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양성평등정책은 어디로? / 김양희

강산21 2008. 2. 14. 11:06
[기고] 양성평등정책은 어디로? / 김양희
기고
한겨레
» 김양희/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새 정부의 정책방향은 실용주의를 표방한다. 그러나 여성정책은 실질적인 경제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생각한 탓일까? 실용주의 정부에서 그 입지가 약하다는 인상을 준다.
 

경제성장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긍정적인 관계를 가지며, 여성의 정치·경제 참여율이 높을수록 국가청렴도지수가 높아지고 부패지수는 낮아진다는 것은 이미 선진국 사례에서 입증된 바 있다. 양성평등정책이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중요한 요인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07년 국제경쟁력 지표에서 한국은 29위를 차지해 아·태 13개국 중 10위에 머물렀다.

 

지난 5일 인수위는 ‘선진화와 실용주의’라는 이명박 당선인의 국정철학을 바탕으로 △활기찬 시장경제 △인재대국 △글로벌 코리아 △능동적 복지 △섬기는 정부 등 5대 국정지표와 총 192개의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이 중 보육 등을 제외하고 명백하게 여성과 성평등을 고려하는 과제는 ‘여성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 만들기’와 ‘양성평등 수준의 향상’, ‘여성폭력 취약 계층에 대한 보호대책 마련’ 등 세 가지 정도다.

 

한마디로 정부조직 개편안에서와 마찬가지로 국정과제 순위에서도 여성정책이 뒤로 밀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성평등 수준의 향상’을 능동적 복지의 범주에 포함한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잘못된 발상이다. 더구나 정책 추진체계가 불명확하여 매우 걱정스럽다. 양성평등정책은 복지 패러다임으로 추진하기에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과제다.

 

남성과 대비되는 차원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정책이 여성정책의 전부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양성평등 관점을 주류에 통합시키는 ‘성 주류화’가 여성정책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과거 각 부처의 정책은 남녀 수혜자를 구분하지 않고 시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정책은 남녀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 이에 ‘양성평등’이라는 새로운 척도가 등장한 것이다.

 

여성발전기본법에 근거를 두고 2005년 도입한 ‘성별영향평가’는 여성과 남성에게 끼치는 차별적 영향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직업훈련 정책에서 여성과 남성이 선호하는 훈련 프로그램이 다르므로 이를 고려한 정책 수단이 필요하다는 점, 국가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여성 연구자들이 동등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지역 전략산업의 인력이 지역에서 어떻게 양성되고 있으며 그 인력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성별 분석조차도 없는 점 등을 밝혀 개선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2010년부터 시행될 국가재정법에서는 예산서 및 결산서 작성에서 성별 영향과 성차별 개선 효과를 고려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정책 전반에 성평등 시각이 투과될 수 있도록 부처간 조정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이며 차별화된 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새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간과하는 듯하다.

 

지난달 21일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은 130인 공동발의로 여성발전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이 개정안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기존 ‘여성정책조정회의’를 폐지하고, 보건복지여성부 장관 소속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위원회 구성은 관계부처 차관과 분야별 전문가 중에서 보건복지여성부 장관이 위촉하는 10인 이내의 민간위원으로 하며, 보건복지여성부 장관과 위촉직 위원 중 1인을 공동위원장으로 한다. 이 안대로라면 여성정책 추진체계가 일개 부처 업무로 격하돼 범부처간 효율적인 정책 조율이 곤란해질 것이다.

 

당선인이 후보 시절 공약한 정책적 의지가 있다면 여성가족부를 존치시키는 것이 마땅하며, 보건복지부 산하의 양성평등위원회는 적합한 대안이 아님을 재차 강조한다.

김양희/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