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유시민의 '대구 도전'과 지역주의

강산21 2008. 4. 3. 18:51

유시민의 '대구 도전'과 지역주의

프레시안 | 기사입력 2008.04.03 14:42 | 최종수정 2008.04.03 14:42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 ⑦] 유시민 대 주호영

[프레시안 홍덕률/대구대 교수(사회학)]
< 프레시안 > 과 <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 > ('의제27', 공동대표: 정해구, 홍종학, 김호기)은 오는 4월 9일 총선을 맞이해 공동기획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를 준비했습니다. 이 기획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결합하는 '아카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이번 총선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 일곱 번째로 한나라당 주호영 후보와 무소속 유시민 후보가 맞서는 대구 수성을 지역구에 대한 홍덕률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 편집자 > 18대 국회의원 총선은 원래 무척이나 싱거울 것으로 전망됐었다. 한나라당이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압승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달라졌다. 총선 지형이 요동치고 있고 격전지도 많아졌다. 총선을 지켜보는 재미도 그만큼 커졌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재미 이상으로 걱정도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 정치의 온갖 고질병들이 막 터져 나오고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정당정치의 실종이 그 하나고 지역주의의 화려한 부활이 다른 하나다. 이 글에서는 지역주의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되살아나는 지역주의

지역주의의 부활은 이미 지난 대선 과정에서 시작됐다. 과거 3김 시대처럼 한나라당은 경북 출신의 이명박을, 대통합민주신당은 호남 출신의 정동영을 내세웠다. 전형적인 영호남 대결 구도로 틀이 짜인 것이다. 거기다 이회창까지 충청에 기대어 출마하였다. 후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각 당의 지배구조도 지역색이 뚜렷했다. 한나라당의 지도층은 대부분 영남 인사였고, 통합신당 역시 열린우리당 시절 영남인사들이 대부분 탈당하거나 물러나 앉으면서 호남색이 강화되었다. 3김은 일선에서 퇴장했지만 지역할거 구도는 변하지 않고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 연장선 위에서 18대 총선이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구도뿐만이 아니다. 지역주의를 자극하고 동원하려는 선거 전략이 이미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지역주의 동원 전략은 그로부터 얻을 것이 많다고 여기는 영남 지역주의가 늘 앞서 간다. 최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충청과 대구, 부산에서 연일 노골적인 지역주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도전조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

하지만 더 난감한 일은, 지역주의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조직적 대응은 별로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은 대구경북의 27개 선거구에서 불과 6명의 후보만 내세웠다. 17대 총선에서 대구경북 지역주의(TK 정서)에 대한 도전 대열에 함께 했던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 권기홍 전 노동부 장관, 추병직 전 건교부 장관, 이강철 전 노무현대통령 특보, 김태일 영남대 교수, 김준곤 전 청와대 비서관,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 임대윤 전 동구청장(이상 지역구 출마),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비례대표로 17대 국회의원) 등이 모두 18대 총선 출마를 포기했다. 참여정부 하에서 요직을 거친 영남 인사들도 대부분 지역주의에 도전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 rimgcaption > ▲ ⓒ프레시안
결국, 어느 정치세력도 지역주의 타파, 국민통합, 전국정당 건설을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실정이다. 별 문제제기도 없고 조직적 대응도 없으니, 일반 유권자들이 지역주의 정치문화에 익숙해져 가면서 선거에 동원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의미 있는 도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구 수성을 선거구에 출마한 유시민 후보가 한 예다. 그는 참여정부에서 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 정치인이었다. 그가 반(反)노무현의 심장, 보수의 진원지,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특히 수성구는 대구에서도 보수주의 정서가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지역이다. 대구의 강남, 대구의 8학군 지역인 것이다. 지역주의적 선택에 계급적 선택까지 더해져 늘 한나라당 후보가 부동의 절대 지지를 받아온 지역이기도 하다.

