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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형 칼럼]확 바꾸고, 바뀌어야 산다

강산21 2008. 6. 8. 17:11
[이경형 칼럼]확 바꾸고, 바뀌어야 산다
2008-06-05 오후 3:34:43 게재


확 바꾸고, 바뀌어야 산다
이경형 (언론인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촛불’이 ‘들불’로 바뀐 것은 이명박정부 100일이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의미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실시된 6·4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것도 이를 반증해준다. 청계천, 서울시청 앞 광장 등에서 시작된 촛불문화제의 발단은 쇠고기 수입 개방문제였다.


그러다가 그 촛불이 어느 새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들불’ 민심으로 변했다. 이런 변화의 동력은 쇠고기 개방문제를 뛰어넘는 이명박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한다. 시위 현장의 구호가 ‘재협상 촉구’에서 ‘독재자 물러나라’고 변했는데도 누구하나 말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데서도 알 수 있다.


취임 100일을 맞았지만 국민의 지지율은 20%대, 어떤 여론조사는 10%대까지로 곤두박질쳤다. 취임 초 60%대였던 데에 비하면 지지자들이 3달여만에 ‘지지철회, 반대, 거부, 저항’으로 태도를 선회했다고 볼 수 있다.

전면쇄신이 필요한 때


민주화 이후 4번의 직선 대통령을 뽑았지만 취임 100일만에 이처럼 지지도가 추락한 대통령은 없다. 정권 말기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이처럼 조로(早老)정권이 된 근본 이유는 현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의 위기에서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정부를 불신하게 만든 것인가.


무엇보다 이명박정부가 5년 간 우선순위에 따라 추진해나갈 국정플랜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얼리 버드’(early bird) ‘액션플랜’(action plan) 운운하면서 바삐 움직이고 바로바로 실천하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임기응변적인 데다 말도 수시로 바꾸었다.


대운하 사업만 해도 안 하는 듯했다가 몰래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도 핵문제 해결 없이는 안 할 것처럼 하다가 북·미 협상에 떠밀려 할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쇠고기 개방문제만 해도 그렇다. 국민 식생활을 책임지는 농림부가 작년에는 뼛조각 하나 보인다고 퇴짜를 놓다가 이제는 특정 부위만 제거하면 안전하다고 말을 바꾸니 국민이 납득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후에도 단계적 수입 → 완전 개방, 재협상 불가 → 재협상 추진 등으로 오락가락하니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이다.


다음은 정부가 국민들과 따로 놀았기 때문이다. 국민들과 주파수가 같지 않은 것이다. ‘강부자’ 내각 인사는 더 이상 운위할 필요도 없다. 강만수 경제팀만 해도 그동안 한국은행을 압박하면서 고환율정책을 유지하다가 이제야 물가안정 모드로 기조를 전환했다.


이는 물가고에 시달리는 서민의 고통보다는 대통령의 ‘7-4-7’ 공약 이행에만 집착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 친화적) 정책은 대기업과 외국인 투자는 늘렸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되레 소외감에 빠지게 했다.


따져보면 이명박정부는 임기 5년 가운데 이제 겨우 100일을 지났다. 앞으로 1700여일이 남아 있다. 지나간 100일은 국정의 총체적 실패로 ‘잃어버린 100일’이 되었다고 해도 앞으로 남은 4년 9개월은 건져내야 한다.


지난 100일이 첫 단추를 잘못 꿴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면 그 첫 단추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 첫 단추에 해당되는 것은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각료 임명을 비롯한 인사문제이고 두번째는 이 대통령의 리더십 방식 문제다. 21세기 한국의 선진화를 내건 이명박정부의 성공 여부는 이제 인사쇄신과 대통령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달렸다.


흔히들 국정쇄신은 시스템 쇄신과 인사쇄신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시스템쪽보다는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촛불이 들불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는 문책 경질이나 땜질 보각인사가 아니라 내각이 총사퇴하여 새롭게 정부를 구성하는 수준의 전면 쇄신이 필요한 때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청와대비서실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부터 바뀌어야


이 대통령은 이 나라 최고의 CEO였는지는 모르나 국가지도자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은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다른 사람들을 하수(下手)로 보는 독단, ‘하면 된다’는 성공신화에 함몰되고, 섬김보다는 오만으로 읽히는 태도가 지난 100일의 국정 곳곳에 묻어 있다.


때때로 의사 결정과정은 과거 제왕적 대통령 시절을 연상케 한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포용력을 발휘하고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잘 해야 한다. 아무리 총리나 비서실장을 바꾼다 해도 대통령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이것도 무위로 끝난다.


국민의 지지가 있을 때는 ‘전봇대’도 뽑을 수 있지만 국민이 돌아서면 ‘촛불’하나도 끌 수 없는 것이 대통령 자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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