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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초등생 살해범 '재산 빼돌리기' 유족은 속수무책

강산21 2008. 6. 29. 17:21

女초등생 살해범 '재산 빼돌리기' 유족은 속수무책

경찰 늑장대처 책임도 인정안돼…오히려 소송비용만 부담

[ 2008-06-29 09:00:00 ]

CBS사회부 심훈 기자

용산 여(女)초등생 성추행살해범이 재산을 빼돌려 유족에 대한 보상을 회피하고 있지만, 법원은 이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미 처분된 재산을 뒤늦게 환수하려 했다가는 오히려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 살해범, 집 팔아 현금화한 뒤 “나 몰라라”

서울중앙지법 제23민사부 이준호 재판장은, 납치 살해된 10살 A양의 부모가 “범인이 경찰에 붙잡힌 뒤 재산을 빼돌려 보상을 회피하고 있으니, 재산 처분 거래를 무효로 해달라”며 낸 소유권이전등기 취소 소송을 기각했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중인 김 모씨는 지난 2006년 2월 17일 A양(당시 10세)을 자신이 운영하는 용산구의 한 신발가게로 끌고 가 성폭행‧살해한 뒤, 자신의 아들과 함께 시신을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져가 불태웠다.

경찰은 범행 이틀 뒤 아들의 자백을 바탕으로 김 씨와 아들을 모두 검거했다.

하지만 김 씨가 검거된 지 일주일 만에, 부인 최 모씨는 김 씨의 유일한 재산인 주택을 한 신혼 부부에게 팔아 1억1천3백만원을 현금화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이에 A양의 부모는“주택 매매거래 자체를 무효로 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결국 기각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주택의 매매를 무효로 하게 되면, 신혼부부가 1억 1천만원의 손해를 모두 떠안아야 한다”며 “신혼부부가 김 씨의 범행 등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집을 산 만큼 거래 자체를 무효로 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 배상판결은 받았지만 무의미
 
재판부는 소유권이전 등기 취소소송을 기각하면서, 살해범 김 씨 부자에게는 "연대하여 A양의 유족에게 모두 2억 6천만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사실상 이들 부자가 가진 사실상 유일한 재산인 주택이 이미 팔려나간 마당에 배상 판결은 “판결”일 뿐, 현실적인 집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A양 부모를 대리해 소송을 맡은 박치범 변호사는 “살해범 김 씨는 ‘어차피’ 무기징역이라는 태도로 보상에 관심히 전혀 없다”며 “앞으로도 보상받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만일 범인의 부인 최 씨가 집 판 돈을 은행에 예치해 두었다면 압류가 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 숨겨두고‘다 써버렸다’고 주장하거나 잠적해 버리면 대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부인을 상대로 소송을 하려면, 집 판 돈이 어디 있는지 원고 측이 입증해야 하는데 현금을 찾아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경찰의 “늑장대처” 주장도 인정 안 돼

A양의 부모는 이번 소송을 통해, 범인 김 씨가 A양을 살해하기 전에도 같은 장소에서 성추행을 저질러 관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는데도, 경찰의 용의자 색출이 늦어 살해에 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건 접수 당시 당직자 외에 대부분 경찰이 퇴근을 해 긴밀한 수사정보 교류가 쉽지 않았고, 대도시에서 신속하게 인근의 성폭행 전과자들을 찾아내는 데는 현실적인 인적, 물적 한계가 있다”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끔찍한 범죄에 10살 난 딸을 잃은 부모는, 결국 범인에게서도 국가로부터도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소송 비용까지 떠 안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simhun@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