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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경질 후, 강만수 경제팀은 사실상 레임덕"

강산21 2008. 7. 14. 10:35
"대리경질 후, 강만수 경제팀은 사실상 레임덕"
[현장] 이명박의 '강만수 구하기' 보는 과천 공무원들의 시각
김종철 (jcstar21)
  
경기도 과천시 정부종합청사.
ⓒ 권우성

 

"어떻게 보면 레임덕(오리의 기우뚱거리는 모습을 정권 누수 현상에 빗댄 말) 아냐? 적어도 경제 수장으로서는…."

 

소주잔을 한 입에 털어 놓고, 김아무개(40) 사무관이 말했다. 옆에 있던 행정고시 동기인 정아무개(41) 사무관이 "강만수 장관도 참 힘들겠다"는 말이 끝나자 마자,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지난 10일 저녁 경기도 과천 정부청사 주변 실내포장마차에서 이들을 만났다. 저녁 7시께부터 식사와 소주가 곁들인 취중대화는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뒤늦게 이들의 고향 선후배 2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 4명은 기획재정부를 포함해 모두 경제관련 부처에서 근무하고 있다.

 

중앙부처에서만 대체로 10년 전후로 일해온 이들은 각 부처의 중간 관리자급 위치다. '오랜만에 얼굴봤다'는 이들은 소주잔이 몇 순배 돌자, 쇠고기 사태와 촛불, 물가폭등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서슴없이 내비쳤다.

 

처음엔 최근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IMF(국제통화기금) 시즌2'라는 그림이 화제였다. 박아무개(38) 사무관은 웃으면서 "IMF 때와 지금 상황을 그림으로 비교해 놓은 것을 봤는데, 정말 사람들이 넘어가게 생겼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씨는 "우리도 나름대로 인터넷 세대라고 하지만, 요즘 네티즌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맞장구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떻게 보면 그런 그림을 보면서 (현 정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라도 느낄 수 있지만, 해당 공무원들 입장에선 좀 당혹스럽기도 하고, 그런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곧바로 "사실 나도 그런 것(카타르시스)을 느끼긴 했지"라고 말하자, 곧 술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지었다.

 

"상사 잘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맞아..."

 

기자가 이어 '요즘 (기획)재정부 분위기는 어떠냐'고 A 사무관에게 물었다. 그는 웃으면서 "기사화 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을 먼저 내걸었다. 그러자, 고향 친구라는 정씨가 "아직도 기자를 믿는 사람이 있네"라고 거들었지만, A 사무관은 자신의 이름이나 성(姓)조차도 언급되기를 꺼렸다.

 

재정부 내부 분위기는 오히려 평온하다고 했다. 요즘 각종 경제지표가 너무 안 좋아 인사문제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었다. 최중경 차관 경질 소식이 전해진 당일에는 약간 말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김 사무관이 말을 이었다. 조심스러운 A씨보다 직설적이었다.

 

"인사났던 날, 퇴근길에 부서 사람들과 맥주 한잔했는데 첫 반응이 '상사 복(福), 윗사람을 잘 만나야한다'는 거였어. 그 사람(최 전 차관) 정도 위치에 있으면, 청와대 말대로 자기가 알아서 했겠지만, 최종 책임을 묻는 것은 다른 문제 아냐. 이렇게 되면, 누가 윗사람 모시고 일한다고 하겠냐고…."

 

A씨는 옆에서 고개만 끄덕였다. A씨는 "최 전 차관이 나름대로 후배들한테 인기도 있었다"면서 "약간 보스 기질도 있고, 이번에 떠나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곧 "하지만 정책을 펼 때 자기 색깔이 강해서, 들리는 이야기로는 밖에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기자가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추진중인 정책 때문에 강 장관을 내치기가 어려웠다'고 건네자, 이들은 일부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2일 오후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열린 경제부처 합동 기자회견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지호
강만수
 

"시장 신뢰 잃은 강 장관 살리려다가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정 사무관이 말을 받았다.

 

"우리가 두 달동안 미 쇠고기 때문에 얼마나 큰 비용을 치렀어? 물론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핵심은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를 잃은 것 아냐. 강만수 장관도 경제쪽에서 보면, 이미 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사람이고, 정치권에서도 저렇게 난리를 치면 제대로 정책수행을 할수 있겠어?"

 

정 사무관은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지금 전부 경제 어려우니까, 국민에게 에너지 아끼고, 동참하자고 하지 않나"라며 "국민들은 물가폭등 책임자를 그대로 놔두고, 어떻게 고통을 나누라고 하느냐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박 사무관은 "국회가 열리면 더 걱정된다"면서 "쇠고기 문제는 우리 소관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하지만, 가을에 있을 국정감사 때 경제정책을 두고 (야당에서) 엄청 공격해 올 텐데…"라고 덧붙였다.

 

그가 "하루이틀이 아니긴 하지만, 중간 아래 공무원들만 또 죽어나게 생겼다"면서 "위에서 일은 잔뜩 벌여놓고, 아래에서 뒤치닥거리 하느라 날밤 새는 일은 언제나 없어질까"라고 묻자, 옆에 있던 김 사무관은 "공무원 그만하고, 자기 사업 하면 된다"고 거들기도 했다.

 

어느새 시계 바늘은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요즘 환율 문제 등 외환위기가 다시 올지 모른다고 한다'고 묻자, 이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술자리에서 가장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김 사무관도 "정부가 말하는 것이 엄살이 아니다"면서 "정말 앞으로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더이상 우리 경제는 수출이 내수를 끌던 시대가 아니다"면서 "너무 747 공약에 매달리지 말고, 좀 길게 보면서 4% 성장이라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제 강 장관 스스로 결단해야"

 

적당히 취기(醉氣)가 오른 정 사무관은 강만수 장관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는, 대통령이 차관을 경질한다고 했을 때 자신도 물러나겠다는 고집(?)을 부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정 사무관은 "쇠고기 사태 책임으로 정운천 장관을 자르니까, 협상대표였던 민동석 차관보가 스스로 사직까지 했다"면서 "원래 프로세스가 그렇게 가야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촛불이 조금 잦아질만 하니까, 강 장관 거취문제를 가지고 국회와 국민들 사이에서 다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게 됐다"면서 "이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손해이고, 강 장관 본인에게도 안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분들도 동의하시냐'고 기자가 묻자,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럴 수 있을까?", "술이나 먹자" 등의 말로 화제를 돌리기도 했다.

 

강 장관의 거취문제는 쇠고기 사태로 촉발된 촛불 정국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미 시장에선 강만수 장관에 대한 성적표를 내놨다. 진보와 보수 양쪽 경제학자, 노동자와 기업인에게까지도 강 장관은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당분간 신뢰가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 장관 스스로 말한대로 한국경제는 도처에 빨간불만 켜져있고, 위기국면이다. 그 위기를 좌초한 책임을 갖고 있는 강 장관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그리 많지 않다. 그와 한솥밥을 먹는 과천 공무원들까지도 그렇다.

2008.07.12 10:40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