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선관위의 건망증은 ‘웃찾사’

강산21 2008. 4. 7. 12:48
선관위의 건망증은 ‘웃찾사’
편집국장 고 하 승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일 서울 은평을 뉴타운 예정지를 방문했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은 통합민주당과 창조한국당 등 야권으로부터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을 돕기 위한 '관권선거'라는 비판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실제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대통령의 일상적 국정 활동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이 대통령의 은평 방문은 타당한 것인가.

아니다.

이 대통령과 같은 한나라당 소속 의원도 잘못됐음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 원희룡 의원은 7일 오전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여당의원인 내가 봐도 솔직히 말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원 의원은 “다른 지역들도 있을 텐데 하필 최측근 의원께서 접전 중인 지역”이라는 말로 유감을 표시한 뒤 "대통령도 같은 한나라당이고, 가장 아끼는 측근 의원이다 보니 기도를 하더라도 그 쪽 방향을 보고 기도하고 싶은 속마음이 왜 없겠느냐. 배경이나 미루어 짐작되는 마음의 의도 등을 봤을 때는 오해의 소지가 좀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물론 한 석이라도 더 중요하지만 국민적 대의명분을 가지고 국정운영에 뒷받침 될 수 있는 큰 명분을 얻는 데 대통령이 더 집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했다.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부터 줄곧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해온 보수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중앙일보>는 7일자 사설에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서야 되겠느냐"고 질책했다.

투표일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대통령의 행동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다는 것.

<조선일보>도  같은 날자 신경무 화백은 '이심이심(李心李心)?'이란 제목의 만평을 통해 이 대통령이 은평 뉴타운 건설현장을 찾아 노숙인 노동자들에게 "빨리 재활하세요!!"라고 말하자, 고전중인 이재오 의원이 한편에서 비장한 마음으로 '나도 재활하자, 아자!'라고 다짐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이 대통령의 은평 방문이 사실상 관권선거에 해당한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실제 은평 뉴타운의 경우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의 지역구(서울 은평을)에 위치해 있는데다, 지난 2일까지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 이 의원이 이 지역에 출마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에게 10%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만큼, 18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불과 나흘 앞둔 시점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대통령의 뉴타운 현장 방문은 다분히 다른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지역 최대 현안인 뉴타운 사업을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만으로도 이재오 의원에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란 점은 상척동자라도 알만한 사안 아니겠는가?

이에 따라 통합민주당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오른 팔을 구하기 위해 국민과 야당을 무시한 채 선거운동에 나섰다"며 "총선이 끝나더라도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의 은평 방문 하루 전, 선관위는 공무원의 중립 의무 협조를 요청한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중립의무 협조요청서에는 ‘선거가 실시되고 있는 예민한 시기에 고위 공직자가 특정 지역을 연이어 방문해 지역개발 및 예산지원을 거듭 약속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9조와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한 같은 법 제86조에 위반될 수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선거일까지는 공무원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지역 출장이나 지역개발 등과 관련한 발언을 자제하도록 각 부처에 특별히 강조해 선거법 위반 시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협조해 달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즉 은평 방문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당연히 선거법위반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이 대통령의 은평방문은 선거법 위반으로 보기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선관위의 이런 태도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수차례 경고를 했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실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해 선관위로부터 수차례 경고를 받은 바 있다.

사실 ‘대통령의 선거 개입’ 논란은 야당 시절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권을 공격한 주요 메뉴였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걸 이명박 대통령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에게 경고장을 마구 날렸던 선관위가 이 대통령에게 만큼은 다른 잣대를 적용해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선관위의 건망증도 이쯤 되면 ‘웃찾사’수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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