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실그대로

[이근 칼럼] 순진한 외교, 무능한 외교

강산21 2008. 7. 15. 09:27

순진한 외교, 무능한 외교
  [이근 칼럼] '독도 화살을 왜 내게 쏘냐'고 MB가 묻는다면
  2008-07-14 오후 7:18:01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면 대개 새로운 정권은 이전 정권의 정책을 상당 부분 부정하게 된다. 물론 그 부정의 정도는 정권마다 차이가 있는데, 극단적인 경우에는 전면 부정으로 시작하는 정부도 상당히 있다. 클린턴 행정부가 한 것이라면 무조건 부정하는 'ABC(Anything But Clinton)' 기조를 채택했던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이전 정부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전 정부의 정책을 사사건건 다 부정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리 바람직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정책이라는 것이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어서 수립된 것이고, 그중 상당수가 특별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기 때문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 부정하면서 출발한 부시 행정부가 결국 대화와 협상을 강조했던 클린턴 행정부와 유사한 방향으로 유턴한 것은 북한을 상대하는 대안의 범위(range)가 그리 넓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는 이전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결코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정부의 정책보다 특별히 뛰어난 대안이 없이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면 이전 정부의 정책과 유사한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퇴로(exit)를 차단하고 별다른 실효성 없는 정책을 추진하게 되기 때문에 몇 가지 큰 부작용을 가져오게 된다.
  
  하나는 특별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상당 기간 문제 해결 없이 뭉개면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게 되는 부작용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과정에서 정책에 대한 신뢰도와 국민의 지지가 급속하게 추락하게 되는 부작용이다. 또한 퇴로를 차단하고 출발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문제가 안 풀릴 경우 결국 퇴로를 만드는 자기 부정을 해야,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상당한 궤변과 자기 합리화의 노력을 해야 하는 부작용도 생겨난다.
  
  부시 행정부도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몇 년을 뭉개다가 결국 국내외의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고, 클린턴 행정부와 유사한 방향으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6자회담, 핵 불능화 (disablement) 같이 클린턴 행정부 때에는 없었던 새로운 형식과 용어를 만들어 내게 되지만 큰 틀에서는 클린턴 행정부와 유사한 방향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유턴을 더욱 합리화하고 세련시키기 위해서 리비아 핵문제를 처리했던 방식을 개념화한 '리비아 모델'과 같이 'NK(북한) 모델'이라는 개념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의 전환과 발전은 결국은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소요된 시간과 물적·정신적 낭비 및 시행착오를 따져 보면 너무나도 아쉽고 답답한 것이다. 결국 특별히 뛰어난 대안 없이 이전 정부의 정책을 전면 부정하면서 출발한 정책 기조가 어떠한 부작용을 낳는지 비싼 수업료를 들여서 배운 셈이다.
  
  이명박 정부는 외교정책 전반에 있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같은 잘못된 전철을 밟게 되었다. 이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을 전면 부정하면서 출발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만일의 경우 노무현 정부와 유사하게 정책을 전환할 수 있는 퇴로를 만들어 놓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전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에는 현실을 반영한 불가피한 정책도 많았기 때문에, 이를 전면 부정하게 되면 우방과 이익의 갈등이 생길 때 특별히 노무현 정부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한일관계, 남북관계, 그리고 한미관계에서는 벌써부터 부작용이 터져 나오고 있다.
  
▲ '독도 외교 재앙'의 씨를 뿌렸던 4월 한일정상회담 ⓒ연합뉴스

  ■ 한일관계 : "순진했다"
  
  한일관계와 관련한 이명박 정부의 기조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노무현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노무현 정부의 대일정책이 너무나도 이념적이고 국내 선거용 및 지지율 제고용이었다는 시각에서 출발한 이명박 정부는 4월 방일과 함께 한일 역사 문제를 거론치 않겠다는 '실용적인' 제안을 한다. 그러면서 일본도 역사 문제가 발목을 잡지 않도록 잘 처리해 주기를 당부하며 같이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였다.
  
