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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0년의 기록, 영화<아름다운 게토> 김재범 감독

강산21 2008. 6. 19. 08:43

원문바로가기 http://www.humanpos.kr/news/article.html?no=952

 

[인터뷰] 10년의 기록, 영화<아름다운 게토> 김재범 감독

1999년에 시작, 끝내 일본 조선인마을 우토로를 영상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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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조선인 마을 우토로를 다룬 다큐영화<아름다운 게토>의 김재범 감독 
지난주 일요일, 6.15 선언 발표 8돐이 되는 날 특별한 시사회가 있어 다녀왔다. 친일영화감독이야기를 다룬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과 일본 조선인마을인 우토로를 다룬 <아름다운 게토> 예고편이 아주 작은 책방에서 상영회를 가졌다.

이 영화들은 한 다큐감독에 의해서 만들었고 만들어지고 있었다. 영화상영이 있고 난 3일 후 다큐감독 김재범 감독을 만나봤다. 만나서 우토로마을의 최근 소식과 영화진행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 쿄토부 우토로 15번지, 2차 세계대전 당시 교토 군비행장 건설을 위해 노동자들이 모여서 살았던 마을이 우토로마을이다.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강제징용으로 끌려왔거나 일본인에게 속아 끌려온 조선인이었다. 일본패망 후 비행장 건설은 중단되었고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우토로마을을 빠져 나갔지만 조국으로 갈 비용이 없거나 친인척이 없는 사람들은 그 마을에 남아서 살고 있었다. 현재 마을사람들은 200여명 살고 있다고 한다.

김 감독은 한국정부와 일본정부는 20세기 전쟁에 무관심했고 우토로 마을을 방치했다는 마을사람의 이야기를 전했다. 일본이 전쟁에 패한 후 우토로마을은 닛산자동차계열인 닛산차체주식회사로 토지소유권이 넘어가고 다시 주민회 회장에게 주민회 회장에서 서일본식산으로 전매되었다. 서일본식산은 전 주민에게 퇴거 명령을 하고 60년을 살아온 주민들은 재판에서 졌다. 주민들은 다시 항소를 하였지만 기각되었다.

전쟁 후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에게 버림받아 온 우토로 마을 사람들, 그 마을사람들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를 담았다. 마지막 촬영을 앞둔 김 감독은 이번 달 말에 다시 우토로마을 찾는데 인터뷰 중 많이 설레기도 했다.
뒤늦게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을 다행이라고 김 감독은 말한다. 자신은 우토로마을 사람이 다 되었고 말하는 김재범 감독. 영화촬영이 끝이 나도 마을주민들과 끈을 놓고 싶지 않다고 한다. 무사히 영화촬영을 끝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다음은 김재범 감독과의 인터뷰


우토로에 관한 기사를 찾아 봤는데 많이 슬펐다. 언제부터 우토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1997년 MBC 'PD수첩'에서 일본 조선인 마을 우토로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TV를 보는데 많은 충격이 있었고,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다큐감독들이 관심이 있었다. 그 후, 한계레신문, 월간 ‘말’등에서 우토로에 대한 기사를 봤고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정을 했다.

현재 우토로 마을은 어떤 상태에 있는가

60여 년 전 우토로 마을을 1600가량이 모여 살았다. 해방 후에 조국으로 오거나 다른 곳으로 떠난 분들이 많았고, 올해 초에 200 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한다. 올해 들어 2-3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고 , 4세대로 태어난 아이도 있다고 들었다. 작년에 30억 지원이 확정 되었지만 아직 주민들 손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정식지원은 안 되고 있어 주민들이 불안해한다. 석 달 전에 2세대 한 분이 자살을 했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생계문제가 아닌가 싶다.

