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의원 한 명당 이력서가 500장?

강산21 2008. 6. 12. 15:02

의원 한 명당 이력서가 500장?

기사입력 2008-06-12 14:06 
 
[한겨레] 정두언 파동은 예측되었던 일이다. 어느 국회의원이 자기한테 들어온 이력서가 500장인데 한 장도 제대로 못 내밀었다고 통탄하는 것을 들었다.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 이런 불만이 고조되어 곧 무엇인가 터질 거라는 이야기가 분분했다. 국회의원 한 명당 이력서가 500장이라니 정두언 의원쯤 되면 500장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권력 독식의 지목을 받고 있는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도 자신이 갖고 있는 이력서가 천 장이 넘는다며 교회에 가기가 무서운 것은 자꾸 이력서를 내밀어서라고 했다.

대통령은 인사가 국민의 눈높이를 못 맞추었다고 시인했다. 그런데 박근혜 총리론이 나오는 것을 보면 대통령의 주변을 정국 수습에는 관심이 없고 당내 권력투쟁에만 목을 매는 무리들이 둘러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국회는 가동을 못하고 정부는 쇠고기 파동으로 식물상태에 빠져 있다. 박근혜 의원은 실무는 모르고 원칙만 말하는 사람이다. 박 의원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스타일이 그렇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두 명 갖는 꼴이다. 일은 누가 하겠는가. 박 의원 진영의 국회의원들이 갖고 있는 이력서가 조금 힘을 발하는 정도일 것이다.

공적인 기관이라면 인사엔 상식적인 원칙이 있다. 대통령이면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기 위해 더욱 유연성 있는 인사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

첫째, 자신의 의중을 잘 아는 충성스런 예스맨을 요직에 3분의 1 정도 갖고 있어야 일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 다음 3분의 1은 발탁 인사다. 관료조직에서 반, 조직 밖에서 반을 발탁하면 공무원 사회는 살아 움직인다. 조직 밖에서 사람을 찾으면 인맥의 외연도 넓히고 새로운 자기 사람을 만들 수 있다. 나머지 3분의 1은 상식적인 인사다. 될 만한 사람, 자연스레 올라올 사람을 쓰면 된다. ‘아니오’를 할 줄 모르고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예스맨들이 절반을 넘으면 주변의 반발과 국민의 반발을 사게 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나 내각뿐 아니라 공기업, 사회·경제·정치·문화 단체의 장과 그곳의 이사들, 위원들 모두를 예스맨으로만 채우려고 한다. 지금 혁명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싹쓸이를 하느라 국력을 소모하고 대통령의 힘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있다. 잠재적으로 내 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의 반감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뽑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잘못하길 바란 적은 꿈에도 없다. 주변에서 1970년대식의 박정희 파시즘적 환경에서 잔뼈가 굵은 이명박 대통령의 본질을 의심할 때도 나는 ‘잘할 거야, 대운하만 추진 안 하면 결정적인 잘못은 하지 않는 거지, 귀가 열려 있을 거야’ 하고 다독거렸다. 나의 이런 기대는 참담하게 무너졌다. 그렇다고 ‘이명박 아웃’을 말하고 박근혜 의원을 ‘총알받이’로 쓰건 말건 잘못하길 바랄 수는 없다.

촛불문화제에 맞불을 놓기 위해 나온 조갑제, 서정갑, 추문으로 얼룩진 아무개 목사를 보며 국민들은 ‘강시들이 또 튀어나왔군’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만든 ‘우리 대통령’이라고 기도하는 한편으로 이력서를 내미는 무리들을 보면서 ‘우리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국민이 아닌가 한다. 대통령이 ‘프렌들리’하게 여기고 귀를 기울여야 할 사람은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이 뭐 변화를 가져오지 않겠어? 한번 믿어 보자구’ 했던 국민들이다.

진정으로 새 판을 짜야 한다. 모두 이력서를 찢어버리라고 하길 바란다. 촛불문화제를 보면서 온갖 감회에 젖었다면, 어떤 국민들이 잃어버린 10년을 찾자고 하는 동안, 대다수 국민들은 그 10년 동안 믿을 수 없을 만큼 민주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한다.

김선주/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