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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타오른 촛불도 아름다웠다.

강산21 2008. 6. 18. 13:00

울산에서 타오른 촛불도 아름다웠다.

[김영애의 울산이야기] 국민이 내어준 권력, 국민이 거둬들이려 한다.

김영애, o2miniha@hanmail.net

등록일: 2008-06-18 오후 12:54:29

 
▲ 블로그에 올라온 울산의 촛불문화제 모습 

"열자나 한 자나 들고나 보니 ~놈들 개~"

개사한 품바타령을 모두 웃으며 조금은 겸연적어하며 불렀다. 화를 내지 않고 욕하는 이런 세련된 방법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고전을 강의하시는 교수님은 해방이후부터 근․현대사를 시로 풀어 외세의 간섭과 민중의 저항을 일깨워주셨고, 학생들의 생기발랄함은 막 모내기를 끝낸 들판의 푸른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정형화되지 않은 생각의 자유로움과 박제화 되지 않은 논리의 상쾌함에 어른들은 감동했다. 동시에 부끄러워했다.

어느 젊은이는 오늘날 대의제를 실현할 모태가 되는 정당이 제 구실을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데리고 온 자식 취급을 당하고 있는 안타까운 꼴을 꼬집었다. 자업자득이라면서.

마침 울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어느 정당의 시․군․구 의원들이 팔보일배를 드리고 있는 때라서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귀담아들을 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부모세대에 법대로 하자라는 말이 쓰였다.

 
▲ 블로그에 올라온 울산의 6.10 촛불대행진 모습 
법이 최소한의 규범이라는 개념보다는 사람사이의 갈등을 판결내기 어려울 때 다분히 위협적으로 법을 들먹이는 것이었다. 그만큼 권위적인 것이 법이었다. 동시에 서민들의 실생활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받던 법이기도 했다.

그랬던 법이 이제는 법전에서 튀어나와 우리가 숨 쉬는 공기를 마구 휘젓고 다닌다. 위협적인 공권력을 살짝 비틀어 뛰어넘기도 하고, 공권력의 실행자를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이로 대접하여 법을 지키라는 주차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왜? 이유는 명쾌하다. 법 앞에는 다들 평등해야하니까.

울산에서 이루어진 난장토론 중 나온 인상 깊은 말들이다.
“촛불문화제의 주도 세력은 없다. 단지 시민들을 서포트하기 위해 진행요원들이 있을 뿐이다.”

또한, 주목받을 만한 대규모 단위의 단체는 “튀어나오면 배후로 지목받고, 파업하면 수구언론의 역공을 받을까 정말 조심스런 대목이다”는 고민을 토로한다.

“촛불문화제 참가자의 수에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 광장은 여기만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집에서 각자의 삶터에서 펼쳐지고 있다. 지금은 앞으로 우리가 대응해야 될, 제법 끈기를 요구하는 일을 맞이하기 위한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복숭아의 과육이 말랑하나 속에 있는 씨앗의 견고함을 서로 확인해버린 지금,
밝힌 초를 끌 일은 없을 것이며 내디딘 발걸음을 뒤로 돌려놓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형식적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뛰어넘을 마당이 펼쳐진 지금,
절차적 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된 이는 제 역할과 책임을 곱씹어야 한다.

머슴에게 일정기간 맡겨 생산력을 높이라고 준 연장을 망나니처럼 휘두르는 꼴을 지켜보고만 있을 주인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권력은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에게 있다. 국민이 내어준 권력을 국민이 거둬들이는 방법에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자발적’이라는 것도 있다. 내놓지 않고 못 견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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