우토로 마을 분쟁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우토로 마을이 살기 좋은 마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아름다운 게토>라고 정했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20세기 전쟁에 무관심했고 우토로 마을을 방치했다. 우로로 마을뿐만 아니라 사할린도 같은 문제가 아니었던가. 같은 민족인데 우토로 사람들의 목소리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것이 화가 났다. 다행이 1988년도 마을에 상수도가 들어 왔다. 아직 하수시설은 없지만 상수도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상수도가 있기 전에 우로로 마을 사람들은 세균이 많은 우물물로 밥을 해먹었다. 한국에 올림픽이 열려 세계인이 들떠 있을 때 일본사람이 도움으로 즉 학교 선생님, 구청직원, 주부들의 힘을 모아 상수도를 해결해 준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토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고 분쟁은 어떻게 하던지 해결되리라고 느꼈다.

정부는 지난해 우토로 마을에 30억 지원 결정을 했다고 했는데, 현재 정부와 일본 정부는 우토로 마을에 대하여 어떤 진행을 하고 있는가.

작년 국회에서 30억 지원이 확정 되고 일본 우지시청에서 현지 시찰을 했다. 현지 시찰은 몇 십 년 만에 실행한 것이고, 환경실태조사만 했다. 일본정부차원에서 정비사업을 할 것 같고, 마을에서도 청사진을 낸 상태다. 또한 정부와 정부끼리 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식민지시대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본다. 한국정부에서 해외지원은 무지원 원칙이었다. 이번 우토로 마을 지원은 다행이다 싶었고, 사할린 등 지원 문제도 생길 것 같다.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하자. 현재 영화 진행 상태는 어느 정도인가.

1999년에 영화촬영이 시작되었다. 작년까지 8번 촬영을 했고 한번 촬영기간은 5일에서 1주일 정도였다. 가능하면 1년에 한 번은 가서 촬영을 했는데 , 5일 1주일, 가능하면 1년에 한 번은 갔으나 3년 정도는 촬영비가 마련되지 않아 가지 못했다. 현재 영화는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있다.

9년간 영화를 찍었다면 기간이 오래된 것은 아닌가.

일부러 시간을 끈 것은 아니었다. 영화를 찍는 도중에 재개발 문제도 나왔고 정부지원을 할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우토로 마을의 끝을 보고 싶었다. 정부지원이 없었다면 재개발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 아닌가. 정부지원이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이제는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부지원 결정 소식을 듣고 마지막으로 촬영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제작기간이 길다보면 제작기 만만치 않는데 제작비는 어떻게 만들었나.

공식지원은 없었다. 영화진흥공사 혹은 독립영화협회 등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지원을 받으면 프로젝트 진행 후 1년 이내 완성해야 한다. 사유서를 제출하면 1년 연장을 하는데, 이번 다큐는 1-2년으로 끝낼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자비로 제작비를 만들었다. 빚도 있다.

감독으로써 우토로에 대하여 무엇을 담고 싶은 것인가.

처음에는 우토로마을 실태에 전달하고 싶었고, 마을을 지원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었다. 3-4년 영화를 찍으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지원토대가 없어 어떻게 하던지 도움이 되고자 했는데, 그런 동정심은 벗어났다. 땅 문제만 해결하고 하수시설만 갖춘다면 참으로 살기 좋은 마을이다. 나도 이 마을 사람이 다 되었다. 마을 사람들과 친하다.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마을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것을 담아내고 싶다.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시간과 돈이 아니겠는가. 영화를 찍으면서 1세대 사망자 늘어나고, 직장 잡아서 떠난 분도 있다. 이 사람들과 같이 영화를 보고 싶다.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이것이 가장 힘들었다. 마을회관에서 같이 영화를 꼭 봐야한다.

언제 영화 촬영이 끝나고, 상영은 언제 하는가.

이번 달 말에 마지막 촬영차 마을에 간다. 마지막 촬영을 하고 나면 1-2개월 편집을 해서 가을에 영화 상영은 가능할 것이다. 영화가 완성되면 마을사람들과 시사회를 할 것인데 8월 15일을 희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