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생명줄 물을 어찌 사기업에? / 류정순

강산21 2008. 3. 28. 10:20
생명줄 물을 어찌 사기업에? / 류정순
기고
한겨레
» 류정순/한국빈곤문제연구소장
공공부문의 사유화를 국정 핵심과제로 삼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물산업지원법(안)을 내놓았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2001년 수도가 다국적기업인 온데오와 템스워터에 위탁된 뒤 해마다 요금이 30% 이상 올랐다. 남아공도 1994년 수도를 민영화해 다국적기업 수에즈에 넘긴 뒤 2년 사이에 요금이 600% 이상 급등했다. 아르헨티나도 수에즈와 비벤디가 물 공급을 시작한 뒤 80% 이상 요금이 올랐으며, 필리핀도 97년 민영화 뒤 지금까지 무려 800%나 요금이 수직 상승했다.
 

애초 수돗물의 시장화가 효율화, 수질 향상, 가격 인하 등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됐으나, 우리보다 먼저 민영화를 한 나라들의 예를 보면 기존의 재정은 재정대로 들어가고, 기업의 수익을 보장해줘야 하기 때문에 수도요금 인상이 불가피했다. 시민들은 더 비싼 돈을 주고 물을 사 먹어야 했으며, 이윤 추구가 목표인 기업이 물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 공급을 중단함에 따라 도시 빈민의 단수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특히 남아공에서는 천만명 이상이 단수를 당했으며, 2천만명 이상의 주민들이 물을 찾아서 고향을 떠나는 대재앙을 겪었다.

 

이런 문제들이 먼저 물 민영화를 경험한 나라들의 선례로 입증되자 유엔은 2006년 제4차 세계물포럼에서 명시적으로 물 민영화 정책의 실패를 선언했고, 유럽연합 또한 물 민영화 정책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환경부는 물 민영화 정책인 ‘물산업지원법(안)’을 내놓고, 참여 기업에 조세감면까지 해주겠다고 한다(제23조).

 

한국빈곤문제연구소가 전기·수도·가스 중 한 가지라도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3개월 연체 시점에서 가스는 66%가 끊겼으며, 전기는 77%가 공급 제한 혹은 단전된 데 비해 수도는 단지 30%만이 끊겼다. 이렇게 수도가 전기나 가스보다 연체자에게 후한 이유는, 물은 생명줄이자 공공재로서 무료로 공급돼 왔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어떤 탐관오리도 마을 우물물을 돈 내고 먹으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공공재인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악덕상인의 표본으로 지탄을 받는 것이다.

 

현재 가스는 민영화되었고, 전기는 공기업(한전)이 공급하는 데 비해, 수도는 대부분 직접 지자체가 공급하고 있다. 그렇기에 물의 공공성이 그래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수돗물이 민영화돼 이윤 추구가 목표인 기업이 공급하게 되면, 가스나 전기와 마찬가지로 석 달만 연체돼도 3분의 2 이상 끊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생명줄인 물을 기업에 내주어서 마음껏 장사를 해먹으라고 물산업지원법(안)을 내놓았다.

 

물 민영화 다음에는 공기 민영화를 할 것인가? 2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자는 아예 콧구멍에 계량기를 달고 공기값도 기업더러 받으라고 하지 그러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닭고기 35%, 논술학원비 33%, 자장면이 29%나 물가가 오른 상황에서 “아이 성적하고 남편 월급 빼고는 다 올랐다”고 사색이 되어 탄식하고 있는,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 앞에 이명박 정부는 생명줄인 물값조차 왕창 올리는 물 민영화를 하겠다고 한다.

 

인도 화가 포트니스는 “소통 없는 사회는 암이 퍼진 조직과 같다”고 했다. 없는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에 대한 소통이 없는 정부가 생명줄인 물조차 기업에 맡기는 처사는 사회의 암을 퍼뜨리는 것과 같아서 심각하게 사회통합을 위협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일말의 온정이 있다면 환경부는 물산업지원법 추진과 같은 사회암을 퍼뜨리는 법안을 철회해야 할 것이다.

 

류정순/한국빈곤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