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 도로경기’ 88등, 박성백 선수를 만나다 |
‘꼴찌’ 놀림받아 … 그래도 달린다 |
2008-08-18 오후 12:01:43 게재 |
경기도중 타이어 펑크, 일본선수단이 고쳐줘 … 비인기종목 설움 심각 “친구들이 ‘꼴찌, 뭐 하냐’며 장난 문자를 자꾸 보내서 괴로워요.”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 있는 경륜훈련원. 땀에 흠뻑 젖은 채 훈련을 마친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박성백(24·서울시청) 선수는 활기찬 모습으로 ‘엄살’을 부렸다. 박 선수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민국 남자선수로는 1988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사이클 도로부문에 출전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사실상 꼴찌의 불명예를 안고 지난 11일 선수단 가운데 가장 먼저 귀국했다. 박 선수는 지난 9일 낮 12시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을 출발, 시 외곽 23.8km의 코스를 7바퀴 도는 총 245.4km의 사이클 도로경기에 출전했다. 이날 경기에 참가한 선수는 모두 143명이다. 이 가운데 경기를 완주한 선수가 90명. 박성백 선수는 경기에서 88등을 했다. 기록은 7시간 3분 4초. 이날 경기에서 1위를 한 사무엘 산체스(30·스페인) 선수보다 40분가량 늦었다. 비록 꼴찌에서 세 번째로 들어왔지만 주변에서는 박 선수의 이날 완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변변한 장비도 지원인력도 없이 완주에 성공한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박 선수는 올림픽 출전이 결정되고 지난 6개월 동안 이번 경기에만 전념했다. 그는 “TV나 인터넷으로만 보던 꿈의 선수들과 겨루는 건데 대충 준비할 수가 없었다”며 “서울시청 팀 동료들이 많은 힘이 됐다”고 말했다. 팀 동료들은 지난 6월 열린 ‘투르드코리아’ 시합 후 8명 모두 휴가도 반납하고 그의 연습 파트너가 돼줬다. 일주일에 1000km 이상 달리는 강훈련이 이어지자 시합을 보름 앞두고 무릎이 상했다. 그래도 박 선수는 치료를 받으며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후회 없이 연습했다”고 했다. 그러나 시합이 다가올수록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느꼈다. 일반적으로 사이클 도로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는 마사지 전문가와 메카닉, 코치, 감독 등 지원인력만 4~5명과 한 조를 이룬다. 장거리 경주인만큼 보급, 자전거 공수, 컨디션 관리 등 다양한 지원이 필수다. 하지만 박 선수는 유일한 도로경기 출전자여서 감독 한명과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 “시합 직전에는 원래 ‘스타트 오일’이란 걸 발라 근육을 이완시켜야 해요. 하지만 마사지가 없어서 자전거 탄 지 12년 만에 처음으로 그냥 출발했어요.” 평소 시합 때라면 준비했을 여분의 자전거도 챙길 사람이 없어서 국내에 놓고 갔다고 한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은 시합을 하면서 그대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경기가 열리던 날 50km 지점에서 타이어가 펑크 났다. 그는 지원인력이 없어 평소 안면이 있던 일본인 스태프의 도움으로 자전거를 고쳤다. 그동안 경쟁자들은 계속 박 선수를 앞질러 나갔다. 다시 열심히 페달을 밟은 박 선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선수들이 모두 머리에 얼음주머니를 얹고 있는 모습을 봤다. 10km 언덕길을 오르기 위해서 머리에서 열이 나는 것을 식히려고 준비한 것이다. 그는 머리가 터질 듯한 고통을 겪으면서 시합을 계속했다. 경기중 각종 물품의 보급문제도 심각했다. 코스를 모두 7바퀴 도는 동안 다른 선수들은 반 바퀴마다 물을 공수 받아 마시고 물통은 바로 버렸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박 선수는 2바퀴마다 물통을 두 개씩 받아 실은 채 달려야 했다. 악재가 겹치면서 체력과 순위가 급격히 떨어지자 애초 50위권을 목표로 했던 박 선수는 목표를 ‘완주’로 수정해야 했다. “4바퀴 이후로는 어떻게 달렸는지 기억도 안 나요. 차선만 보고 간 것 같아요.” 박성백 선수와 그의 악전고투는 외국의 TV를 통해 생생히 중계됐다고 한다. “호주 사는 누나가 TV로 절 봤대요. ‘아시아 간판급 선수’ ‘출전 선수 중에 나이가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 ‘이번 기록은 좋지 않아도 앞으로 유망할 것’ ‘유럽 경험은 없다’ ‘여자친구가 말레이시아 승마선수’ 라는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해설을 해 주더래요.” 국내에서는 어느 방송에서도 박 선수 경기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사이클이 메달 딸 가능성이 낮아서 국내 방송이 챙기지 않은 것 같다”며 “아직 한국 사이클은 여러모로 선진국과 비교해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선수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태어나서 이렇게 중요한 시합에서, 이렇게 먼 거리를, 이렇게 힘들게 달려본 적이 없었다”며 “이번 경험을 토대로 다음 국제시합을 준비하면 한층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선수는 귀국하고 사흘이 지나고서 바로 훈련에 들어갔다. 오늘 26일 풍기 경륜훈련원에서 열리는 인천광역시장배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부모님은 한 달 정도 쉬라고 하세요. 하지만 지금이 저를 성장시키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4년 후를 생각해서라도 고삐를 늦춰선 안 되죠.” 그의 국가대표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영주 =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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