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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논평] 감사원의 KBS 정연주 사장 해임 요구에 대해

강산21 2008. 8. 6. 10:59

지난 5월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을 위해 'KBS 청부감사'에 나섰던 감사원이 5일 '맞춤형 감사 결과'를 내놨다. ‘부실경영’과 ‘인사권 남용’ 등을 이유로 정연주 KBS 사장의 해임을 KBS 이사회에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시나리오'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결과다. 

 

감사원의 '해임권고'는 말 그대로 초법적이다.

 

감사원은 감사원법 제32조 8항을 정 사장 해임요구의 근거로 들었다. 해당 조항은 "감사원은 임원이나 직원의 비위가 현저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그 임용권자 또는 임용제청권자에게 해임요구를 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방송법은 KBS 사장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과 이사회의 '임명제청권'만 규정하고 있다. 공영방송 사장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면직'에 관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감사원은 해임권한도 없는 KBS 이사회에 정 사장을 해임하라고 초법적인 요구를 한 꼴이다.

 

설령 KBS 이사회가 사장 면직에 관한 권한이 있다 해도 감사원이 내놓은 감사 결과만으로 정 사장의 해임을 요구할 수 없다. 감사원은 정 사장을 해임해야 할 '현저한 비위'를 제시하지 못했다. 부실경영과 인사권 남용 등을 내세웠지만 이를 '현저한 비위'라며 공영방송 사장을 쫓아낸다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정 사장의 대표적인 비위로 지적된 적자경영만 해도 그렇다. 정 사장 체제의 KBS가 엄청난 적자경영을 했다는 한나라당, 뉴라이트, 수구보수언론들의 주장은 해괴한 셈법에 따른 근거 없는 것임이 드러났다.

 

감사원도 감사결과 발표문에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KBS가 1172억의 누적사업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부분에 각주를 달았다. 이 기간 "KBS의 누적적자는 99억원이나 법인세 환급액 및 추납액 등 사업 외 손익을 제외한 누적사업손실은 1172억"이라는 것이다. 적자경영을 부풀리기 위해 "사업 외 손익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계산했다는 말이다.

 

감사위원들이 정권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 수 있다. 감사위원으로서의 임무를 저버리고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에 부역한 이들의 결정에 대해 국민의 심판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한편, 감사원 발표 직후 KBS 이사회 유재천 이사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감사원의 요구를 수용할지 여부를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이사회가 사장을 직접 해임할 수는 없으니 감사원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해임권고 형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의 초법적인 공영방송 사장 '해임요구'를 초법적인 '해임권고'로 수용하겠다는 뜻이다.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사장을 쫓아내려 하다보니 '초법'이 또 다른 '초법'을 부르는 꼴이다.

 

이사회 날짜까지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하는 8일로 맞춘 것을 보면, 국민의 눈과 귀를 올림픽으로 돌려놓고 '해임권고'를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만약 '친한나라당’ 이사들이 초법적인 '해임권고'를 밀어붙인다면 국민들은 이들을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행동대'로 규정하고 끝까지 심판할 것이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임을 다시 한 번 밝힌다. 이명박 정부는 초법적인 방송장악 시도가 정권의 운명을 가름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KBS 본관. 사진은 지난 7월22일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네티즌탄압 중단촉구 제사회단체 기자회견 장면.
ⓒ 권우성
 공영방송 사수

 

KBS는 감사원의 특별감사결과 발표 직후인 5일 저녁 7시 30분경 긴급 성명서를 내고 "지적사항을 수긍하기 어렵다"며 "부당한 감사 결과에 대해서는 재심의 요구와 법적 대응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감사원이 정연주 KBS 사장의 '부실경영'을 이유로 해임을 요구한 데 대해 "부당한 요구이고 위법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연주 사장은 오는 6일 오후 2시 KBS본관 제1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특감 결과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밝힐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정 사장의 변호인단도 참석해 앞으로의 법적 대응 방안에 대해서도 입장표명을 할 계획이다.

 

"정연주 사장 해임 요구는 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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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KBS 사장.
ⓒ 권우성
 정연주

KBS는 감사원의 정 사장 해임 요구가 "방송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심각히 저해하는 위법적 행위"라며 강하게 성토했다.

 

KBS는 "KBS사장 해임 문제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직결된다"며 "대통령은 해임권이 없으므로 감사원이 정 사장에 대한 해임을 요구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또 "해임 여부는 감사원법이 아니라 방송법에 따라 판단해야 하며, 감사원이 발표한 어떠한 사항도 방송법상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방송법 제50조 제2항에서는 대통령의 사장 '임명권'만을 규정하고 있다"며 "공영방송사의 사장이 정권에 휘둘리지 않고 정치적인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입법자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해임 사유는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며 "단순히 경영성과가 나쁘다는 것으로는 그 비위가 현저하다고 볼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감사원은 ▲지출 예산의 과다 편성으로 경영악화 초래 ▲법인세 등 환급소송 졸속·부당 처리 ▲상위직 유휴인력 과다 운영 등을 지적했는데, KBS는 "수긍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보였다. 논리적 근거가 미약하거나 단편적 사례를 일반화하는 경우로 상식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

 

'04~07년 만성적인 적자구조 고착화' 지적에 대해서는 "정 사장 재임기간인 03~07년 5년 동안 오히려 189억원의 누적 흑자가 발생했다"며 "'법인세 등 환급소송'을 조정을 통해 해결한 것도 소송의 장기화를 막기 위한 경영상의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반박했다.

 

"최근 KBS 전방위 압박, 언론기관 존립근거 크게 위협해"

 

감사결과 발표 시기에 대해서도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며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감사위원회는 원래 목요일에 예정되어 있었으나, 급작스럽게 오늘로 앞당겨졌다. KBS는 어제야 감사원의 추가 질문서에 대한 최종 답변서를 제출했고, 오늘 감사원이 결과를 발표했다면 KBS가 제출한 답변서의 검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04년 감사의 경우 최종답변서 제출 25일 만에 처분 시행이 이루어졌는데, 이번에는 하루 만에 결과가 발표됐다는 얘기다. 이렇게 감사원이 결과 발표 시기를 화급하게 앞당긴 것은 정연주 사장 퇴진에 대한 정치적 압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어 KBS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는 언론기관의 존립근거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상황인식"이라며 "우려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KBS의 주인이 시청자임을 가슴에 새겨, 공영방송의 책무를 더욱 성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