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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묘약

강산21 2008. 5. 9. 15:35
 

사랑의 묘약


이성을 만나고 처음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는 시기에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뇌에서 분비된다. '도파민'은 정상적으로 뇌에 존재하는 호르몬으로 운동기능과 기분 등을 조절한다. 특히 뇌의 보상 회로인 '쾌락중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흡연이나 알코올중독에 빠지는 것도 도파민과 큰 연관이 있다. 일종의 행복유발 물질인 것이다.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점점 빠져들어 갈 때는 도파민의 분비가 많아지면서 연인의 얼굴만 보아도 행복해진다. 도파민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성향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음에 드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면 각성도를 높여 이것에 빠져들게 만든다. 심지에 불을 붙여 사랑의 불꽃이 피어오르도록 하는 것이 바로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다.


이어서 뇌에선 페닐에틸아민이 만들어지면서 사랑의 황홀감에 빠져든다. 아무리 보아도 또 보고 싶고,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황홀감을 느끼게 하는 물질이 페닐에틸아민이라는 호르몬이다. 페닐에틸아민은 강력한 각성제인 암페타민과 유사한 천연 각성물질이다. 따라서 이땐 이성으로 제어하기 힘든 열정이 분출되고 행복감에 빠진다. 뇌에는 우리가 잘 아는 엔돌핀, 엔케팔린 같은 천연 마약성분이 존재한다. 달리기를 할 때 기분이 좋아지거나 칭찬이나 인정을 받았을 때 붕 뜨는 느낌을 받는 것은 바로 엔돌핀 등이 뇌에서 분비되기 때문이다. 페닐에틸아민은 엔돌핀과 같은 천연 마약의 분비를높여 우리를 행복감에 젖게 한다. 이 물질이 바로 사랑의 기쁨과 충족감을 가져다주는 사랑의 묘약인 셈이다. 그러나 마약처럼 뇌에서도 내성이 생겨 더 이상 페닐에틸아민의 효과가나타나지 않게 된다. 결국 사랑의 열정은 식을 수밖에 없다.


동물 가운데 미국 중서부 초원에 사는 초원들쥐는 일부일처형 양육 상태를 보이는 몇 안되는 포유류 가운데 하나이다. 20여 년 전 위스콘신대학의 카터 교수는 초원들쥐가 유별나게 정절을 지키는 이유를 알아내고자 그들의 뇌를 조사했다. 연구자들은 부모와 새끼의 유대감을 촉진한다고 알려진 옥시토신을 초원들쥐의 뇌에 주사했다. 그러나 초원들쥐들은 평소보다 더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이번엔 옥시토신 수용체를 차단하는 약물을 주입했다. 뇌에서 옥시토신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자 들쥐들의 행동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일부일처의 양식이 사라지고 무차별적으로 짝짓기를 시작했다.초원들쥐의 일부일처제 성향에는 바로 옥시토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열정이 식는다고 해서, 더 이상 두근거리는 끌림이 없다고 해서 사랑이 끝나지는 않는다. 사랑은 열정적인 애정으로 시작해 친밀감으로 바뀐다.시간이 지나면서 편안하면서도 안정적인 친밀감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때 작용하는 물질이 바로 옥시토신이라는 사랑유지 호르몬이다. 옥시토신은 연인들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해 관계를 유지하도록 만든다. 이 호르몬 덕분에 열정적 감정이 끝난 뒤에도 남녀는 사랑을 유지해갈 수 있다.


옥시토신은 출산이나 수유, 성적흥분 등 강렬한 애착감정을 느끼는 순간에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특히, 옥시토신은 엄마가 아기를 안아줄 때처럼 피부접촉을 할 때 다량 분비된다. 친밀감과 안온함을 느끼게 하는 물질인 것이다. 산모가 아이에게 강한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는 것도 이 호르몬의 작용이다.


옥시토신은 오르가즘 이후 급격하게 상승하는데, 이것이 분비되면 여성은 상대 남성에게 더욱 친밀감을 느낀다. 친밀감은 남성보다 여성의 성반응에서 더욱 중요한 요소인데,친밀감의 실체가 바로 옥시토신이다. 타오르는 열정이 아니더라도 친밀감 역시 사랑의 감정이다. 옥시토신은 페닐에틸아민으로 인해 금방 뜨겁게 달구어진 사랑이 좀 식더라도 온기로 오래 보존될 수 있도록 해준다. 열정이 사라진 뒤에도 은은하면서 지속성이 있는 사랑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호르몬이 옥시토신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뜨거운 열정과 따뜻한 친밀감, 그리고 신뢰가 있을 때 완성된다. 친밀감과 신뢰감을 만들어내는 옥시토신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조물주가 내려준 사랑의 묘약이다.


<성격의 비밀> 이충헌, 더난출판, 2008, 6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