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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돌발영상│<돌발영상>이 사라졌다!

강산21 2008. 10. 20. 11:55

[FOCUS] 돌발영상│<돌발영상>이 사라졌다!

기사입력

2008-10-16 18:30 

 

지난 10월 6일, 제 18대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어쩐지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유모차 부대를 대표해 참고인으로 출석한 주부에게 호통을 친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 외에 화제의 인물이나 사건이 드물다. 울화통은 터지지만 ‘씹는 맛으로’ 보던 국정감사, 그런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조용해 심심하기조차 할까.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1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는 그 답의 일부가 들어 있다. “언론은 국회를 호통치고 국회의원은 피감기관을 호통 치는 듯한 모습 - 그냥 호통에 호통이 꼬리 물기로 끝납니다. 그러니 국감이 허무개그 취급을 받을 수 밖에요. <돌발영상>의 노리개나 장시간 취재 속의 한 건 식의 전리품 노릇 밖에 더 하나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고 수도 없이 절망했지요.”

그렇다. YTN <돌발영상>이 사라졌다.

사랑받던 늦둥이는 어떻게 천덕꾸러기가 되었나

호통치는 의원들(왼쪽) 회의 중 잠든 의원들의 모습을 감각적인 편집으로 담아내 큰 호응을 얻었다.

<돌발영상>은 시작부터 ‘돌발’인 프로그램이었다. 2003년 3월, YTN 보도국의 노종면 기자는 <뉴스 퍼레이드>라는 낮 뉴스 프로그램으로 옮기며 PD 역할을 맡게 됐다. “신문의 만평과 같은 역할을 하는 코너를 만들어 보자”는 노 PD의 직감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첫 <돌발영상>은 1분 30초짜리 짤막한, 미처 이름도 붙지 않은 코너로 방송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강연 도중 잠든 비서실장과 경호실장, 두 문장짜리 TV 멘트를 하기 위해 수 차례 NG를 내는 민주당 부대변인, 김두관 행자부 장관을 가리켜 “그 촌놈, 이장하다...동네 이장하다 천신만고 끝에...”라고 표현한 한나라당 의원의 속내 등 <뉴스 데스크>에서는 볼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예리하게 잡아내며 <돌발영상>은 제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게다가 다른 채널의 경우 저녁 뉴스, 9시 뉴스, 마감 뉴스 등 정해진 시간에만 뉴스가 방송되기 때문에 내용과 형식의 정제를 거치며 쓸 말을 최소화해야 했던 데 비해 24시간 뉴스 채널인 YTN에서는 ‘정치 뉴스’ 외에도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농담’까지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도 <돌발영상>의 성장을 도왔다.

그리고 2004년 탄핵 정국에서 벌어졌던 국회의원들의 육탄전, 청문회나 국정 감사 때마다 반복되는 호통과 발뺌을 비롯해 현실 정치의 이면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었던 영상과 촌철살인의 자막은 <돌발영상>이 지난 5년간 서서히 단일 프로그램으로 독립하고 시간을 늘리며 YTN을 대표하는 콘텐츠로 자리잡을 수 있게 만들었다. 시청자들은 YTN 메인 뉴스의 제목은 몰라도 <돌발영상>은 알았고, 정치인이나 유명인들 역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치면 “이거 <돌발영상> 나가는 거 아니에요?”라며 의식했다. 새 앨범을 내놓은 가수들이 KBS <개그 콘서트>의 ‘왕비호’에게 이름 한 번 불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돌발영상>을 통해 얼굴을 알리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도 생겼다. 국정감사가 ‘<돌발영상>의 노리개’같아 절망했다던 전여옥 의원 역시 과거 ‘불륜 논평’을 비롯해 수많은 <돌발영상>의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니 그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도 상당했을 것이다. 마침내 지난 해 연말, <돌발영상>은 회사 발전에 큰 기여를 했음을 뜻하는 ‘YTN 대상’을 수상했고, 올 4월 개국한 YTN 라디오는 <돌발영상>을 본딴 <돌발오디오>같은 코너를 킬러 콘텐츠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돌발영상> 폐지, 결코 돌발 상황이 아니다

멜라민 파동을 대하는 대통령의 실소를 자아내는 모습을 담은 ‘멜라민’ 편.

그러나 <돌발영상>의 ‘돌발성’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외부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5일,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삼성 금품수수 인사 명단을 기자회견에서 공개하기 전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거론된 분들이 떡값을 받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아직 명단이 발표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박부터 한 이 대변인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엠바고를 걸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과정은 3월 7일 <돌발영상>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편을 통해 그대로 공개되며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지만 청와대 측의 수정 요청에 YTN 보도국은 해당 동영상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그러자 <돌발영상>의 팬들은 이미 다운받았던 영상을 유튜브를 비롯한 해외 사이트에 올리며 발빠르게 반발했고, 결국 1주일이 지난 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홈페이지에 복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청와대 춘추관 기자단이 YTN 취재기자들에게 사흘간 출입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어쩌면 첫 번째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7월 17일,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대선 캠프에서 언론 특보를 지낸 구본홍 씨가 용역업체 직원을 동원한 주주총회장에서 사장 선임안을 통과시키며 취임했다. YTN 노조는 즉시 ‘낙하산 사장의 출근저지 투쟁’을 시작했다. 9월 초, <돌발영상>의 임장혁 팀장이 이에 대한 징계성 인사 발령으로 <돌발영상>을 만들 수 있는 사내 시스템 아이디를 빼앗겼다. 이것은 두 번째 경고였을 것이다. 그러나 <돌발영상> 팀은 계속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투쟁을 이어갔다. 9월 29일 방송된 ‘멜라민’ 편 역시 그 어떤 기사나 뉴스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발 공업 물질인 멜라민이 검출된 것으로 보고된 과자의 포장을 들여다보던 이명박 대통령이 “멜라민이란 말이 없네?”라며 따져 묻는 장면은 그동안 대통령이 강조해 왔던 ‘소통’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하며 국민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돌발영상>이 세 번째로 선, 혹은 ‘성역’을 넘었다면 아마도 이 때가 아니었을까.

지금, 이곳에서 가장 공허한 외침, ‘국민의 방송’

‘블랙 코미디’ 편의 마지막 화면.
결국 지난 10월 6일, <돌발영상>의 임장혁 팀장이 업무 방해 및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이유로 정직 6개월을, 정유신 PD는 해임을 선고받으며 <돌발영상>은 사실상 문을 닫았다. 5년 동안 한국 시사 보도에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들고 국민들에게 정치와 그 이면의 현실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켜 온 프로그램 하나가 폐지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몇 달 사이 EBS <지식채널 e>의 제작진이 교체된 데 이어 <돌발영상>의 제작진이 해고당하는 상황과 각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이 이토록 쉽게 침범당하는 현실은 지금 방송 주권이 결코 방송을 만드는 이나 보는 이에게 있지 않음을, ‘국민의 방송’이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 구호인가를 똑똑히 보여 준다.

10월 8일 방송된 <돌발영상>의 마지막회는 국정감사에서 YTN 문제에 대해 “케이블 채널의 경영 문제”라며 외면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담았다. 제작진들은 “그동안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리며 빠른 시일 안에 다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이 회의 제목은 ‘블랙 코미디’ , 그러고 보니 그 동안 <돌발영상>은 한국에서 가장 잘 만든 블랙 코미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