  외교는 상대와의 전략적 상호작용인데, 상대가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하든 상관없이 우리는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만을 만들어 가겠다는 순진한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이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반응은 차치하더라도, 냉엄한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우리가 안 건드리면 상대가 우리에게 무한히 잘 해 줄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을 잔뼈가 굵은 정부 안팎의 외교전문가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여하튼 국제정치는 똑같은 믿음으로 뭉쳐있는 기독교 신자들간의 관계처럼 이상적으로만 풀리지 않는다. 결국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새 중학교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사회과 해설서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정책으로 돌아갈 퇴로(exit)를 닫아버리고 대일정책을 구상했기 때문에 일본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어져 버렸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를 강하게 비난하면 결국 노무현 정부와 같은 대일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더구나 사안이 국가의 영토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 반발을 무슨 궤변이나 괴담으로 치부할 수도 없게 됐다. 결국 조용히 막후에서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외교 사절을 보내고 외교 채널을 가동해 보겠지만 과거사 카드를 버린, 그리고 전 국민을 배후에 두지 못한 정부가 일본에 쓸 수 있는 압력 수단은 별로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다. 물론 민족주의적인 반일 감정이 국민 반응의 기저에 깔려있겠지만 국민들은 직접적인 반일 감정의 표출보다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난으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일본은 이걸 노렸을 수도 있다.) 도대체 정부가 얼마나 한심하기에, 얼마나 우습게 보였기에 한일정상회담을 한 지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독도 영유권이 일본 교과서 학습지침 해설서에까지 실리게 되느냐는 반응이다. 일본에 대해 전략적으로 대응할 카드를 버린 정부가 과연 어느 나라 정부냐는 비난이다.
  
  이것은 과거 정부를 전면 부정하면서 퇴로를 차단한 이명박 정부의 운명이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자극할 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특별히 더 나은 대안도 없으면서 퇴로를 차단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결과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더 빠지고, 일본에 대해 노무현 정부만큼 강하게 항의하지도 못하면서, 일본의 조치를 막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러다 야금야금 한일관계가 일본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외교는 그저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자"라는 다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가 실린 원칙과 전략이 있어야 하며, 그것은 과거 정부의 정책을 전면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나올 수 없다.
  
  ■ 남북관계 : "퇴로가 없다"
  
  이명박 정부가 보수 지지층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바로 남북관계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에는 특별히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어려운 사안이다. 왜냐하면 6자회담이 이미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북미관계 개선은 보수 논객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로세스들은 모두 노무현 정부 시절의 대북정책과 연동되어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 부정하게 되면 6자회담과 북미간의 협상마저 부정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독자적인 대북정책으로 핵문제와 한반도의 평화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더더욱 없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과 같이 북한과의 공존의 여지를 남겨두는 정책을 어느 정도 구상했지만 실제로는 북한과의 관계 악화를 괘념하지 않는다는 무대응의 대북정책을 추구해 왔다. 마치 북한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초기 부시 행정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는 사실상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이고, 국내적으로는 보수세력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한일관계와 마찬가지로 북한과의 관계 역시 전략적 상호작용이 있기 때문에 북한은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 전환에 비우호적으로 대응하고, 그 결과 남북관계는 국제정세와 정반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11일 국회에서 대통령이 개원연설을 하는 날까지 이러한 상황을 되돌리려는 정책의 변화를 추진하지 않았다. 따라서 남북관계에 무슨 일이 터질 때 북한과 협력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퇴로를 확보하지 못했다. 즉 노무현 정부 수준의 남북간 채널과 협력관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바로 이 때 금강산 피격 사건이라는 불상사가 터져 버렸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나쁜 사건이었다. 국제정세의 변화에 맞추어 이제 막 대북정책의 퇴로를 만들려고 대통령이 연설을 하는 날 이런 사건이 벌어졌으니 퇴로를 무작정 만들 수도 없게 되었고, 그렇다고 주변 정세의 움직임과 달리 마냥 강경책을 펴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더군다나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부정하면서 남북관계의 악화를 방치시켰기 때문에 진상조사나 대북 접촉을 위한 제대로 된 채널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 종결되지 않은 정전협정국에 민간인 관광객을 그렇게 많이 보내면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정부간 연락채널조차 확보하지 않았다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설프게 부정해 버린 정부의 무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그것을 부정했지만 그래도 초강경 매파 정책은 아니다. 그래서 정책 전환의 여지는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남북관계 역시 전략적 상호작용의 관계이기 때문에 초기에 이전 정부의 남북관계를 부정하고 출발한 이명박 정부에게 북한은 상당기간 퇴로를 만들어 주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보수세력 역시 퇴로를 만드는 것에 상당한 비난을 가할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그 가운데서 우왕좌왕하다가 남북관계의 비상 국면이 생길 때마다 미국이나 중국에 날아가서 제3자의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국내 실정과 겹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역시 계속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주변 상황의 변화와 전략적 상호작용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없이 이전 정부의 정책을 전면 부정하면서 출발한 결과가 지금 이렇게 되돌아오고 있다. 그렇다고 이 국면을 헤쳐 나갈 창조적인 대안을 현 정부가 발견해 낼 것 같지도 않다.
  
