : 논할 가치조차 없다고 본다. 누군가를 폭행해서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린 사람에게 “왜 그랬냐, 어떻게 할 거냐”라고 추궁했더니 “내가 저 사람만은 꼭 살려놓겠다”고 하는 궤변 같은 거다.

정유신 : 단순히 이번 징계 조치로 팀원 세 명 중에 두 명의 방송 제작이 불가능하게 만든 것 뿐만이 아니라 그 전부터 인사위원회 과정을 통해 <돌발영상> 제작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을 계속 만들어왔다. 구본홍 씨의 그 말대로라면 사원들을 징계하는 것보다 <돌발영상>을 방송하고 지키는 게 우선이어야 할 텐데, 과감하게 프로그램을 접어버리고 징계를 내리고 노조를 압박하고 사원들을 협박하는 부분에만 집중한 것만 봐도 그 답변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 수 있다.

t: 그렇다면 지금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결과는 무엇인가.

임장혁 : ‘대선 특보’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은 YTN의 사장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이 지켜지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이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