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춘 / 소설가·87년'국본'상임집행위원
어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시작된 지 21주년 되는 날이었다. 우리 국민이 스스로의 힘으로 전두환의 계엄령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고 국민의 정부 선택권을 되찾은 날이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함성으로 지축이 흔들리던 그 거리에 다시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촛불은 정치적 권리가 없는 10대들이 처음 불붙였다. 지금은 소위 '실용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개발독재형 정치 행태를 향한 총체적 저항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무엇이 10대들로 하여금 촛불을 들게 했는가? 이를 두고 '배후'를 운운하는 것은 진짜 '허무 개그'이다. 그들은 2.0세대이다. 기득권의 네트워크를 좌지우지하는 소위 조·중·동을 보지 않는다. 그들은 방송사의 카메라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는다. 스스로 쓰고, 만들고, 전파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조·중·동은 그 영향력이 현저히 저하되었지만 그래도 여의도에서는 먹힌다. 의제 설정능력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촛불은 그 여의도 세력에게 조종을 울렸다. 야당이라고 별로 봐주지 않는다. 야당을 대안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 가장 서글픈 일은 거리의 국민과 정부가 맞붙고 있음이다. 정당정치의 실종이다.
그 어떤 정치세력도 새롭게 성장한 이들 2.0세대의 국민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디지털 국민을 19세기 아날로그 리더십이 장악하고 있는 건 비극이다. 충돌과 어긋남은 필연적이다. 창조론자들이 도저히 인정 못 하는 게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가는 과정인데 이를 다윈은 '돌연변이적 진화'로 풀이해준다. 몇백 만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진화가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원인은 모른다. 그러나 엄연한 실제 상황이다. 사회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87년 오늘, 국민들은 모두 한 몸이 되어 독재타도를 외쳤다.
47개 도시 500만 명이 참여했다. 영·호남이 하나였고, 남녀노소가 함께했다. 짧았지만 따뜻한 대동세상을 우리는 체험했다. 그리고 지도자는 하늘이 주는 것이 아니라 조직된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자각했다.
오늘 촛불을 든 세대는 이미 알고 있다. 정치는 여의도의 '선수들'끼리만 하는 게 아니란 걸. 87년 6월에 생성된 그 자각의 DNA는 2세에게 유전되었다. 무엇보다 진화한 것은 87년 6월의 엄숙진지함으로부터 유쾌한 놀이문화로의 일대 전환을 감행한 점이다. 미학의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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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의 침탈과 권력 내부의 부패로 어지럽던 조선조 말에 우리 문학에는 중요한 미학적 변화가 일어났다. 양반들이 쓴 소설이나 시편이 비장미 일색이었던 데 반해 작가를 알 수 없어 대부분 상민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사설시조, 흥보가류의 판소리 몇 마당 등은 해학미와 골계미를 발산했다.
촛불세대는 유쾌 발랄하다. 차가운 물대포 세례를 향해 '온수(더운 물)' '온수'를 즉석에서 합창한다. 억압에 비분강개 대신 경쾌한 야유로 대응한다. 이 '신인류'의 출현을 외면하면 우리 정치에는 곧 쓰나미가 덮칠 것이다. 모든 정치세력에 주어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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