▲ 아직 끝나지 않은 '쇠고기 악몽'의 와중에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난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 한미관계 : "미국이 아니라 MB가 문제"
  
  이명박 정부의 대미정책 역시 노무현 정부의 대미 정책에 대한 전면적 부정에서 출발한다. 즉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의 신뢰를 역대 최저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복원과 강화를 위해 최대한 경주한다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 역시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없이 퇴로만 막는 것이었기 때문에 역시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된다.
  
  한미관계를 복원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한다는 의미는 이전 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만 사항을 다 들어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어느 정도 들어주고, 어느 정도 거부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원칙과 비전이 천명되지 않고 무조건 한미관계를 복원하고 동맹을 강화한다고 말하면 우리가 들어줄 수 없을 요구를 미국이 할 때 퇴로를 찾기 어렵다.
  
  예를 들어 파병의 요청이 있으면 바로 들어줘야 하고, 쇠고기 전면 개방의 요청이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한미일 삼각 협력관계를 방해하니까 일본을 자극하지 말라고 하면 자극하지 말아야 하며, 미사일 방어망(MD)에 참여하라고 하면 참여해야 한다.
  
  이러한 사안을 세밀하게 따지고 강하게 협상하면 미국에서 불만을 쏟아내고 그것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 결국 한미동맹의 복원과 강화라는 대미정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꼴이 된다. 결국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 같이 미국에 너무 '터프'(tough)하게 하지 말자고 정부가 미국 입장을 대변하게 되고, 미국의 입장을 한국 정부가 판촉해주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은 물을 것이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고 어느 나라의 정부인지. 역시 국민의 지지도가 바닥을 벗어나기 어렵다.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국민들의 반응 역시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반응과 유사하다. 국민은 미국에 대해 직접적인 반미감정을 보이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난에 화살을 보낸다. 정부가 미국에 얼마나 우습게 보였기에 이 모양인가, 정부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을 위해서 협상을 하는가, 정부는 왜 미국 입장만 대변하느냐는 것이다. 다시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한미관계가 강화되기는커녕 복원도 안 되고 있다. 그렇다고 돌아갈 퇴로도 찾지 못한다. 만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미국에서 부결되거나 재협상을 요구해 올 때 어떤 퇴로를 만들 것인지 궁금하다.
  
  결론은 이렇다. 이전 정부보다 더 나은 정책적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이전 정권의 정책을 전면 부정하고 출발하게 되면 외교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 새로운 옵션을 찾을 수 없다. 아무리 우방국이라 해도 국익은 사안에 따라 충돌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국이 알아서 잘 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은 금물이다.
  
  외교정책뿐만 아니라 경제정책, 문화·언론 정책, 교육정책 등 이전 정부의 정책을 전면 부정하고 출발한 이 정부에는 퇴로가 없기 때문에 이전 정부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지 못하면 바로 지지율의 급락과 신뢰붕괴로 이어진다.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부보다 더 나은 대안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전 정부의 정책을 전면 부정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원인은 순전히 무책임한 보수언론이 만들어 낸 환상과 착시현상이다.
  
  이 정부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시점은 보수세력이 그러한 환상과 착시현상에서 빠져나와 자각(awakening)하고 스스로를 재점검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환상과 착시에 중독되어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
   
 
  이근/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