한편 주호영 후보는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이명박 정부의 실세로 급부상한 정치인이다. 그는 강재섭 대표처럼 5공 출신, 민자당 출신도 아니다. 박종근, 이해봉의원 같이 70세 안팎의 구시대 정치인도 아니다. 그들과는 세대를 달리 하는 40대의 젊은 정치인이다. 판사 출신이면서 합리적 보수 인사로 인정받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지역 기반도 탄탄하다고 평가받는다. 이명박 정부의 실세이다 보니 같은 선거구에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이는 대구에서는 가장 적은 1명뿐이었고, 따라서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보수 진영 경쟁자도, 친박연대의 위협도 없다.

그런 주호영 후보에게 유시민 후보가 도전장을 내면서 대구 수성을 선거구는 빅매치의 장이 되었다. 현 정부 실세인 한나라당 후보와 친박 후보 간의 경쟁 아닌 경쟁, 본질적으로 한나라당 대 한나라당의 집안싸움이 아닌, 모처럼 의미 있는 대결이 펼쳐지는 선거구가 된 것이다. 전 노무현 정권의 실세 대 현 이명박 정권의 실세 대결이라는 의미도 있다. 아마 수도권에서 치러졌다면, 이재오문국현, 손학규 대 박진, 정동영 대 정몽준의 대결 못지않게, 상당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 빅매치로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대구에서 치러지는 바람에 흥행은 반감되었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는 다른 어느 선거구 못지않게 크다고 할 것이다.

유시민 후보의 도전과 지역주의

유시민 후보는 자신이 대구에 출마한 이유를 대구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유시민 후보가 대구의 낙후를 설명하는 방식은 대구에서 귀가 따갑게 들어온 보수 진영의 진단과는 크게 달랐다. 10년의 좌파정권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통 일당체제고, 배타적이며 폐쇄적인 것이 대구가 뒤쳐지는 진짜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걸 탈피해야 대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수적인 정치인과 진보적인 정치인을 함께 키워야 대구도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역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하지 않으면서도, 지역주의로부터 벗어날 것을 지역발전론의 관점에서 대구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대구를 위해 일하겠다고 출마의 변을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대구 지역주의의 본질을 드러내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밖에서 부딪쳐 깨는' 방식이 아니라, '보수 정서의 저변으로 스며들어' 소리 없이 흔들어 깨우는 방식이다.

물론 주호영 후보에게는 지역주의에 기대 정치생명을 연장하는 낡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시민 후보의 도전은 주호영 후보에게도 만만치 않은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자신이 지역주의에 기대는 낡고 속 좁은 정치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선 유시민 후보와의 정책 토론에 적극 나서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TV 토론을 회피한다고 공격받는 것은 주호영 후보에게도 득보다 실이 크다. 자칫 지역주의에 기대는 작은 정치인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40대의 젊은 정치인으로서, 지역주의 따위에 기대지 않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에도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 유시민 후보의 도전을 자신이 더 실력 있는 정치인,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 rimgcaption > ▲ ⓒ주호영 의원실
유시민 후보에게도 고민하고 명심해야 할 것이 없지 않다. 고질적인 지역주의와 대결하고 그것을 청산해 나가는 일은 역사적 과업이요 국가적 과제라는 사실이다. 한두 차례의 개인적 도전으로 꿈쩍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17대 총선에서 조순형 후보가 수성 갑 선거구에 출마했던 것처럼, 자칫 코미디로 비칠 가능성도 있다.

당연히 세력과 프로그램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역주의 극복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전국 정당, 정책 정당의 틀, 그리고 총체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을 쥐고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열린우리당은 그것을 중요한 가치로 창당됐던 정당이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대구경북에서 태어나 생활해온 인사들을 규합해 총력전에 나섰는데도 모두 실패했다.

그 실험들이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지금의 통합민주당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유시민 후보는 탈당했다. 그리고 그는 30년을 떠나 있던 대구에 내려와 '홀로'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고 있다. 지역주의 극복을 향한 살신성인의 도전이라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 난감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대구의 어려움을 분석해 내고 처방을 제시하는 일, 지역주의의 원인을 분석해 내고 그 답을 제시하는 일, 그리고 그 답을 대구 유권자들에게 설득해 내는 일의 물꼬만이라도 대구 수성구에서 틔워 낼 수 있다면, 유시민 후보의 '외로운' 출마는 충분히 의미 있는 도전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텃밭이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덕률/대구대 교수(사회학) ( hilltop@pressi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